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황사가 심하게 불어왔지만, 오늘 비갠 봄날 하늘은 무한한 꿈과 희망을 준다. 이제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한껏 펴고 들로 산으로 맘껏 바람 쏘이다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아마 장자가 말한 소요유( 逍遙遊 )도 이 좋은 계절의 여왕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바야흐로 관광의 계절이 돌아왔다. 학교에서는 초등학생들이 도시락과 삶은 계란을 싸들고 소풍을 가고, 중고생들은 처음으로 집 떠나는 수학여행을 가슴 설레며 떠난다. 그래 그 때 우리 검정고무신 세대는 따뜻한 봄이 오면 일요일날을 기다렸다가 친구끼리 연인끼리 손을 꼭쥐고 일산으로 송추로 교외선을 타고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관광’이란 뜻은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의 풍경과 문화들을 구경하는 일’이라고 정의되어있고. 또 ‘과거를 보러가는 것’도 관광의 뜻에 포함되어있다.




관광이란 말의 원래의 어원은 주역에 나온다. 風地觀卦
주역으로본 관광(觀光)의 원뜻
의 4번째 음효(이를 六四라고 부른다, 六은 음효의 뜻이고 四는 아래에서부터 4번째에 있다는 뜻이다)에 “나라의 빛을 관찰하니 왕에게 손님이 됨이 이롭다(觀國之光 利用賓于王)”는 말에 기원한다. 나라의 빛을 관찰한다는 것은 한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졌는지를 잘살펴본다는 의미이다. 이 원전의 뜻을 약간 현대적으로 풀면, 관광이란 다른 지역에 가서 그 사회의 문명과 문화를 잘살펴본다는 의미로 정리할 수 있다.

관괘에서의 관자는 왕이 제사를 올리기 이전의 엄숙한 모습을 ‘보여서’ 천하를 교화하는 뜻도 있고, 또 아래 백성들이 왕의 모습을 ‘보고서’ 감화되는 뜻도 있다. 여기에서의 관자는 그냥 보다(see)는 뜻은 아니다. 통찰(deep insight)의 뜻에 가깝다. 20여년전에 주역을 공부하던 선생님께 듣기로 원래 觀은 황새가 공중을 선회하며 먹이감을 뚫어지게 본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나라의 빛을 보고, 왕에게 손님이 된다’는 의미로부터 과거시험을 치러간다는 뜻도 나왔다. 다시말해 한 나라가 다스려진 교화의 정도와 문화의 정도를 잘 살펴서 그 왕에게 손님이 되는 것이니, 잘 다스려져서 덕성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선택해서, 그 나라에 재상(宰相)이라는 왕의 손님이 되고싶다는 표현이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의 관광은 어떠할까? 관광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무엇일까? 관광지, 바가지요금, 불친절, 관광버스, 음주, 가무, 유흥장, 불결, 놀이, 도박…그야말로 점입가경으로, 볼거리와 못볼것이 고요함과 시끄러움이 신성(神聖)과 저속(低俗)이 마구 뒤섞이는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우리의 관광정책도 그윽한 산림 구석구석을 깎아내서 갈비집과 유흥장만 짓지 말고, 보다 차분하게 그 관광지의 역사와 문화를 익히고 감동을 받는 관광 본연의 의미를 살려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백제의 고도 부여라면 무슨 TV 연속극 ‘서동요의 촬영지’라는 것을 내세울 필요가 있겠는가? ‘서동요의 촬영지’에 가서 갈비 사먹고 돌아오는 길에 건강에 좋다는 고란사의 약수 떠먹고 온 것이 부여관광의 남은 결과라면 너무 野鄙하지 않은가? 누구나 부여에 와본 사람이라면 낙화암의 천하절경에서 꽃처럼 지던 3천궁녀의 비탄과, 석양의 황산벌에 버티고 섰던 5천결사대의 비장감을 느끼도록 해줘야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말없이 흘러온 백마강을 굽어보며 천여년을 울려온 고란사 새벽종소리의 긴 여운속에서 잠시라도 번뇌를 놓은 듯해야 부여를 관광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