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와도 걱정이고 적게 와도 걱정인 것이 비입니다.

 

물론 세상의 대부분이 과하거나 모자라서 좋은 것이 없지만 비처럼 명암이 확실하게 그어지는 것도 흔하진 않습니다.

 

비를 볼 때마다 인디언들이 마른 대지 위에서 불을 피워놓고 끝없이 춤을 추는 모습이 떠올라서 괜히 웃을 때가 많습니다.

인디언들은 기우제에 한번도 실패한 일이 없는데, 그 이유가 기우제를 시작하면 비가 올 때까지 며칠이고 몇 달이고 지속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그렇습니다.

 

비는 안개보다 조금 더 내리는 ‘는개’, 먼지 날리는 만큼 내린다는 ‘먼지잼’, 산기슭에 내리는 소나기인 ‘산돌림’, 약비, 가랑비, 부슬비 그리고 장대비의 다른 말인 작달비, 엄청나게 퍼붓는 ‘억수’까지 그 모양이나 이름도 가지가지 입니다.

에스키모는 눈(雪)을 부르는 단어가 20여 개나 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비를 가리키는 말도 30여 개는 될 테니 만만치 않습니다.

 

이렇게 비에 대해 늘어 놓고도, 오늘 저는 비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비를 맞는 우리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학생시절 하교 길에 비가 오면 꼼짝없이 처마 밑에서 멈추기를 기다리거나, 그대로 맞으면서 귀가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했습니다. 집과 학교와의 거리가 빨리 달린다고 해서 덜 젖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물이 고여있는 곳은 되도록 피하거나 건너 뛰지만, 한참 비를 맞아서 신발 안쪽까지 모두 젖게 되면 고여있는 물웅덩이마다 장난을 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우리를 피할 수 없게 만들어도 그것에 무릎 꿇지않고 힘차게 나가는 비유와, 어떤 일이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조금씩 손대다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지속되어 결국엔 빠져 나올 생각을 못하고 자포자기하는 비유 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루종일 맞은 비도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말리면 되지만 인생은 그렇게 쉽게 만회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비가 올 때마다 저는 ‘내가 지금 얼마나 젖어 있는 걸까.”하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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