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학생들이 지은 한글 영물시, 여러 명

♣ 좀 특별한 한역시를 준비하며….



이번 가을학기에 역자는 학생들에게 다소 엉뚱한 과제를 하나 부과하게 되었다. 지난 칼럼에서 잠깐 언급했던 바이지만 학생들에게 4행으로 된 한글 영물시(詠物詩)를 지어 제출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아 참, 역자의 칼럼을 오늘 처음으로 대하는 분이 계시다면, 다른 것은 차치하고 지난주의 칼럼 “병든 짐승-도종환” 만큼은 꼭 일독해주시기 바란다.


애초에 역자는 고통 분담 차원(?)에서 잘 된 작품 몇 편은 한시로 번역해주겠노라는 약속을 하였더랬다. 그런데 막상 과제를 받고 보니 우열을 정한다는 게 참으로 부끄러워졌다. 젊은 청년들의 싱싱한 생각들을, 우와 열로 나누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번 학기 수업 기념으로 학생들의 모든 작품을 한시로 만들어주겠노라는 다소 무모한 약속을 덜컥해버리고 말았다. 언제나 그랬듯 역자의 강의가 다소 빡세었던 관계로 줄줄이 수강 취소를 한 뒤에 마지막까지 남은 학생이 겨우 열다섯 명…… 그리하여 마침내 15수의 학생들 영물시와 한역 영물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한역시는 몇몇 구절에 대해 제법 큰 폭으로 수정을 가하기도 하였다.[*로 표시]


총명한 청년들을 단지 약간 더 아는 지식을 가지고 선생이라는 자격으로 만날 때, 아! 그 때 느끼게 되는 기쁨은 정말이지 겪어보지 않으면 알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 기쁨이 역자가 앞으로 소개할 영물시의 한역(漢譯)에도 얼마간은 묻어있지 않을까 여겨본다. 맹자(孟子)도 그런 기쁨을 제대로 느껴 저 유명한 ‘군자삼락(君子三樂)’이라는 명제를 완성하여 세상에 남기게 되었을 것이다.


역자는 누가 뭐래도 이 나라의 미래는 청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청년들의 길을 꺾는 자가 있다면, 아니 그런 청년들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자가 있다면, 그가 누구든 그는 역사의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역자가 비록 무능하여 처자식에게 죄를 짓고 사는 몸이기는 하지만, 역사 앞에서 만큼은 죄인으로 남고 싶지 않다. 그리하여 역자는 다소 큰 손실을 감수하면서 청년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지금 이 순간에 한역(漢譯)의 완성도 여부를 떠나 이 점이 역자에게는 가장 큰 뿌듯함으로 다가온다.




  • 이제 이 칼럼의 독자인 여러분들과 약속 하나를 하고자 합니다. 대학생들이 작성한 이 15편의 영물시 가운데 14번까지의 정답을 적어-한글로 적어도 무방함- 역자의 이메일(hanshi@naver.com)로 보내주시면 정답자 가운데 열 분을 추첨하여 소정의 선물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5번 시는 어느 물건으로 특정할 요소가 다소 부족하기 때문에 제외하였지만 생각을 하다 보면 정답을 찾아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정답을 보내실 때 성명과 주소, 전화번호를 빠뜨리지 마시기 바라며, 응모기간은 다음 주 월요일 오후 6시까지로 하겠습니다. 많은 응모 바랍니다. ^^



1.


밤이 오면 찾아오는 손님을 반깁니다.


밤 내내 손님과 가장 가까이서 그와 맞닿습니다.


솜이나 나무처럼 많은 것들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손님을 받든다는 역할은 바뀌지 않습니다.


[태헌의 한역]


夜來喜迎尋訪客(야래희영심방객)


通宵相接作情親(통소상접작정친)


將木爲身絮爲臟(장목위신서위장)


侍奉精誠恒一均(시봉정성항일균)


[직역]


밤이 오면 찾아오는 손님을 반깁니다.


밤 내내 서로 맞닿아 정다운 친구 됩니다.


나무로 몸을 삼든 솜으로 내장을 삼든


모시고 받드는 정성은 늘 한결 같습니다.



2.


아, 너는 꼭 맞는 짝이 있구나!


서로가 없으면 쓸모가 없으니 진정한 천생연분이로다!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데


늘 누군가에 의해 짝을 잃어버려 안타깝도다!


[태헌의 한역]


於呼汝有正合侶(오호여유정합려)


失侶無用天生緣(실려무용천생연)


本事藏物不願離(본사장물불원리) *


爲人喪侶最可憐(위인상려최가련)


[직역]


아아, 너에게는 꼭 맞는 짝이 있구나!


