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존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고 관계에 따라 다르다. 주체적인 자기만의 존재 방식도 있다.



인간이 혼자 살아 간다면 대인관계에서의 갈등도 없고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길 리가 없다.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 관계에서의 스트레스도 받고 괜한 오해로 인해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첫째, 주체적인 존재로써의 자신의 정체성은 뚜렷해야 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탁월한 역량을 발휘함에 있어 상처를 받거나 머뭇거림이 있게 되면 자존심이 상하고 존재 의미를 잃게 된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공부의 가치를 높이 여기고 운동선수는 운동에 목숨을 건다. 평생 바둑에 미친 사람은 바둑으로 명성을 날리고, 음악에 빠진 사람은 음악과 결혼을 한다. 그걸 방해하거나 그런 열정과 노력에 상처를 주면 모든 관계를 끝낼 정도로 돌아 설 수도 있다. 작가가 쓴 글에 손을 대거나 아마추어가 그린 그림에 손을 댈 때의 감정은 같은 한 사람인데도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둘째, 상황적인 존재로써의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의 모습과 도서관에서의 모습은 같을 수가 없다. 남들 앞에서 기조 연설을 하는 자리에서 국민들에게 절을 하는 정치인과 집안에서 부부간에 논쟁을 벌이며 다투는 지도자의 모습도 다를 수 밖에 없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와 송년회 자리에서 동창들과 노래를 부르는 친구의 모습도 다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작가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카페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는 여인의 두 가지 모습은 인간의 자연적인 존재 방식이다.




셋째, 관계에 따라 다른 모습도 아름답다.

선후배간에 인사를 주고 받을 때와 사제지간에 술잔을 돌릴 때의 모습은 각기 다르고, 골프장에서의 만나는 친구들과의 웃음은 음악회에서의 조용함과 사뭇 다르다. 직원들과 야유회를 갈 때와 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는 걸음걸이도 다르고 얼굴 표정도 다르다.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을 할 때와 친구들과 송년회를 할 때는 웃음소리가 다르고 입에서 나오는 어휘가 다르다.



조용히 사색에 잠기는 걸 좋아할 것 같던 사람이 색다른 모임에 나가 주책을 떨며 황당한 유머와 해학을 보이기도 한다. 유명한 어른이 치명적인 실수를 해서 위신을 잃기도 한다. 공대를 나온 사람이 소설가가 되기도 하고, 의과대학을 나온 사람이 경영학 책을 쓰고 리더십 강의를 하기도 한다. 씨름 선수가 개그맨도 되고 가수가 화가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변신의 귀재들을 만나면서,



“어떻게 저 사람은 저렇게 다를 수 있지?”라며 의외라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와~! 저 사람이 저런 점도 있었네.”하면서 놀라기도 한다.





그래서, 하버드 대학교의 하워드 가드너 교수(Howard Gardner)는 인간은 한 두 가지 지능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같은 한 사람이라도 저마다 기질과 특성으로, 각기 다른 수준으로 다양한 지능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점은, 모든 사람의 다양한 지능들이 상황에 따라, 관계에 따라또는 아무 조건 없이 모두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더욱 재미있고 조화롭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숙한 사회로의 도약과 수준 높은 문화 의식을 갖추기 위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모두 똑같지 않음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감사해야 할 것이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인간 관계는 더욱 유연해지고 돈독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