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에 쌓인 백만장자의 사랑

“그는 한 손으로 데이지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데이지가 그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이자, 그는 또다시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빨려들게 만드는 그녀의 목소리가 그를 완전히 사로잡은 듯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꿈이 깬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히 울러 퍼지는 노래 소리와 같았으니까...
데이지의 하얀 얼굴이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가슴은 더욱 더 세차게 고동쳤다. 개츠비가 데이지에게 키스하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그녀에 대한 환영과 숨결이 하나가 되는 순간, 자신의 마음도 신의 마음처럼 두 번 다시는 방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이야기다.
현실적인 상황으로 해석하자면 말이 되지 않고 우스꽝스러운 상황일 수 있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네 삶이 그저 이성만으로 그리고 제도권 법의 테두리 안에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던가?  인류의 오랜 화두인 ‘사랑’에서만큼은 이 모든 것들을 초월하는 것이 아닐까.
욕망에 시달리고 첫사랑의 갈증에 시달리며 많은 것을 가졌지만 늘 가슴이 공허한 남자의 꿈, 사랑을 그린 ‘위대한 개츠비’는 필자가 좋아하는 고전 중 하나이다.
젊은 날 가슴에 담아두었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한 남자에 관한 허망하고도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는 아직도 내 가슴을  짠하게 한다.
이 이야기는 닉 케러웨의 (Nick Carraway)의 관점에서 1922년 초여름 웨스트 에그 (West Egg)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중서부 (현대 미국의 인디애나 주, 일리노이 주 등을 포괄하는 지역으로 원작에서는 단순히 서부로 지칭됨)에서 살아왔으며, 예일 대학교를 졸업했고 세계 1차 대전에 참가한 인물이다. 그는 주식 채권기술을 배우기 위해 고향을 떠나 뉴욕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가 집을 구한 뒤, 닉은 그의 이웃 제이 개츠비 (Jay Gatsby)와 친구가 된다. 제이 개츠비는 그의 롱 아일랜드 대저택에서 매일 밤 호화 파티를 벌이는 엄청난 부자이다. 개츠비의 막대한 재산은 많은 소문의 주제이다. 개츠비의 파티는 그의 웨스트 에그 대저택에서 열린다. 매주 토요일 수백명의 사람들은 개츠비의 집으로 몰려 온다. 호화스러운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닉은 곧 정신나간 이 파티 자체를 경멸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개츠비는 나중에 그의 전 애인이던 데이지와 우연히 마주치기를 바라며 이런 파티를 연다는 것을 닉에게 말해준다.
개츠비는 데이지로 하여금 그녀가 더 이상 톰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그와 함께 했던 지난 5년을 지우고 자기에게로 돌아오고 싶다는 것을 말하게 했다. 그녀는 망설이며 개츠비가 말한 대로 말하지만, 톰은 데이지와 개츠비 사이의 어색한 관계를 알아차리고 개츠비를 비웃었다.
 한편 톰의 친구인 자동차 수리점 주인 조지 윌슨 (George Wilson)과 그의 아내 미틀 (Myrtle Wilson)은 말다툼 중이었다. 미틀은 톰과 부적절한 관계였고, 이것을 조지가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집 밖으로 도망쳐 나왔는데 그만 데이지와 함께 돌아가던 데이지가 운전한 개츠비의 차에 치여 죽었다.
톰은 윌슨에게 총을 건네고 개츠비가 어디 사는지 윌슨에게 알려준 후, 데이지와 함께 멀리 여행 떠날 준비를 했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더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침울해 하며 데이지로부터 전화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윌슨이 다가와서 총을 쏴 개츠비를 죽였다. 그러고 나서 윌슨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잔디 위에서 자살했다.
 개츠비의 죽음 후 닉은 그의 장례식이 참석할 사람들을 열심히 물색했다. 하지만 개츠비의 밀수업 동업자 메이어 (Meyer Wolfsheim)조차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를 함께하기를 거절했고, 데이지는 톰과 여행을 가서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한편, 개츠비의 아버지인 개츠 씨 (Henry Gatz)가 개츠비의 장례식에 왔고 그는 여전히 과거를 추억하고 있었다. 개츠비의 넓은 인맥에도 불구하고, 닉, 개츠 씨, 몇 명의 개츠비의 집사들만이 개츠비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을 전후로 조던, 톰, 데이지와 연락이 끊긴 뒤, 닉은 실망에 빠진 결과 뉴욕을 떠나고 안전한 중서부로 돌아간다.
어찌보면 참으로 비극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는 단순히 연애 소설만으로 보기는 힘들고 1920년대 무너져가는 부르주아의 속물적 모습을 가슴아파하는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기도 하다. 당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개척 정신으로 무장했던 순수한 미국민들이 향락과 퇴폐를 쫓아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 들어가는 미국 사회를 꼬집고 있는 것이다.
제목에서 ‘위대한’이란 수식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돈에 눈이 멀어 떠난 옛 애인을 결국 돈으로 되찾겠다는 발상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거대한 부와 이미 유부녀가 되어버린 데이지와의 과거를 되돌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매일 화려한 파티를 열고, 그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 때 장례식을 찾는 이 하나 없었던 걸 보면 그의 삶은 그야말로 불쌍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필자는 개츠비의 지고지순한 일편단심의 마음,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그의 일생을 바친 순수함을 생각해보면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게 다가온다. 인간적 낭만과 순수함을 외면해버린 세상에 화가 나기도 한다. 그래서 정말 역설적인 단어지만 개츠비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순수한 사랑에 목숨을 바친 진정 위대한 남자라고 평가한다.
허망하게 끝나지 않고 진정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개츠비의 언어에는 무엇이 필요했을지에 대해 다음 칼럼에서 짚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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