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열도 도보 종단 그 이후

한일경제협회 전 전무이사 허남정

귀국 당일 가족들과 가진 환영 모임

61일간에 걸친 1,111km 일본열도 도보 종단을 끝내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 환갑도 훨씬 넘긴 나이에 두 달간의 도보여행은 조금은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걷는 것 자체보다도 혼자 하는 여행이라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육체보다는 정신적인 부담이 컸다.

귀국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벌써 일본 열도를 걸은 일이 그리워진다. 지하철에서 배낭을 멘 외국인을 보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편한 길을 택하면 보이는 경치는 언제나 같고, 어려운 길을 택하면 보이는 경치는 언제나 바뀐다‘라고 누가 말했다. 여행의 맛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일본을 두 다리로 걸으며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힘든 가운데 그날그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면 행복했다. 길에서 혹은 열차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부지런히 소통했다. 국경을 초월하여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이었다.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주위의 여러 사람들에게 대한 감사로 마음이 가득했다.

1953년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등정에 성공한 에드먼드 힐러리가 기자들에게 한 말 “내가 정복한 것은 산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라는 명언이 가슴으로 이해가 되었다.

일주일을 쉰 다음 서초동의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집필을 시작했다. 도서관에 갈 때에는 보통 2-3 정거장 걸은 후에 지하철을 탄다. 정리한 원고와 사진은 8월말에 출판사에 넘겼으며 10월 하순 출간을 예정하고 있다.

책의 제목은 <일본은 원수인가 이웃인가>로 다소 도발적인 것으로 정했다. 책을 많이 팔아야 하는 출판사의 입장이 반영되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땀 흘리며 경작한 농산물의 풍작을 기대하는 농부의 심정에 공감 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출간을 기다린다.

집필하는 중에 배우 하정우가 쓴 신간 <걷는 사람 하정우>를 부산의 여동생이 보내왔다. 그는 저녁 회식 후에는 반드시 걸어서 귀가한다고 했다. 걷기의 효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다.

걸으면 건강에도 좋지만 생각이 시작되고 생각이 깊어진다. 그래서 하정우의 연기에 내공이 느껴지고 바쁜 가운데서 이렇게 책도 낼 수 있는 것이라 생각 한다

임마누엘 칸트의 산책은 유명했다. 그는 오후 3시 30분이면 반드시 집을 나서서 걸었다. 언제나 같은 길을 같은 보폭으로 걸었다. 그래서 집 앞을 걸어가는 그를 보고 동네 사람들이 시계를 맞추었다고 한다.

루소, 에머슨, 키에르 케고르는 산책할 때면 반드시 작은 노트를 챙겼다고 한다. 걷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걷는다>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걸으면 생각을 깊게 하게 되며 걷는 일은 영적인 행위이다“라고 말한다.

이번에는 다행히 한경닷컴에 16회에 걸쳐 연재한 기록이 있어 다른 때보다는 집필이 조금 수월했다. 이번 원고에는 새로운 내용도 30-40% 추가했다. 일본 열도를 걷기 위해 그리고 걷는 동안 신세진 국내외 지인들에게 메일로 그리고 편지로 고마움을 전했다.

도서관의 정기휴관일인 둘째 넷째 월요일에는 잠실역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책을 읽었다. 새로 들어온 중고서적도 구입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다음에는 인근의 교보문고 잠실점에 들러 가득한 책들의 향기 속에서 신간을 들쳐보았다.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의 책은 몽땅 구입해서 읽었다. 그녀가 쓴 80여권의 책 중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 의외로 적었다. 이번에 다시 읽은 책도 있었지만 매번 진한 감동을 느꼈다. 이번에 그녀의 고향을 직접 찾아서 흔적을 더듬으며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되기 전 깁스베드에서의 7년 등 13년간의 투병활동을 하면서도 그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녀는 투병 중 세례를 받고 하늘나라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종신형을 선고 받고 27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던 넬슨 만델라를 생각한다. 그 오랜 절망의 세월을 견디어낸 그의 비결 역시 희망이었다. ”나는 위대한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리라는 아즈위(희망)를 한 순간도 포기한 적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71세에 풀려난 그는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자기를 박해하고 고통과 치욕을 주었던 정적들을 용서했다. 인간의 고고한 삶의 방식의 모델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 언론은 ’인간의 품격을 한 단계 올려놓은 사람‘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좋은 계절에 일본 땅을 걸었다. 벚꽃 전선의 북상과 함께 북쪽으로 올라갔다. 걷는 동안 지진도 태풍도 쓰나미도 큰 비도 없었다. 귀국해서 1달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야마가타 니가타 그리고 요코하마에서 M5-6 규모의 지진이 있었다. 내가 걸었던 지역들이다. 걷는 도중에 이런 지진을 만났다면 얼마나 황당했을까. 하늘에 감사한다.

제51회 한일경제인회의에서 발언하는 필자

일본열도 종단 그리고 3개월간의 집필을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한일관계의 악화로 연기되었던 제51회 한일경제인회의(9/24-25)에 참석해 양국 기업인들과 교류했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 및 9·28서울 수복 길 따라 걷기‘ 행사에 참여해 18시간 66킬로를 걷기도 했다.

9/28 도쿄에서 개최된 한일축제한마당 개회식에서 일본의 국토교통상은 ”한국은 일본에 문화를 전해준 은인의 나라“라고 말했다. 10/1에는 오키나와에서 온 110명 규모의 대규모 관광업계 종사자들이 우리 업계와 교류회를 가졌다.

경색된 한일관계에 훈풍이 불어와 편안한 마음으로 상호 왕래하는 그날이 다시 오기를 기대한다. (2019. 10. 2)

허남정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