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잊지 못할 로마에서의 하룻밤!

<프롤로그>
영화 <로마의 휴일(Rome Holiday), 1953>에서 앤 공주(오드리 헵번 분)는 예정되어 있지 않은 일탈의 여행길에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순수하고 애틋한 사랑을 만나게 된다. 그 계기로 자신의 현주소를 되찾고 삶의 행보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여행은 이렇듯 책이나 남의 이야기로 깨우칠 수 없는 삶을 손수 체험하는 찬란하고 의미 있는 과정이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에서,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면 여행을 떠나보라. 여행길에서 문제의 해답을 발견하고, 인생에서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좌표를 선명하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줄거리 요약>
유럽 어느 왕국의 공주인 ‘앤(오드리 헵번 분)’은 유럽 각국을 친선 순방 중에 로마를 방문하게 된다. 그녀는 왕실의 엄격한 규율과 꽉 짜인 일정에 지친 상태이고 잠시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음에 힘들어한다. 바쁜 스케줄에 시달린 공주는 의사의 권유로 안정제를 먹고 침대에 눕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유로운 해방감에 잠이 오지 않는다. 앤 공주는 창밖을 보다 충동적으로 로마의 거리에 나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잠자리에 드는 척하고는 평상복을 입고 몰래 대사관저를 빠져나와 로마의 밤거리로 향한다.

생전 처음 맛보는 자유로운 해방감에 그녀는 신이 나서 거리를 쏘다니다가 몇 시간 전에 먹은 안정제의 약효로 광장에 있는 벤치에 쓰러져 그만 잠에 빠져든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미국 ‘아메리카 뉴스’에서 파견된 로마 특파원 신문기자 ‘조 브래들리(그레고리 펙 분)’가 그녀를 발견하고 그냥 내버려 두고 갈 수 없어 자기 하숙집으로 데려가  보호해준다. 다음 날 아침 조는 신문사에 출근해서 비로소 그 아가씨가 자신이 찾던 특종감임을 알고 부랴부랴 동료 사진기자 ‘어빙(에디 앨버트 분)’을 불러 앤 공주의 뒤를 몰래 따른다. 앤 공주는 낯선 풍경에 놀라기도 하지만, 로마 시내를 본격적으로 구경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우연히 만난 조에게 돈을 빌려 가까운 미용실에 들어가서 긴 머리를 숏 커트해 버리고, 스페인 광장에 앉아 젤라토 아이스크림도 사 먹는다. 우연을 가장으로 길거리에서 만난 조와 그의 친구 어빙은 앤 공주에게 로마 안내를 빌미로 소형카메라로 앤 공주의 일거수일투족을 몰래 촬영한다. 앤 공주는 조의 신사답고도 부드러운 매너에 호감을 느끼게 되고 조도 아름답고 순수한 앤 공주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앤은 처음으로 담배를 피워보기도 하고, 조가 모는 모터사이클의 뒷좌석에 앉아 로마 시내를 구경하기도 한다. 급기야 과속으로 경찰에게 붙잡히자 조의 허리를 껴안으며” 결혼식을 하러 가는 거예요”라며 능청스럽게 거짓말도 한다.

그날 밤, 테베르 강변의 선상 무도회에 간 두 사람은 본국에서 파견된 비밀 첩보원들에게 발견되어 대소동이 일어나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간신히 추격을 피한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뜨거운 키스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지만, 결국 뜻하지 않은 여정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된 앤 공주는 아쉬운 작별의 키스를 하고 무지갯빛 추억을 간직한 채 대사관저로 돌아간다. 다음날, 귀국하기 전 앤 공주의 기자 회견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 조는 로마에서의 추억이 듬뿍 담긴 사진을 앤에게 전해주면서, 사랑이 가득 담긴 눈길만을 주고받으며, 그녀를 보내주게 된다. 그녀가 떠난 후 텅 빈 기자회견장을 마지막으로 쓸쓸히 걸어 나오는 조의 허망한 눈빛은 오랫동안 관객들에게 애잔한 감동을 준다.

