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네이버 영화

<프롤로그>
SNS 시대를 사는 우리는 마치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 1999> 속의 AI들이 통제하는 가상현실 프로그램 속의 삶처럼, 모든 사랑의 소통을 문자로 주고받고 있고 감정의 표시는 판에 박힌 이모티콘을 이용하여 자신의 아바타처럼 교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너무나도 찰나적이고 규격화된 생각과 감각이 반영되어 깊이 있는 대화나 설레는 감성을 교류하기는 어려워졌다.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Letter to Juliet), 2010>에서 손편지로 사랑을 주고받은 연인의 애틋한 진심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그 빛을 발하는 걸 보여준다.  사랑은 “스피드와 합리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미는 순간, 그 빛을 잃는다는 것도 알게 된다. 다소 현실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약간 불편해지더라도 좀 더 얼굴을 보고 싶은 것이 바로 ‘사랑’이다. 현실이라는 우선순위에 핑계를 앞세우면서 ‘사랑’을 희생시키기 시작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습관적으로 변해버린 ‘오래된 연인’일 것이다.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는 것일까? 결혼하면 생활이 스며들면서, 새로운 가족, 새로운 살림, 새로운 아이들 관계가  복잡해진다. 하지만 사랑하는 연인을 영원히 내 곁에 붙잡아 두려면 결혼이라는 터널을 지날 뜨거운 설렘이 필요하다. 첫사랑에 잠 못 이루며 마음을 전할 손편지를 수십 번 고쳐 쓰던 시절이 그리워지면서 가수 어니언스의 <편지, 1973 >라는 노래를 불러본다.
[편지: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하얀 종이 위에 곱게 써 내려간/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 멍 뚫린 내 가슴에 서러움이 물 흐르면/ 떠나버린 너에게 사랑 노래 보낸다]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줄거리 요약>
뉴욕의  유명한 잡지사의 자료조사관인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 분)’ 의 꿈은 자신의 글이 잡지에 실리는 작가 지망생이다. 어느 날 결혼을 앞두고 요리사인 연인 ‘빅터(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분)’와 각자 일을 겸한 이탈리아 여행(Pre honeymoon)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빅터가 뉴욕에서 이탈리아 음식점 개점을 앞두고 와인, 버섯, 치즈 등 식자재 탐방 일에만 집중하게 되자, 소피는 홀로 베로나를 관광하게 된다.

여기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브로 '베로나'시에서 운영하는 “줄리엣의 발코니(여인들이 발코니 아래에서 줄리엣에게 저마다의 사연과 고민과 아픔을 가지고, 울며 혹은 웃으며 함께 나눠주고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쓴다)"에서 편지를 바구니에 담아서 답장을 써주는 공무원들을 만나게 되고 자신도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벽돌 사이에 파묻힌 50년 전 쓴 편지를 발견하고 소피는 영국에 있는 여인에게 편지(사랑에 늦었다는 말은 없다. 용기를 내어 엇갈린 운명을 되돌리라고 격려)를 쓰자, 마법같이 클레어 할머니는 손자와 함께 이탈리아로 옛사랑을 찾으러 오게 된다. 무려 74명의 ‘로렌조 바르톨리니’ 할아버지 찾기 대장정에서 기진맥진하여 포기할 무렵 마지막 추억을 회상하며 들린 포도밭에서 진정한 로렌조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옛날의 아름다운 사랑에 다시 빠진다. 늦게 와서 미안하다는 클레어에게 로렌조는 “사랑을 얘기할 때 늦었다는 말은 없소”라며 청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소피는 사랑은 현실적인 비즈니스로 미룰 수 있는 합리적 감정이 아님을 깨닫고 자신보다 요리에 빠진 약혼자와 헤어지게 되고, 여정에서 티격태격 다투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 클레어의 손자 찰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관전 포인트>
A. 베로나시 공무원이 셰익스피어를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사랑의 슬픔에 빠진 여인들이 줄리엣의 발코니 벽에 꽂아놓은 편지에 답장을 써주는 ‘줄리엣의 비서(베로나시 공무원)’가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 사람이야 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작품 상당수가 이탈리아나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 말괄량이 길들이기>, < 베니스의 상인>, < 로미오와 줄리엣>,< 헛소동>, < 줄리어스 시저>, < 십이야>, < 오텔로>, < 템페스트> 등이 그런 예다.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르네상스 후기의 이탈리아가 유럽 최고의 문예 대국이었고, 주요 문학작품이 영어로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그걸 재빨리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 극장의 분위기로 바꾸는데 명수였고, 그 때문에 이탈리아를 다룬 셰익스피어의 극 대부분은 이미 있는 이야기를 적절하게 손질하여 현란한 대사를 입힌 것이라는 평가도 많다.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탈리아 여기저기에 비슷한 이야기가 전승되는 가운데 베로나를 배경으로 한 '루이지 다 프로토'의 <줄리에타와 로메오, 1530>의 출판 이후 다시 '아서 브룩'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화, 1562> 편역판을 통해 셰익스피어는 1597년경 여러 조연급 인물을 추가하고 이야기를 확장해 출판하였다.

