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앉은 사람이 손을 들면 뒤에 앉은 사람이 든 손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더 높이 손을 들기 위해 허리를 펴고, 의자에서 반쯤 일어서기도 하며, 심지어 소리를 질러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려 애씁니다. 그러다 한 아이가 지목 받게 되면 나머지는 아쉬움을 한숨으로 표현하며 손을 내리면서 이내 포기합니다.

 

다음 질문이 던져지면 좀 전에 벌어졌던 상황이 다시 연출 되면서 아이들은 더욱 더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뭔가 혜택을 받을 사람을 고를 때라면 아이들의 경쟁은 그야말로 격투에 가까워집니다.

 

물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이런 모습들은 점차 사라지고, 오히려 자신이 지목될까 싶어서 앞에 앉은 학생 어깨 너머로 숨거나 아예 잠을 자기도 합니다. 이득이 생기는 일이라면 이들도 유치원 아이들과 같은 모습은 아니더라도 한결 참여적이고 적극적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어려운 문제를 풀거나 지난 시간에 배운 것에 대한 복습을 위한 질문들도, 자신들에게 상당히 이득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귀찮아 하면서 그 시절을 보냅니다. 숙제를 귀찮아 하는 것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눈 앞에 보이는 이득에는 정신없이 집착하면서 정작 인생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그것을 깨닫게 되지만 다시 비슷한 경우가 생기면 어김없이 당장의 달콤함으로 손이 나가게 됩니다.

 

혼자 손을 드는 경우라면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선택 받기 위한 상황이라면, 누군가 자신이 지목 받기 위해서 단순히 손을 드는 것 이상의 행동을 하면서부터 경쟁은 더 이상 공정해 지지 않습니다. 그때부터는 누가 더 선택해 주는 사람에게 강력하게 표현하여 자신을 보게 만드는 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러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손만 드는 사람들은 피해를 봅니다.

 

이것은 선택해 주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공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정해진 행동 이상의 표현을 하는 경우를 지적해 주고 룰 안에서 손을 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원칙을 지키면, 필요 이상의 무질서는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장 아들이라고 고속 승진 시키거나,학부모가 더 자주 학교에 오는 아이가 편애 받아서도 안되고, 특정 선수의 후배들이 더 많이 선발되어서도 안됩니다. 우리동네 사람이라고 표를 주어서도 안되고, 힘있는 인사가 자기 동네에 이익이 돌아가는 행정을 해도 안됩니다.

 

그럼 우리는 지금의 모습에서 한 발자국도 더 발전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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