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편이 됩니다.

그들이 처한 전후상황을 모두 알기 때문에 일시적인 반항이나 심지어 범죄에 대해서도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정의의 반대편에 서있는 악당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학대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세상이 그를 증오와 폭력으로 내몰았는지 알게 됩니다. 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면 우리는 그 악당에게도 연민을 느끼고 그의 어두운 부분을 이해하려 합니다.

 

그래서 한쪽의 이야기만 들으면 안됩니다.

재판을 할 때 피고와 원고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는 것은 어느 한쪽의 이야기만 들으면 그가 옳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기억하고 상황에 더하거나 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는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없습니다.

 

변호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뢰인이 죄 없이 고생한다는 생각에 있고, 잡아온 사람이 보기엔 나쁜 사람이 법을 속여 빠져 나가려고 드는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일이므로 나무랄 수 없지만 그들 역시 한쪽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기 마련입니다.

 

물론 정상에 참작할만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는 형이 감경 되기도 합니다. 사람 사는 일이다 보니 어느 정도는 인정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법이 너그러워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줄어들었다 하더라도 잘못한 사람은 그 대가를 치뤄야 합니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다 보면 사람을 죽이고도 그럴 수도 있게 됩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 핑계를 대거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변명한다면, 정상은 참작하되 나머지 벌은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보입니다. 제가 판결하는 사람들만큼 판단력이 좋지 못하고 영리하지 못해서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입장은 잘 알지 못하면서 제 나름의 잣대를 들이대다 보니, 그들이 벌 받지 않는 것이 옳지않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높은 자리에 있었거나, 현재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일들이 유야무야 되는 상황을 볼 때마다 저는 우리사회가 부끄럽고 안타깝습니다.

물론 우리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보다 더 민주화되고 더 선진화된 나라들도 그런 경우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당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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