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 문 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주인은 자는척하며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합니다.

“안방까지 들어오기만 해봐라.”

도둑이 안방으로 들어오자, 주인이 다시 혼잣말을 합니다.

“훔치기만 해봐라.”

도둑이 귀중품을 훔쳐 유유히 도망가자, 주인은 마지막 혼잣말을 합니다.

“다시 오기만 해봐라.”

 

우스개 소리입니다만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 집주인은 재물은 잃었지만 위험은 피했습니다. 도둑을 보내든 위험을 무릅쓰고 맞서 싸우든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은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립니다.

 

고도는 오지 않지만 둘은 어찌 보면 끝없이 지루하고 무의미한 대화를 주고 받으며, 보고있는 관객이나 읽고있는 독자들도 그들처럼 그저 기다리게 만듭니다.

서로 살아있음을, 혹은 서로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고도는 오지 않습니다. 책의 저자인 베케트도 고도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했으니, 고도가 올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연극이 만일 현재의 한국에서 초연 되었다면, 과연 그렇게 오랜 기간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공연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기다리는 것을 많이 싫어합니다.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가뜩이나 급하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더 기다림을 멀리하려 합니다.

 

그런데 생존경쟁에서의 승리라는 것은 결국 기다리는 능력에서 결판이 납니다. 누가 더 오래 살아 남느냐, 같은 어려움 속에서 누가 더 오래 견뎌 내느냐가 승리의 척도가 됩니다.

물론 살아남을 만큼 강해야 하겠지만 견디는 것은 반드시 강한 것과 일맥상통하지는 않습니다. 흔한 말로 갈대는 안 쓰러져도 아름드리 나무는 강풍에 쓰러집니다.

 

비겁한 것과 현명한 것, 용감한 것과 무모한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 중 대부분은 어려운 시절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 힘든 시기를 잘 견디고 이겨낸 끝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룬 사람들입니다.

 

성경에도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했고,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어렵고 힘이 든다면 분명히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누가 더 오래 견디느냐의 싸움입니다.

뜨거운 물속의 개구리처럼 무조건 참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조금 더 버텨 보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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