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과 주역

홍길동전에 보면 한밤중에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듣고 주역을 펴놓고 길흉을 점치는 장면이 나온다. 또 전설의 고향쯤에는 반드시 주역에 통달했다고 하는 이인(異人) 술사(術士)들이 등장해서 이상한 주문을 외거나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역리(易理)를 응용하여 현실의 문제들을 풀어헤친다. 현대의 최첨단 과학에서도 주역은 맹활약하고 있다. 특히 신과학운동가를 위시한 동양 신비주의에 경도된 일부 과학자들중에는 주역과 현대서구과학이 중요한 부분이 일치하거나 미래의 과학 혹은 문명의 방향이 주역에 있다고 외친다. 이렇게 주역은 사주명리와 정감록과 노스트라다무스를 이어서 현대의 최첨단 과학에 이르기까지 홍길동처럼 신출귀몰하고 있다.

필자도 처음에는 주역에는 알 수 없는 무언가 그런 것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마 필자가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어쩌면 그런 호기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부를 해가면서 그런 생각은 점점 바뀌어 갔다. 지금 이글을 쓰는 목적도 주역에 관한 오해와 더불어 소위 역학에 대한 쓸데없는 부담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주역의 신비와 부담

주역에 대해서는 두가지 극단적인 견해가 있다. 하나는 점(占)으로서 백성을 속여온 미신의 원천으로 동양을 낙후하게 만든 원흉이라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신비스런 지혜의 보고이자 미래의 계시록이라는 견해이다. 전자는 우리의 전통을 부정하고 서구식 근대화에 일로 매진하던 시기의 동양전통에 대한 혐오감의 표현으로서, 객관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후자의 경우이다. 주역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감을 자아낸다. 주역만 알면 인간과 우주의 모든 비밀을 알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갖는 이들이 많다. 필자도 경험한 바이지만 어느날 주역을 공부하겠다고 선언한 나의 친구는 두달만에 나타나서 나에게 사주(四柱)를 불러보라고 소매를 걷어 부쳤다. 과연 사주를 보거나 점을 치는 것이 주역일까?

지성인일수록 주역에 대한 부담감은 더 무겁다. 이는 동양학을 전공한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왜냐면 동양의 모든 학문은 그 시원이나 원리를 언급할 때는, 다시말해서 천문(天文)․지리(地理)․명리(命理)․의학․기공(氣功)․병법 등의 제1과 제1장은 반드시 주역의 태극이나 음양이나 하도(河圖)․낙서(洛書)에서부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역은 동양적 진리의 빛을 대표하고, 주역의 권위는 다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듯하다. 학교에서 주역에 관한 수업을 시작할 때면 정말로 미래의 운명을 알 수 있느냐는 호기심어린 질문이 나오고, 심지어는 주역을 천번만 읽으면 물위를 걸을 수 있느냐는 난감한 물음들을 종종 받는다.




역학의 허와 실

전통시기 동양의 지성인들에게 있어서 또 주역 만큼 심적인 부담을 주었던 고전도 없었다. 󰡔사기․공자세가󰡕에 공자가 늙그막에 주역을 좋아하여 간책(簡冊)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애독하고 연구하였다(韋編三絶)는 고사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는 공자가 얼마나 학문을 좋아했는가를 말해주는 내용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생이지지(生而知之)한 성인도 주역책이 닳고 닳도록 연구했다는 말 자체는 그 사실성 여부에 관계없이 사람들에게 주역이 얼마나 난해하고 부담스런 경전으로 비춰졌었는가를 웅변해주고 있다. 공자같은 분의 손을 거쳐 그리고 그 이래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선현들의 노력을 통해 역에 관한 논의가 축적되어 왔다.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수천 수만종을 헤아리는 주역에 관한 주석서나 역학서들이다.

이런 역학서들은 대부분 주역의 원리를 체계화했으며, 그렇게 해서 우주의 이법과 공자의 미언대의(微言大義)를 밝혀냈다고 선언한다. 우리 사회에서 종종 눈에 띠는 소위 동양의 수비학(數秘學)이니 컴퓨터 이진법의 시원이니 하는 이름을 달고 돌아다니는 현대의 역학서들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부류들이다. 그러나 주희(朱熹)도 잘말했다시피 완정한 이론체계로 역을 틀지워놓으려 할수록 주역의 생동하는 실상을 제한해두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주역을 어느 하나의 이론체계로 논리화하려는 것이나 괘효사의 의미를 어느 하나로 고정시켜 놓으려는 것은 인간의 부질없는 욕심일지 모른다. 왜냐면 본래의 주역은 부호(Sign)와 상징(Symbol)이라는 언어를 쓰기 때문이다. 상징은 본질상 다양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주역을 보는 시각은 아주 다양할 수밖에 없고, 하나의 해석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관점에 따라 달라야 옳다. 그래서 역학의 이론들은 주역의 원모를 밝히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지만, 또 주역의 원모를 가리기도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더구나 첨단 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중 어떤 사람은 현학적 수사와 전문용어를 들추어가며 마치 현대과학이 주역의 사상과 일치하는 것처럼 요란스럽게 외치는 것을 보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도대체 주역의 무엇이 서구의 첨단 과학과 같다는 말일까? 또 왜 하필 주역일까? 여기에는 주역에 대한 새로운 신비주의적 인식이 깔려있거나, 서구 과학의 입장에서 동양사상의 원천이라고 하는 주역을 해부해버리고 싶어하는 제국주의적인 시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설혹 비슷한 측면이 있다면 그 점만을 과장하지말고, 먼저 그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분명히 해두는 것이 과학적 태도일 것이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