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인 2005년 말레이반도 서해안에 위치한 말레이시아 주요도시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내리니 짙은 안개가 껴 있었다. 타는 냄새도 났다. 책에서만 읽었던 런던스모그 같은 용어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말레이시아 공기가 원래 이런 것인지, 다른 요인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처럼 미세먼지나 대기질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을 때였기 때문이다.

남쪽인 말라카로 내려오니 공기질은 더 안 좋아졌다. 타는 냄새도 심해졌다. 아침에 숙소에서 일어나 문 앞에 와 있는 신문을 보고서야 이 연무의 원인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방에서 발생한 산불임을 알 수 있었다. 공기질이 안 좋아 학교들이 문을 닫았다는 기사도 보이고, 노약자나 민감군들은 바깥활동에 주의하라는 권고들도 실려 있었다. 300이니 600이니 공기질을 나타내는 숫자들도 도시 별로 소개되었다. 그 수치가 공기가 얼마나 안 좋다는 것인지도 전혀 감이 없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 신문 1면에 크게 써 있던 ‘언제까지 우리가 이 이웃을 참야줘야 하는가?’ 라는 제목이다. 벌써 14년 전의 일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이 여러 이유로 갈등을 빚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도 이전부터 영토분쟁, 말레이시아 內 인도네시아 근로자의 처우문제 등 여러 이슈를 놓고 티격태격 해왔다. 지금은 수마트라섬과 보르네오섬(인도네시아령은 칼리만탄)에서 발생하는 연무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이 상당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연례행사가 된 연무는 주로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섬 중부와 남부, 그리고 인도네시아령 보르네오섬에서 발생하는 산불 때문에 일어난다. 말레이시아령 보르네오나 말라야 반도에서도 산불은 발생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하는 산불보다는 정도가 심하지 않다. 요즘은 위성사진으로 현재 발화지점이 몇 군데인지까지 정확히 나오기 때문에 발뺌은 어렵다. 기존 숲을 밀고 단일 경작물을 심기 위해 고의로 산불을 내거나 부작위로 산불을 방치하는 팜이나 제지 플랜테이션들이 주범으로 지목된다. 개인이나 중소규모 농장뿐 아니라 관련 분야 대기업들도 대부분 연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산불발생과 이로 인한 연무의 이동은 기상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건기에 심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심한 해들이 있다. 가뭄이 심하거나 발생한 연무가 바람을 타고 인구가 밀집한 지역을 향해 가는 그런 때이다. 2015년 산불과 이로 인한 연무 피해가 특히 극심했고, 2017년과 2018년에는 좀 잠잠해졌다가 올해 8월초와 9월에 다시 피해를 가져왔다.

그런데 대기오염의 특성상 오염원과 피해를 가장 많이 보는 곳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문제이다. 발화지점은 인도네시아령 수마트라와 보르네오섬에 집중되어 있지만 여기서 발생한 연무는 바람을 타고 쿠알라룸푸르를 비롯한 말레이시아 주요도시를 강타한다. 물론 인도네시아도 수마트라 지역 3개주와 보르네오섬(칼리만탄) 3개주가 연무로 뒤덮여 주민들이 큰 피해를 보지만 인도네시아 정치, 경제, 사회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바섬은 상대적으로 연무피해에서 벗어나 있다. 산불과 연무피해가 컸다고 하는 2015년과 2016년에도 자카르타는 자동차 배기가스와 대기정체 등 자체 원인으로 오염이 발생했지 연무로 인한 오염에서는 자유로웠다. 지금도 그렇다. 자카르타 및 자바지역에서 연무피해는 신문이나 티브이로 보아서 그런 줄 아는 것이지 피부로 와 닿는 주제는 아닌 것이다. 만약 자카르타 인근이 매년 극심한 연기와 안개에 휩싸였다면 이 사태의 향방이 좀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발화지점과 풍향(Asean Regional Meteorological Centre 자료)

인도네시아에서도 산불과 이로 인한 연무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을 기울이기는 한다. 올해 8,9월에도 피해가 큰 6개주에 비상상황을 선포하고 약 1만명에 달하는 군경과 소방관, 공무원들을 동원하여 발화지점을 포착하고 초기진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신문에는 연일 화재발생에 책임이 있는 용의기업들이 오르내린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같이 피해를 직접 보는 나라들은 만족스럽지가 않다. 이전에는 인도네시아가 과연 이 산불과 연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를 물었다면 지금은 이와 더불어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가 높다. 건기에 발생하는 연무 문제는 이미 인도네시아를 넘어 아세안 지역의 역내 문제가 되었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8, 9월에도 말레이시아 신문들은 1면에 각 도시의 대기질 지수를 올려 놓았고, 학교들은 문을 닫았다. 20년 이상 끌어온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정치권에 근본적 해답을 요구하는 소리도 높고, 인도네시아의 책임있는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도네시아는 곤혹스럽다. 지난 8월 초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순방 때는 대통령 공식일정 때 극심한 연무가 날아 들었다. 싱가포르에서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대통령을 환영하는 의전이 인도네시아에서 날아온 짙은 연무 속에서 펼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반격의 움직임도 있다. 말레이시아 內 연무가 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것이 아니고 말레이시아에서 자체 발생한 불로 인한 것도 있다는 것이다. 또, 설혹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불이라도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기업이 책임이 있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인도네시아 측 반격의 요지이다.

말레이시아 입장에서는 적반하장이다. 물론, 말레이시아 자체 요인으로 발생하는 연무도 일부 있고 자국 기업들도 책임이 있다 하지만 연무의 주요인은 인도네시아 발 화재임을 부정하기 어려운데 말레이시아 탓을 하다니. 이 기회에 자국 기업들도 강력히 단속하면서 인도네시아가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강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연무는 이제 환경을 넘어서 역내 외교적 문제이기도 하다. 새로운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한 앞으로도 당분간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산불로 인한 연무 때문에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crosus@koreaexi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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