지우개를 사용하면 잘못 쓴 글씨를 지울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지우개는 닳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어떤 때에는 그 대가가 너무 크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일도 있습니다.

 

우리는 삶을 배우는 대가로 많은 것을 잃거나 버려야 합니다. 가장 큰 것들로는 낭비한 시간이나 나쁜 기억들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만 그 덕분에 우린 더 성장하고 어른스러워 집니다.

 

우린 그렇게 방황하며 보낸 시간들과 놓쳐버린 기회들, 멀어진 사람들에 대해서 오랫동안 후회하고 아쉬워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저 잃어버린 것 만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시간과 우리 주위를 채우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 우리 옆에 있는 많은 좋은 사람들을 얻기 위해 사용된 지우개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물론 지우개를 사용해도 완전히 깨끗해 지지는 않습니다. 자국이 남는 경우도 있고 약간 번진 채로 흔적이 남기도 합니다. 아주 잘 지웠다 하더라도 자세히 보면 언뜻언뜻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억에서도 같은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지난 일로 아파하고, 안 좋았던 시간들을 기억해 냅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흔적은 점점 더 희미해 질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많은 대가를 치루고도 우리의 지금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아까운 시간을 사용하고 수 많은 기회를 놓치고, 여러 좋은 사람들이 우리의 주위를 떠났으면서도 지금의 우리가 여전히 그리 떳떳한 상황에 있지 못하다면 생각해 봐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주위에 아직도 좋은 사람들이 많지 않다면 그 또한 자세히 살펴야 할 상황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모습을 갖기 위해 20년을 혹은 50년의 시간과 많은 사람과 일들을 사용했습니다. 줄잡아 70 – 80년의 시간을 부여 받은 우리가 아직도 소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분명히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되도록 더 많은 시간을 생산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사용되는 대가는 되도록 줄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제껏 사용한 시간과 사람들이 이미 너무 많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쯤 확인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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