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TV나 라디오, 인터넷 신문과는 달리 좋은 점이 많다.
그 중에 몇 가지만 정리해 본다.



첫째, 신문은 전 세계 곳곳에서 뉴스거리를 찾아내는 기자들의 땀과 깊이 있는 논설위원들의 노력이 집적된 예술작품이다.

글의 논리와 문장의 수려함은 그 어떤 사실보다 위에 있다. 행여 진실이 왜곡되거나 정도를 벗어날까 노심초사한 흔적들이 곳곳에 나타난다. 좋은 신문일수록 그 언어의 품격과 문장의 구성은 모든 학습자료에 우선한다. 고대로부터 전해 오는 명언과 기억해야 하는 구절들을 어디서 그렇게 잘 찾아 내어 적절히 인용하는지 알 수가 없다.

엄청난 지식과 다양한 경험들이 글과 문장에 스며들어 있다. 그런 글을 아주 쉽게 언제든지 접할 수 있고 읽을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행복이며 기쁨이다. 천박한 언어와 가벼운 행동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일부 정치인들은 도대체 신문을 어떻게 읽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둘째, 신문의 다양성과 유연성은 어떤 소설이나 가십거리와 비교할 수 없다.

음악, 미술, 역사, 철학, 건축, 디자인 등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사건과 사고 등 인류 역사에 기록될 모든 자료가 면밀히 조사되고 명확히 정리되어 만들어지는 하나의 작품이다. 전문성의 경계를 뛰어 넘는 신문의 뉴스해설과 논설의 주장은 역사기록의 첨단 작품이다.

정확한 통계를 수집하고 새로운 사실을 찾아 내어 시의적절하게 발표하고 정리하는 언론 중에 신문만한 것이 없다. 인간의 삶에 관한 모든 장르를 섭렵하고 좌우를 넘나들며 경계를 허물어, 국민의 교양과 시민의 자질을 높여 주는 신문의 역할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다.

통섭(統攝)의 시대에 걸 맞는 예술의 보고(寶庫)다. 생각의 범위를 깨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편견과 고정관념에 빠진 분들이 신문을 다양하게 읽고 암기할 것을 권한다.




셋째, 상세함과 깊이를 더해 준다.

한 번 읽고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깝고 소중한 내용들이 가득하다. 동서고금을 망라한 명언과 명작의 해설, 세계적인 석학이나 칼럼니스트의 기고문은 아무나 접할 수 있는 글이 아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대충 읽고 넘기기엔 그 가치를 비교할 수 없다. 밑줄 쳐가며 읽고 외우고 싶은 문장과 세밀한 설명은 방송이나 인터넷이 따라갈 수 없다.

복잡한 전철이나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졸거나 휴대폰에 빠져 있는 사람들 틈에 섞여, 경제신문에 밑줄을 쳐 가며 읽는 젊은이를 보면 어딘가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신문은 본다(see)고 하는 것보다 읽는다(read)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대충 읽고 버릴 만한 신문도 있고, 매일 반복되는 별 볼일 없는 기사거리도 많지만, 좋은 글과 문장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을 때가 있다. 언어의 가치와 문장의 깊이를 생각하면서 가치관을 정립하고 신념을 굳히는데 신문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하다.

무엇보다고 다양한 사회현상을 바라 보고, 유연한 사고 방식을 갖추는게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