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영화를 본 사람이 2억 명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J일보 2013. 12. 23자) 국민 1인당 4.12편을 보았다고 하는데, 50대 이상 어른들은 얼마나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젊은 층에서 영화를 많이 보았으리라 짐작된다. 세계 극장업계 순위 5위권에 진입했다고 하니 참 대단한 나라다. 그런데 왠지 씁쓸한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책을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국민 1인당 4권의 책을 읽었을까?

출판시장은 어렵다고 아우성이고, 영화시장은 너무 즐거워 비명을 지르고, 공기업은 부채가 400조원을 넘어도 “민영화 반대”운운하며 개혁은 거부하고 있으니, 국가 경영과 사회흐름에 어떤 원칙이나 기준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희망을 보는 근거를 발견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아 걱정이라고 하는 분들이 있지만, 휴일에 서점에 가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직장인은 물론 아이들을 데리고 온 아주머니와 아리따운 여학생들과 듬직한 청년들도 가득하다.



12월 말쯤의 휴일에 가평의 어느 골짜기에서 진행된 독서 모임에 갔다.



1박 2일로 진행된 워크숍이었는데 30명 정도의 다양한 사람들이 왔다.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분도 있고, 영주와 옥천, 광주 등지에서 가족들과 함께 온 분들도 있었다. 15개월 된 아기부터 대학생들을 데리고 부부가 오기도 했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는 젊은이도 있었고, 한의사와 작가도 있었다.



그들은 왜 거기에 왔을까? 무슨 뜻을 갖고 어떤 기대를 하면서 독서 모임에 참여할까? 정말 궁금했다. 피곤한 몸으로 일찍 잠에 들었다가 얼떨결에 깨보니 새벽 1시 반이 넘었는데, 방 한쪽 구석에서 젊은이들이 책과 독서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주책없이 끼어 든다는 눈치를 받을 각오를 하고 틈을 비집고 들어가 앉아서 맥주 한 잔을 받아 들었다.



안주가 없어 남은 소주를 다 마시지도 못하고 과자 부스러기만 주워 먹으며 새벽 4시가 될 때까지 독서의 의미와 가치, 사회의 문제와 진로, 각자의 고민과 해결 방안 등에 대해 솔직하고 신랄한 대화들이 오갔다. 대학생들이 MT에 참여하여 온갖 잡담을 나누는 듯 했다. 결론을 낸 것도 없고 정답을 찾지도 못했지만, 벌건 눈을 비비며 잠자리로 흩어지는 마음은 뿌듯했다.



인문학이 유행이라고 하고 문사철(文史哲)을 공부해야 한다고 떠드는 모습들이 우습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공계를 구분하고, 인문 사회학을 무시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최근 S그룹과 H그룹의 승진 발령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이공계 출신과 R&D 분야의 전문직이 50%이상 임원에 올랐다는 점이다. 중국지도자들의 60%가 이공계 출신이라고 한다.

공대 진학을 기피하면서도 인문계는 취직이 어렵다는 우리나라의 문제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벽을 허물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며,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실력이 있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