<관전 포인트>
A. 앤 공주가 로마 숙소에서 빠져나온 이유는?
사생활이 전혀 없이 모든 시간이 공식적인 일정에 의해 움직이던 공주는 신경쇠약에 걸려 안정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을 지경이고, 결혼도 왕이 정한 상대국의 왕자와 결혼해야만 하는 가련한 신세이다. 이때 창밖으로 보이는 로마의 야경은 그녀를 설레게 했고, 주치의가 말한 “스트레스 관리의 최선책은 잠시라도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꿈많은 아가씨의 호기심을 안고, 대사관에 식자재를 운반하던 트럭에 숨어 밖으로 탈출하게 된다. 우연히 만난 조는 공주에게 “어차피 늦었으니 몇 시간만 내서 로마를 구경시켜주겠다”고 하니 앤 공주는 기다렸다는 듯이 “상상도 못 하실 거예요. 온종일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싶어요”라고 좋아한다.

B. 미국 신문 기자 조의 최초 목적은?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앤 공주의 탈출 사건은 자신과 신문사에 큰 특종을 안겨줄 것이 확실했기에, 동료인 사진기자 어빙과 소형카메라(라이터 모양)를 준비하여 몰카 수준의 많은 사진을 촬영했지만, 앤 공주와의 추억이 쌓일수록 그녀의 순수한 매력에 빠져 결국 특종 사진 보도를 포기하고 그녀를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선의를 베풀게 된다.

C. 앤 공주가 조를 사랑했다는 증거는?
궁으로 돌아온 공주의 무책임한 행동을 훈계하는 대신들에게 앤은 “가족과 조국에 대한 의무를 잊고 있었다면 오늘 밤 돌아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영원히”라며 사랑을 포기하고 공인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돌아온 자신의 힘들었던 갈등을 얘기한다. 앤 공주는 마지막 기자회견장에서, 한 기자가 “어떤 도시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라는 질문에 단호하게 “로마! 제가 살아있는 한 이곳의 방문을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것은 로마가 ‘조 브래들리’와의 애틋한 사랑의 추억이 서린 곳이기 때문이다.

D.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오드리 헵번의 명장면들은?
@앤 공주는 조와 거리를 걷다가 멜론을 사고도 주인에게 돈 대신 악수를 하며 몸에 밴 고품격 공주의 일상을 보인다.
@트레비 분수 앞 진실의 입(Mouth of Truth)에서 조가 거짓말을 하면 손을 물어버린다고 하면서 앤 공주에게 손을 넣어보라고 한다. 앤 공주는 처음에는 두려워 넣지 못하다가 조가 자신의 손을 넣어 마치 손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연기를 하자, 놀라서 조를 끌어당긴다. 그 이후 조의 행동이 농담인 줄 알고는 힘차게 포옹한다.
@선상 무도회에서 벌어진 패싸움에서 악단의 기타로 상대방의 머리를 내리치는 등 우아한 공주와는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여인의 모습을 연출한다.

E.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애절한 이별이 연상되는 영화는?
앤 공주는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영원히 만날 수 없을 연인 ‘조 브래들리’를 향해 그윽하게 쳐다보고는 기자회견장을 떠난다. 오랫동안 그 모습을 보며 서 있다가 마지막 기자회견장을 쓸쓸히 걸어 나오는 ‘조’를 보면서, 헤밍웨이 원작 영화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 1957>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군의관(록 허드슨 분)이 잔혹한 1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 전선에서 사랑했던 여인 ‘제니퍼 존스’가 아기를 낳다 죽자, 쓸쓸히 병실을 걸어 나오던 모습이 오버랩된다.

<에필로그>
앤 공주는 뜻하지 않은 로마에서의 여행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통 사람의 자유를 만끽하고 조와의 순수한 사랑도 경험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런 시간을 통해 자신이 한 나라의 공주이고 국익을 위한 역할이 있기에 공인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책임감을 선택하고, 애틋한 사랑을 포기하고 궁으로 돌아가게 된다. 짧은 여정에서 그녀는 무척이나 성숙해졌고,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해답을 얻은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방황하고 갈등하고 있다면 여행을 떠나보라. 새로운 관점과 철학으로 지혜로운 인생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태호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