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낭만의 꼬부랑길"

예전에 속초를 갈 때는 신남과 홍천을 지나며, 길가에 있는 옥수수와 찐 감자를 사 먹고, 인제 내린천에 발을 담그고 놀면서 천천히 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미시령을 넘으며 도랑에 발을 담그고, 명태를 말리는 곳에서 황태를 사기도 했다. 지금은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며 두어 시간 만에, 서울과 속초 강릉을 아주 빠르고 편하게 달린다. 여행의 목적지를 향해 급하게 달리는 질주 본능만 남아 있다. 길 옆의 산간마을을 구경하고 하늘을 바라보는 낭만은 사라졌다. 낭만의 멋만 사라졌을까? 주변지역 마을의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감자와 옥수수를 사 먹는 사람이 없고, 보리개떡과 막걸리도 팔 수 없게 되었다는 거다. 도시와 마을마다 이어지는 널찍한 고속도로 때문에 시골의 인심을 차가워지고, 길가의 정취는 사라졌으며, 차를 타고 빠르게 오가는 사람들은 낭만을 잃었다.

여행이란, 목적지에 도착하여 먹고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오가며 떠들면서, 내렸다 탔다 하면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끼리 수다를 떠는 기쁨도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인정이 싹트고, 아이들 인성교육도 저절로 되는 건데, 오로지 놀러 가고자 하는 목적에 눈이 어두워, 오가며 느낄 수 있는 자연경관은 아예 모른 체 스쳐지나다닌다. 과연 곳곳에 뻥 뚫어 놓은, 널찍한 도로는 문명의 이기(利器)일까, 낭만의 파괴자일까?

오가는 차량도 별로 없는 지방도로를 빠르게 달리면서 또는 텅 빈 버스들이 가득한 시골 도시의 공영터미널을 다니다 보면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니는 차량도 많지 않은 이 지역에 이렇게 넓은 길이 필요할까? 손님도 별로 없는 버스나 기차가 뻔질나게 오르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무하는 인원도 별로 없는 관공서를 이렇게 웅장하고 큼직하게 지어놓을 이유가 있었을까? 중소도시의 시청이나 문화회관, 체육관 등 각종 공공기관이나 단체의 건물들은 연중에 별로 쓰임새도 없는 것 같은 데, 가는 곳마다 분에 넘치고 웅장한 위용을 뽐내며, 용도 이상으로 잘 지어 놓은 걸 볼 수 있다. 쓸데없이 넓은 길을 잘 닦아 놓는 거나 용도에 맞지 않는 건물을 번듯하게 지어 놓은 거나 모두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을 듯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방자치단체의 장(長)이 새로 부임할 때마다 “새롭고 멋진 공약(公約)”을 내세우고, 그런 약속들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엄청난 예산을 물 쓰듯이 쓴 것 같은 느낌이다. 공사를 크게 벌일수록 큰 예산을 쓸 수 있고, 그럴수록 남길 수 있는 여지가 커서, 뒷돈을 먹어도 한탕 크게 해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하지 않아도 되는 공사를 벌인다거나, 쓸모없는 건물을 지어놓고 빈집으로 놔두는 것은 혈세를 낭비하는 지름길이다. 이제 수십 년 동안 갈고닦은 도로와 기반시설은 어느 정도 갖추어졌으니, 이제부터는 안전을 위한 보수와 개량에 힘쓰고, 남는 예산을 아끼고 절약하여 나라살림을 축소해야 한다. 코딱지만한 나라에 고속도로와 기찻길로 다 덮고 나면 자연이 숨 쉴 공간이 줄어든다. 그렇지 않아도 태양광 건설이니 놀이공원이니 해서 산을 깎고 들을 훼손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더 이상의 자연파괴와 생태계 교란을 중지하고, 자연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산과 들을 보존해야 한다. 국가예산도 절약하고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일년 내내 곳곳에서 파헤치는 공사는 중단하고 축소하여야 한다. 이왕 지어놓은 공공건물들은 연중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시민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도서관이나 복지공간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공무원의 근무시간 때문에 관리감독이 어렵다고 핑계 대지 말고, 아르바이트나 임시직 등을 활용한다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회기반시설(SOC) 확충사업은 점차 줄여나가고 개선 보완 작업에 집중하면서, 절약한 예산은 문화향상과 교육 활성화에 힘써야 할 때다.

 

홍석기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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