B. 소피와 찰리의 아픔의 공통점은?
소피는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머니가 멀리 떠나갔고, 찰리는 어릴 적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면서 인권변호사로 성장했다. 소피와 찰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항상 그리워한다. 두 사람은 그런 공통점으로 점점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C. 베로나시에서 <줄리엣의 발코니>를 운영하는 방식은?
이탈리아 베로나시에서는 관광객들이 발코니 벽돌에 꽂아둔 편지를 매일 수거하여 소위 줄리엣의 비서로 칭하는 4명의 전문가(결혼 51년째인 남편 문제 전문가,  상실감을 전문적으로 위로하는 간호사 등)가 답장을 통해, 사랑/이별/상처에 고통받는 여인들을 위로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도 급증하는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이런 위로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

D. 클레어 할머니가 로렌조 할아버지를 떠난 이유는?
클레어 할머니는 50년 전 이탈리아에 공부하러 왔다가 시에나 농장에서 만난 로렌조 할아버지와 사랑에 빠졌지만, 영국에서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에 눈물을 머금고 영국으로 도망치듯 돌아가 버리게 된다. 다시 만나 미안하다는 진심 어린 말 한마디라도 전하러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로렌조 할아버지를 찾아 다시 이탈리아로 오게 된다. 소피의 도움으로 마침내 로렌조 할아버지를 찾게 되고 두 사람 다 배우자와 사별한 상황이라 드디어 결혼을 통해 첫사랑의 꿈을 이루게 된다. 이 모든 것이 클레어가 런던으로 도망치기 전 줄리엣의 발코니에 남긴 편지를 50년 후 소피가 발견하여 이어준 소중한 인연이다. 이 영화처럼 편지가 사랑의 소중한 메신저로 등장하는 영화는 ‘라이언 고슬링과 레이첼 맥아담스’의 운명 같은 사랑을 그린< 노트북(The Notebook), 2004>이 있다.

E. 클레어 할머니의 결혼식에 초대된 소피의 선택은?
소피가 쓴 클레어 할머니와 로렌조 할아버지의 사랑 이야기는 잡지사 편집장의 마음을 사로잡아 잡지에 실리게 된다. 그리고 그 덕에 소피는 작가로 데뷔를 하게 된다. 또한 이탈리아에서의 여정에서 사랑에 대한 의미를 깨닫고 뉴욕의 약혼자와 헤어진 후 다시 베로나를 찾은 소피는 줄리엣의 발코니에서 찰리의 구애를 받게 된다. 하지만 로미오처럼 담쟁이덩굴을 타고 올라오던 찰리가 떨어지자, 소피는 발코니에서 내려와  뜨겁게 사랑의 키스를 나누게 된다.

출처:네이버 영화

출처:네이버 영화

<에필로그>
영화를 보면서 사랑의 설렘이 없어진 연인을 노래한 “015B”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 1992>라는 노래가 생각이 났다. 계산되고 계획된 감정 대신 한시도 떨어지기 싫고, 없으면 죽을 것만 같은 그런 사랑을 찾는다면, 오랫동안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당신의 로미오와 줄리엣에게 습관적인 SNS 안부보다, 하얀 편지지에 사랑의 시를 듬뿍 담아 마음을 전해보면 어떨까? 예쁜 우표에 소인까지 찍힌 마음의 편지로 연인에게  설레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손편지 전성시대'를 기대한다.

[아주 오래된 연인들: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곤 하지/ 가끔씩은 사랑한단 말로 서로에게 위로하겠지만/ 그런 것도 예전에 가졌던 두근거림은 아니야/ 처음에 만난 그 느낌 그 설렘을 찾는다면 우리가 느낀 싫증은 이젠 없을 거야/주말이 되면 습관적으로 약속을 하고 서로를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을 하지/ 가끔씩은 서로의 눈 피해 다른 사람 만나기도 하고 자연스레 이별할 핑계를 찾으려고 할 때도 있지]

서태호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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