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발생한 중부 술라웨시 지역 쓰나미 때 헌신적인 대응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재난관리위원회 홍보책임자가 지난 7월 암투병 끝에 생을 마감하였다.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이 안타까워하며 그를 추모하였다. 그런데 관련 기사를 읽다 보니 특이한 점이 보인다. 사망 장소가 중국 광저우의 한 병원이다. 인도네시아 공무원인 그가 왜 중국 대도시의 병원에서 생을 마쳤을까?

지난 6월에는 유력 정치가의 부인이 싱가포르 한 병원에서 투병 끝에 사망한 일도 있다. 이 외에도 인도네시아 신문에 난 부고를 보면 유명인들이 싱가포르나 중국 같은 인접국뿐 아니라 일본, 독일 같은 먼 나라에 소재한 병원에서 생을 마치는 경우들이 꽤나 많음을 알 수 있다.

왜 그럴까?

기본적으로 인도네시아인들이 자국 의료기관과 의료진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 주재할 때 교민들을 통해 가장 많이 듣던 말 중 하나가 아픈 데가 있으면 바로 그 날로 비행기 타고 귀국해서 국내병원에서 진단하고 치료 받으라는 것이었다. 현지 병원을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외국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현지인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한 화교계 사업가는 친척 어른 중 한 명이 갑작스러운 심장질환으로 자카르타 시내에 있는 꽤 유명한 병원의 응급실을 찾았다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몇 시간을 우왕좌왕하다가 사망한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 병원에 절대 가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음은 물론이다. 그 곳은 그래도 꽤 유명한 대기업 계열의 병원인데 여기를 믿지 못하면 어디를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외에서 진료를 받을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분초를 다루는 급성질환이 아니라면 해외에서 질병을 치료한다. 건강관리도 해외 기관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젊은 화교계 사업가는 부모님을 모시고 싱가포르에서 건강검진을 하고 돌아온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 가족은 싱가포르에 주치의를 두고 있었다. 3D 심장초음파 사진에 붉은색을 입혀 심장의 모양을 재현한 검사결과지를 보니 한 눈에도 비싼 검진 패키지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처럼 해외에서 진료를 받는 행위가 부유층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중산층도 치료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국외로 나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하지만 중산층은 부유층과는 다른 이유로 비행기를 탄다. 부유층은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라면 비싼 비용과 여비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생각이겠지만 중산층은 해외진료가 국내진료보다 서비스의 질뿐 아니라 비용 측면도 유리하다는 생각 때문에 해외를 찾는다. 한 마디로 가성비가 좋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요즘 각광받는 의료관광지는 인접국인 말레이시아이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남편의 심장질환 치료를 위해 말레이시아 페낭을 찾았던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페낭에서의 치료가 인도네시아에서 받았던 진료에 비해 훨씬 만족스러웠을 뿐 아니라 비용도 더 싸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진료일정을 전후해 페낭과 그 주위를 관광하는 여유도 누릴 수 있었다. 실제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이 그런 이유로 말레이시아를 찾는다. 중증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찾는 것이 인도네시아에서 진료받는 것보다 더 경제적이고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의료관광위원회(MHTC) 자료에 따르면 의료목적으로 말레이시아를 찾는 인도네시아인의 수는 2018년 기준 9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15년에는 50만명이었다. 2019년에는 11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말레이시아와 인접한 수마트라섬에서 오는 환자들이 가장 많고, 심장질환과 암 치료가 주된 치료대상 질환이라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인도네시아 의료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도 치열하다. 말레이시아만 해도 공항에서 마중은 물론이고 숙소와 병원까지 이동을 책임지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많다. 언어가 통하기 때문에 별도의 통역이 필요치 않고 음식이나 문화가 비슷하다는 점이 강점이다. 대만에는 아예 이슬람병원 컨셉으로 환자들을 유치하는 병원도 있다. 할랄(또는 이슬람) 관광과 의료관광을 결합시킨 하이브리드 상품이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이슬람병원은 비교적 새로운 개념인데, 대만이 의료관광뿐 아니라 이슬람 관광객 유치에도 적극적이기에 생각해 낼 수 있는 전략이다.

꼭 가까운 나라로만 가라는 법은 없다. 가까운 일본에만 해도 인도네시아어가 통하는 간호사를 두고 인도네시아어 홈페이지까지 운영하며 환자들을 유치하려 노력하는 병원도 있다. 부유층들이 치료를 위해 유럽까지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들을 볼 때 비행시간 7시간 정도인 우리나라도 인도네시아 의료관광객을 유치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의료서비스 질이 높고 마침 최근 들어 관광지로써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입장에서 해마다 자국민 수백만명이 비행기를 타가며 해외에서 진료를 받는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전임 유도요노 대통령은 공무원들에게 국내에서 건강검진과 진료를 하라고 권하기도 하였다. 본인도 재임 기간 중에는 국내에서 건강검진을 하곤 했다.

하지만 애국심 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합리적인 비용에 우수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이 필요하다. 자체 역량으로 빠른 시일 내에 의료서비스의 질을 끌어올리기가 어려운 경우 해외자본과 노하우를 들여오는 것도 방법이다. 이미 2016년에 인도네시아는 투자제한리스트 개정을 통해 병원부문에 대한 해외투자 지분을 67%까지 허용하였다. (아세안 국가 자본인 경우 70%) 병원 부문에 해외투자가 더 필요한 인도네시아는 급기야 올해 초 투자조정청(BKPM)장이 교육과 더불어 병원부문의 해외투자 문호를 더 개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구체적인 수치는 나오지 않았지만 다음 번 투자제한리스트 개정에서는 해외투자를 100%까지 전면 허용할 수 있다는 전망마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소득증가와 함께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겠다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것이다. 인도네시아 당국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을 성공적으로 확충해 그 수요를 상당부분 국내에서 흡수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그렇지 않으면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있는 병원에 가야 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들 어디로 향할지 궁금하다.

*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 crosus@koreaexi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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