짝을 잃으면 쓸모없으니 천생연분이로다!


본디 물건 보관을 일삼아 헤어짐 원치 않는데


남 때문에 짝 잃는 게 가장 가련하도다!



3.


물과 같아 보이나 물과는 전혀 반대이며


인간사 많은 비극의 원인이 되었고,


예로부터 사람에게 행복과 절망을 같이 주었는데


현명한 자들조차 이것이 악이라고 하지 못했네.


[태헌의 한역]


忽見如水性情異(홀견여수성정이)


喜日悲辰恒爲藥(희일비신항위약) *


能授幸福與絶望(능수행복여절망)


賢人亦難以爲惡(현인역난이위악)


[직역]


언뜻 보면 물과 같아 보이지만 성정은 달라


기쁜 날도 슬픈 날도 언제나 약이 되네.


행복과 절망을 줄 수가 있어


현인들도 악으로 여기지 못하였네.



4.


하늘의 아기 신선 조막만한 손으로


부채를 쥐고 놀다 그만 떨어뜨려버렸네


부채가 살랑살랑 떨어지며 시원한 바람 만들어내니


이것이 바로 노란 융단 깔린 날이 선선한 이유라네


[태헌의 한역]


天界童仙多小扇(천계동선다소선)


翻弄失手落地上(번농실수락지상)


無數下時作凉風(무수하시작량풍)


庭徑黃日是故爽(정경황일시고상)


[직역]


하늘의 아기 신선에게 작은 부채 많았는데


가지고 놀다 실수로 지상에 떨어뜨렸네.


수없이 내려올 때에 시원한 바람 만들어


뜰과 길이 노란 날은 이 때문에 선선하네.



5.


평소엔 맑은 물과 같은 얼굴을 지녔으나


날이 더우면 하이얀 안개의 얼굴 가지는구나.


진실을 말하는 듯하면서도 거짓을 보이는 너이지만


그 어떤 권세를 가진 자도 너를 무시할 수는 없구나.


[태헌의 한역]


平時如水有淸潔(평시여수유청결)


炎濕顔色如霧白(염습안색여무백) *


誠似說眞恒示假(성사설진항시가)


世上何人能排斥(권세하인능배척)


[직역]


평시에는 물과 같아 맑고 깨끗함이 있으나


덥고 습하면 얼굴빛이 안개처럼 하얘지지


정말 진실 말하는 듯해도 늘 거짓 보이지만


세상 누군들 너를 물리칠 수 있겠느냐!



6.


모든 것을 낳는 어머니


모든 걸 가져가는 탐관오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매정한 사람


길을 나서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나그네


[태헌의 한역]


恒爲玄牝生一切(항위현빈생일체)


誠似狗官收萬般(성사구관수만반)


天性冷漠不顧後(천성냉막불고후)


萬古無情不復返(만고무정불부반)


[직역]

늘 만물의 어머니 되어 모든 것을 낳고


정말로 탐관오리처럼 모든 걸 거둬가지


천성이 매정하여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영원토록 정이 없어 다시 돌아오지 않네



7.


오늘도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리는구나!


햇빛도 보지 못한 채 같은 곳을 맴도는 너.


뱀과 같은 모양이나 사악함이 없고


오히려 다른 이들의 발이 되어주누나.


[태헌의 한역]


今日亦是不舍走(금일역시불사주)


不見陽光恒轉圈(불견양광항전권)


形似長蟲無邪慝(형사장충무사특)


却倒爲人甘作船(각도위인감작선)


[직역]


오늘 역시 쉬지 않고 달리지만


햇빛도 못 보고 늘 둘레를 맴돌지.


뱀과 같은 모양이나 사악함이 없고


오히려 남을 위해 기꺼이 배가 되네.



8.


달을 이고 살면서 달 밝은 줄 몰랐다


하늘이 달을 지상에 내려보내시니


뭇사람 앞 길 환하게 비춰주네


[태헌의 한역]


大多戴月居(대다대월거)


不知月輝耀(부지월휘요)


代天賜月光(대천사월광)


爲人照前路(위인조전로)


[직역]


대체로 달을 이고 살지만


달이 밝은 줄 알지 못하며


하늘을 대신해 달빛 하사하여


사람 위해 갈 길을 비추어주네



9.


