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 강의를 마치면서 위험한 선택을 했다.



학생들의 평가를 받고 싶었다. 정해진 틀과 만들어진 질문지에 의한 평가가 아니라, 제한 없이 자유로운, 다양한 의견을 무기명(無記名)으로 받아 보고 싶었다.



많이 망설이고 고민했다. 결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자신감도 없었고, 자칫 위험한 의견이 나올지 모른다는 우려도 감출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냈다.



그냥 백지를 나누어 주었다. 강의 내용(Contents)이나 강의 기법(교수법, 敎授法), 기대한 것만큼의 만족도 등 자유로운 의견을 형식에 관계없이 써 줄 것을 요청했다. 물론, 이름이나 학번은 쓰지 않을 것과 “후배들의 발전을 위한 조언(助言)”이라 생각하고 진심으로 기술해 줄 것을 설명했다.



80명의 학생들이 백지를 받아 들면서 잠시 망설이다가 곧바로 써 내려가는 “평가자(評價者)들의 모습”은 의외로 진지했다. B4 용지의 크기가 부족하여 뒷면까지 이어 쓰는 학생도 있고, 딱 한 줄 써 놓고 엎드린 학생도 있었다. 큰 지면의 반을 채워 놓고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의견이 궁금하기 짝이 없었지만, 평가용지를 거두자 마자 읽어 볼 수는 없었다. 뒤집어서 제출한 시험지를 모아 오는 학생들의 표정 또한 야릇했다.



강의를 마치고 학교를 나오자 마자 인근 카페로 들어 갔다. 한 뭉치의 종이를 테이블에 올려 놓고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처 깨닫지 못한 오류를 찾아 주었다. 강의 기법과 내용 전달의 심각한 개선사항이나 보완점, 문제점뿐만 아니라 진행과정에서의 학생 개개인에 대한 차별(?), 빔 프로젝터를 활용한 파워 포인트 자료의 보완점, 슬라이드를 넘기는 속도의 불안정, 학기 초에 꺼낸 약속 불이행에 따른 대책, 처리하지 않은 일에 대한 향후 이행 여부 등 세밀한 지적 사항과 개선 요구가 쏟아져 나왔다.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문제점들이 수없이 많았다. 일부 의견은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과도한 요구도 있었지만,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그런 지적 사항과 요청내용의 말미(末尾)에 고맙고 감사하다는 인사말이 빠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떤 학생은 이름과 학번을 명시하기도 했다. 그들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학생이었다. 문제의 본질과 요구한 사람의 기대를 간파하는 능력이 있고, 의견과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고자 하는 정성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가벼운 즐거움에 빠진, 나약한 젊은이들이 아니었다.





자신의 일에 대해 타인으로부터 평가 받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존경 받고 싶고 인정 받고 싶고, 그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비평과 비난을 구별하기 힘든 업적평가를 받는다는 건 무엇보다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기업체 임직원 강의 과정에서도 가끔 강의 피드백(Feedback)을 받아 보지만, 진정 원하는 바는 칭찬과 격려일 뿐, 개선 보완 내용이나 지적 사항을 들으면 기분부터 나빠지고 변명부터 하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피드백이나 평가를 받아 보면 그 때마다 배우고 느끼는 게 많다. 일시적인 불편함과 생각의 차이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타인의 평가를 통해 배울 게 많다. 학생을 가르치는 방법은 학생들로부터 배울 수 있고,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비결은 고객이 가르쳐 준다.



기업 조직에서 인사고과(人事考課)를 하고, 상하간 다면평가(多面評價)를 실시하고, 실적에 따라 보수와 소득이 달라지면서 경쟁력이 강화되고 역량이 구분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누구로부터도 평가 받고 싶지 않다는, 누군가의 평가를 거부하면서, 자기들만의 아집(我執)으로 평생을 살고 싶고, 현직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일부 집단의 어리석음이 안타깝기도 하다.



발전을 위한 고언(苦言)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지속적인 발전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또 한 번 갖게 되었다. 다음 학기에는 더욱 더 철저한 준비와 자기학습을 통해 훌륭한 강의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