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박호현


 

선생님께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공짜는 정말 많다


공기 마시는 것 공짜


말 하는 것 공짜


꽃향기 맡는 것 공짜


하늘 보는 것 공짜


나이 드는 것 공짜


바람소리 듣는 것 공짜


미소 짓는 것 공짜


꿈도 공짜


개미 보는 것 공짜


 

[태헌의 한역(漢譯)]


免費(면비)


師曰天下無免費(사왈천하무면비)


然而免費眞正多(연이면비진정다)


呼氣吸氣免費呀(호기흡기면비아)


出語答語免費呀(출어답어면비아)


鼻聞花香免費呀(비문화향면비아)


目看天空免費呀(목간천공면비아)


身加歲數免費呀(신가세수면비아)


耳聽風聲免費呀(이청풍성면비아)


顔作微笑免費呀(안작미소면비아)


夜入夢鄕免費呀(야입몽향면비아)


晝觀螞蟻免費呀(주관마의면비아)


 

[주석]


* 免費(면비) : 공짜, 무료.


師曰(사왈) : 선생님이 ~라고 말씀하시다. / 天下(천하) : 하늘 아래, 온 세상. / 無(무) : 없다.


然而(연이) : 그러나. / 眞正多(진정다) : 정말로 많다.


呼氣吸氣(호기흡기) : 공기(空氣)를 내보내는 숨을 쉬고 들이키는 숨을 쉬다. / 呀(아) : 어세(語勢)를 돕기 위하여 문장의 끝에 사용하는 감탄 어기(語氣) 조사.


出語答語(출어답어) : 꺼내는 말과 답하는 말.


鼻聞花香(비문화향) : 코로 꽃향기를 맡다.


目看天空(목간천공) : 눈으로 하늘을 보다.


身加歲數(신가세수) : 몸에 나이를 더하다.


耳聽風聲(이청풍성) : 귀로 바람소리를 듣다.


顔作微笑(안작미소) : 얼굴에 미소를 짓다.


夜入夢鄕(야입몽향) : 밤에 꿈나라에 들어가다.


晝觀螞蟻(주관마의) : 낮에 개미를 보다.


 

[직역]


공짜


선생님께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공짜는 정말 많다.


공기 내쉬고 들이쉬는 것 공짜!


말 꺼내고 말에 답하는 것 공짜!


(코로) 꽃향기 맡는 것 공짜!


(눈으로) 하늘 보는 것 공짜!


(몸에) 나이 더하는 것 공짜!


(귀로) 바람소리 듣는 것 공짜!


(얼굴에) 미소 짓는 것 공짜!


(밤에) 꿈나라에 드는 것 공짜!


(낮에) 개미 보는 것 공짜!


 

[漢譯 노트]


박호현은 현재 부산에 있는 양정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고, 이 시는 작년에 지어진 것이다. 역자가 호현이의 이 시를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은 조그마한 SNS 모임에서였는데, 어느 회원이 소개한 글에 한시로 한번 만들어보겠노라는 댓글을 달고는 그날 밤에 바로 한시로 재구성해 보았다. 그러고 나서 ‘박호현’이라는 학생에 대하여 이리저리 찾아보았더니 세상에나! 호현이의 이 시를 몇몇 신문에서 소개까지 했음에도 호현이에 대한 기본적인 인적 사항, 이를테면 다니고 있는 학교 이름이나 나이 등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역자는 또 다른 회원의 지적처럼 이 시의 작자가 실제 초등학생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한역한 시를 따로 소개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굳혀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작권자가 불분명한 시를 공개적으로 소개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역자가 출강하는 대학 수업 시간에 지나가는 말로 이런 고충을 얘기했더니 학생 두 명이 거의 동시에 “호현이는 어느 초등학교 몇 학년”이라는 검색 결과를 바로 알려주었다. 컴퓨터라면 고급 사용자임을 자처하는 역자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역자는 적어도 신뢰성이 더 클 것으로 여겨지는 언론사들의 공식적인 뉴스 기사 등을 중점적으로 검색했던 반면에, 학생들은 개인 “블로그”에서 이 정보를 확인했기에 역자와는 다른 결과를 도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순간의 반가움은 역자의 개인적인 편견을 가볍게 누르고 매우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그리하여 역자는 마음 편히 ‘공짜시인’으로 알려진 호현이의 이 동시(童詩) 한역(漢譯)을 여기에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대목에서 역자는, 인연은 그 톱니바퀴의 이빨 하나만 어긋나도 돌아가지 않는 그 무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역자는 이제 호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 멋진 시인이 되기를 고대하면서, 호현이의 엉뚱한(?) 재능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알게 해준 호현이 할머니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사소하다고 해서 결코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하신 역자 조부님의 가르침이 이즈음에 천 근의 무게로 다가오게 된 까닭은, 순전히 호현이 할머니의 그 섬세함 때문이었다. 아! 역자는 애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무엇이었는지, 또 가장 좋아하는 색이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무늬만 아버지일 뿐인 사람이다. 그러니 어찌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겠는가!


이 시대의 어른들을 부끄럽게 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호현이의 이 시는 연 구분 없이 11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행과 2행을 제외한 나머지 시행들은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되어 동시적(童詩的)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역자는 이 시를 11구의 칠언고시로 재구성하면서 3구와 4구에서는 원시의 말을 늘이고, 5구 이하에서는 내용을 고려하여 원시에 없는 시어를 한 글자씩 일관되게 보태었다. 제1구를 제외한 모든 구에 압운하였지만, 3구 이하는 동자(同字)로 압운하였다.


2019. 11. 19.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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