평상시에는 접혀있지만 어떤 때는 펼쳐져 있고


어떤 때는 흐름을 만들지만 평상시에는 죽어 있네


추운 날보다 더운 날이 더 좋을 것이며


물보다 불에 더 가깝다고 느낄 것이네


[태헌의 한역]


平時蓋縮或時張(평시개축혹시장)


或時作流平時死(혹시작류평시사)


不合於冷合於熱(불합어냉합어열)


不近於水近於火(불근어수근어화)


[직역]


평시에는 대개 줄어들고 어떤 때는 펴지며


어떤 때는 흐름 만들고 평시에는 죽어있네


추위에는 안 맞고 더위에는 맞으며


물과는 안 가깝고 불과는 가깝다네



10.


산꼭대기에서 언제나 우리를 반기고


누구나의 손길에도 차별 없이 춤을 춘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가볍게 움직여서


모두 신기해하며 그 춤을 보고 또 본다


[태헌의 한역]


山上恒迎來訪客(산상항영래방객)


不關是誰搖卽舞(불관시수요즉무)


身也巨大動也輕(신야거대동야경)


世人驚奇睹又睹(세인경기도우도)


[직역]


산위에서 항상 찾아오는 이를 맞는데


누구든 관계없이 흔들면 춤을 춘다네


덩치는 거대해도 움직임은 가벼워서


사람들이 신기함에 놀라 보고 또 보네



11.


네모난 빛이 밝게 빛납니다


우리의 눈을 밝혀주다가도 멀게 합니다


동그란 눈으로 세상을 담지만


사람들에게 스스로 세상이 됩니다


[태헌의 한역]


四角光輝燦(사각광휘찬)


開眼或廢眼(개안혹폐안)


圓眸載萬象(원모재만상)


於人自爲寰(어인자위환)


[직역]


네모난 빛이 밝게 빛납니다


눈을 밝히기도 하고 멀게도 합니다


동그란 눈동자로 세상을 담지만


사람에겐 스스로 세상이 됩니다



12.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벼랑 끝에선 전쟁이 시작된다.


날카롭게 날이 선, 뾰족하게 곧추선 칼들의 행렬


누군가는 떨어져, 산산조각 나야만 하는 잔혹한 전쟁


따스한 손길이 어루만지기 전엔 끝날 길이 없도다.


[태헌의 한역]


寒風吹來戰鬪始(한풍취래전투시)


銳利槍尖爭後先(예리창첨쟁후선)


時或落地爲碎片(시혹낙지위쇄편)


兵戈不息風和前(병과불식풍화전)


[직역]


찬바람 불어오면 전투가 시작되는데


날카로운 창날들이 앞뒤를 다툰다네


간혹 땅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지만


바람이 따스해지기 전엔 전쟁이 안 그치네



13.


사람들은 그가 있어 행복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눈울 뜨고 잠을 자기 전까지 사람은 그와 함께합니다


그와 함께 있으면 혼자여도 외롭지 않습니다


[태헌의 한역]


世人有某感幸福(세인유모감행복)


然而難脫自己天(연이난탈자기천)


從起到睡恒相與(종기도수항상여)


身邊無人不覺單(신변무인불각단)


[직역]


사람들은 아무개가 있어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나 자기 세상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항상 함께합니다


곁에 사람 없어도 외로움 느끼지 않습니다



14.


오늘도 홀로 조용한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가


그대 찾는 빈객들은 침 뱉고 더럽다 욕하지만


세상만사 더러움이 제 손에서 시작한 줄 모르는구나


가을비에 나뭇잎 떨어져 쓸쓸함만 더해간다


[태헌의 한역]


今日亦是獨佇立(금일역시독저립)


尋汝賓客罵汝汚(심여빈객매여오)


汚由人手人不知(오유인수인부지)


秋雨葉落益蕭蕭(추우엽락익소소)


[직역]


오늘도 역시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데


그대 찾는 빈객들은 그대 더럽다 욕을 하네


더러움이 사람 손에서 비롯된 걸 사람들은 모르고


가을비에 나뭇잎 떨어져 더욱 쓸쓸할 따름!



15.


바람도 갈라라 너와의 이별이 다가온다


조금 더 힘내라 너에겐 높은 목표가 있지 않느냐


하지만 조심하거라, 나는 너를 강하게 해주지만


너의 몸에 상처를 남길 수도 있는 존재이니


[태헌의 한역]


開風與君離別近(개풍여군이별근)


加力於君有理想(가력어군유이상)


留念吾也能强君(유념오야능강군)


亦能創傷君身上(역능창상군신상)


[직역]


바람을 갈라라! 그대와의 이별이 가깝다


힘을 더하여라! 그대에겐 높은 꿈이 있다


유념하여라! 나는 그대 강하게 해주지만


또한 그대 몸에 상처를 낼 수도 있느니!



2019. 12. 10.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