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살아 있다. 아직도 살아 갈 날이 조금 남아 있다.
살아 가면서 느끼고 배우는 게 한이 없지만, 그래도 살면서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기에 행복하다.

2. 나는 건강하다.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있고 목욕도 혼자 할 수 있다.
마음과 정신도 약간 건강한 편이다. 가끔 짜증도 내고 화도 내고,
신경질도 부릴 때가 있지만, 이런 감정이 골고루 있다는 게 다행스러울
때가 있다.

3.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많고,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에 대한 험담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또 나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나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고, 차 한 잔 사
주고 싶은 이웃이 있고, 기다려지는 사람이 있다. 가끔 주말에 술 한 잔
하자며 전화하는 친구가 이웃에 있으니 즐겁지 아니한가?

4. 10년 전, 100년 전 음악을 들으며 기뻐할 수 있고, 옛날의 그림을
보면서 뭔가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 남이 쓴 글을 읽고 느끼고 배우고
감동을 받기도 하고, 내 생각을 글로 쓸 수도 있다.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이 읽어 주기도 한다.

5. 나에겐 할 일이 있다. 부지런히 끝마쳐야 할 일이 있고,
나에게 일을 맡겨 주는 고객이 있다. 가끔 게을러져서 하기 싫을 때도
있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느라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나에겐 일이
있다. 돈을 벌고 시간을 때우고, 일정한 기간 안에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할 일이 있다. 그 일의 결과를 필요로 하는 상대가 있다.

6. 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다양한 잡념에 빠지고 말도 안 되는 공상을 할
수 있다. 보고 듣고 느낀 데 대해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고, 제멋대로
오해를 할 수도 있다. 착각도 할 수 있고 희망도 가질 수 있고, 기대도
할 수 있다.

7. 육체적인 활동과 정신적인 행동을 함께 할 수 있다. 먹고 마신 음식이
소화가 되고 영양분으로 변하여 온 몸에 공급이 된다. 그런 것들이 조화
와 균형을 이루어 피를 돌게 하고 뼈가 움직이게 한다. 아주 철저하게
주기적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그래서 신비로운 내 육체에 스스로 감사한다. 이에 따라 정신도 맑아지고
영혼에도 기운이 감돈다.
먹은 것만큼 힘이 솟고 쉬는 것만큼 편안해진다. 정말 신기한 현상이다.

8. 바쁜 와중에 잠시 쉬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글을 쓸 수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황제”를 들으며 휴가를 가지 못한 한 낮의
여름을 달래고 있다. 어찌 행복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