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따라가기가 버거울 만큼 신기술이 생성되고 있다. 3차 산업혁명까지는 육체적 노동을 대체하는 시스템의 자동화에 집중하였다. 3차 산업혁명은 사람의 근육을 대신하면서 유형적 변화를 가져 왔고 쉼(休)이라는 시간의 공간을 제공하였다.

4차 산업혁명은 정신적 노동을 경감시켜 주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데이터는 사람을 이해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최근 유튜브는 진화하고 있다. 자주 검색한 데이터는 사용자의 패턴을 이해하는 수단이다. 반복되는 키워드 중심으로 정보를 수집 분석하여 선택지를 제공한다. 일일이 검색해서 찾는 수고를 덜어 준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은 4차 산업혁명의 산물의 일부분이면서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신기술은 종전의 일거리는 사라지게 하면서, 새로운 일거리를 만든다. 기존의 다양한 직업은 여러 개의 토막으로 나뉘어진다. 수요자가 필요할 때마다 일이 발생하는 구조로 변형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육체적 자유를 넘어 무형적 여유로움을 제공하고 있다. 삶이 일에 부속되었던 3차 산업혁명과는 달리 일이 삶에 맞추는 주종관계가 뒤바뀌고 있다. 이러한 삶은 편리함을 넘어 무한한 자유로움을 준다. 시간적 공간적 감정적으로 자신만의 쉴틈이 생겼다.

이제는 디지털 없는 일상을 상상하기 어려워졌다. 오지 탐험에 나오는 초월적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지 않는 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디지털에 노출되어 있다. 최근 신규 아파트의 기본 사양은 스마트홈 시스템이라고 광고한다. ‘노래 들려줘.’ ‘집에 난방 켜줘’ 등 이제는 손발이 아닌 입으로 기기를 운영하는 시대가 되었다. 편리성은 과거 그 어느 때와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질적으로 발전하였다. 디지털은 삶의 무게감을 덜어 준다. 일상은 새털처럼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디지털은 삶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소중함과 가치가 가벼워지고 있다. 상실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제는 골동품이 된 필름카메라를 상상해 보자. 사진 한 컷을 담기 위해 피사체를 두고 여러 번 옮겨 다니며 앵글을 맞추던 그 시절이 엊그제였다. 필름 한 통으로 담을 수 있는 사진은 고작 27장이다. 제한적 자원으로 아름다운 풍경, 보고 싶은 인물, 간직하고 싶은 추억을 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작금의 스마트폰은 어지간한 카메라보다 성능이 뛰어나다. 그것도 필름이 없는 디지털이다. 무한대로 피사체를 담을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휴지통에 버리면 된다. 가능한 범위내에서 일단 카메라에 담는다. 버리기 위해 사전적 행동인 ‘고민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졌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버린다. 사진에 담긴 추억은 안중에도 없다. 추억은 ‘찰나’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 사진은 SNS에서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용도가 되어 버렸다. 시간이 지나가면 과거가 된다. 과거는 추억이다. 간직하고 싶은 추억을 오랫동안 소장하고 음미하고 싶을 때 사진에 담는다.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된다. 습관은 전염된다. ‘소중함’이라는 공간에 ‘가벼움’이 비집고 틀어 앉으면 어떻게 될까? ‘아니면 말고....’와 같은 비방 댓글, ‘묻지마’ 관련 범죄행위, ‘나만 편하면 돼’처럼 종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뉴스를 접하면서, 디지털이 가져 온 또 다른 ‘가벼움’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필자의 생각이 너무 앞섰으면 좋겠다. 디지털은 분명 다양한 편리함과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언어로 소통하면서 비판적 사고를 할 줄 알고, 감사와 고마움을 느끼고, 소중하게 간직할 추억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AI가 또 한 차례 회오리바람을 몰고 올 것이다. AI 궁극적 목적은 사람과 대화하고 상호작용하는 데 있다. 과학의 발전과 인간성이 반비례해서는 안된다. 인간성의 상실은 사람이 기계에 예속될 수도 있다는 전조 증상일 수도 있다. ‘소중함’을 기억하고 ‘가치’를 잃지 말자.

박창동 HRD박사(KDB산업은행 전문위원/한국HR협회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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