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강의를 준비하고 강의실로 들어 섰다. 200 여명의 학생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둘째 줄 우측에 앉아 있는 학생이 유난히 신경에 거슬렸다.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앉은 채로, 강의는 안중에도 없었다. 쭉 둘러 보니 곳곳에 그런 학생이 있었다. 입을 벌린 채로 잠을 자는 학생도 있었다. 반항이었다.



모두들 일으켜 세워 내 쫓고 싶었지만, 나머지 150 여명의 눈동자를 외면하거나 시끄러운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 건, 행사를 주최한 학교측이나 강의에 초대된 강사의 입장은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선택한 학교나 전공에 관심이 없는 건지, 학교 생활이나 학습 자체를 외면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다.





한 학기가 중반에 접어 들어 과제를 내 주었다. 과제 출제 의도와 답안 작성 형식을 알려 주며 “생각과 의견을 서술하는 문제”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열심히, 솔직하게 “자신의 미래와 꿈”을 이야기 하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과 계획을 상세히 기록하여 제출했다. 제출 기일이 지났다며 택배로 과제를 제출하는가 하면 밤 늦게 직접 집으로 가져 오는 학생도 있었다.



유난히 눈에 띄는 게 몇 편 있었다. 요즘 초등학교 학생도 쓰지 않을 것 같은 누런 공책을 찢어, 줄도 긋지 않고 삐뚤삐뚤 써서 작은 편지봉투에 억지로 구겨 넣은 것이었다. 몇몇은 친구들과 함께 유사한 답안을 베껴낸 듯한 과제를 한 봉투에 보내 왔다. 고등학교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학생이 대학을 다니고 있다.





대학생들의 취업을 위한 준비 과정의 하나로 면접실습을 하였다. 묻는 질문에 답하는 내용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면접장에 나타난 옷차림은 자유가 아닌 방종이었다. 예절에 앞서 상식을 잊고 있었다. 자기를 소개하고 미래의 꿈을 설명하는 말에는 강인한 의지와 뚜렷한 자신감을 나타내는 언어가 없었다. 막연한 단어의 조합과 이상한 용어의 나열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몸짓과 초점을 잃은 눈동자에선 희망을 읽을 수가 없었다.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왜 외면하는지 학교는 아직 모르고 있다. 그런 현실을 아는 게 두려운 것이다.





4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다는 젊은이가 이력서를 들고 찾아 왔다. 다섯 번을 옮겨 다니느라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가는 곳마다 마음에 들지 않아 괴로웠다는 그의 설명에서 대학을 나온 특징을 발견하는 건 무리였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잘 한다는 그의 실력은 누구나 갖출 수 있는 기능에 불과했다.



40분간 나눈 대화에서 그가 31년간 무엇을 배웠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뾰족한 수(Magic Formula)를 찾지 못한 채 돌아 서는 그에게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고 말해 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시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들을 계속 가르쳐야 하는가?



어디부터 설득하고 어디까지 타일러야 하는가?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아시아에서 꼴찌를 달리는 교육과 정치, 정부 행정은 상관관계가 밀접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기업 경영인과 스포츠 선수들이 나라 체면을 살려 주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100분에 100문제를 풀어 나가는 “찍기 시험” 문제, 무너지는 언덕 비탈길 옆에 창고같이 지어 놓고 학생들을 몰아 넣은 대학 강의실, 전철과 버스 안에서 졸며 자며 서너 시간을 통학하는 학생들.



나이가 들기도 전에, 경력을 쌓기도 전에, 흐르는 땀의 가치를 알기도 전에 “삼팔선”, “사오정”을 들먹이며 미래를 준비하라는 재촉에 시달리는 직장인들. 아직도 할 일이 태산 같은데 나이를 들이대며 떠나기를 요구하는 무언의 강요. 경험이 부족하고 연륜이 미천하여 지혜를 쌓아갈 시간조차 얻지 못하면서 세계화에 휩쓸려야 하는 이 나라 직장인들.



아름답고 이상적인 글만 쓰기엔 너무나 쓰리고 저린 현실 한 가운데, 병들어 죽어가는 교육현장에서는 직업교육 이전에 필요한 교육이 시들어 가고 있다. 인간 본연의 철학과 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은 이공계 기피와 함께 모두 쓰레기통에서 썩어가고 있다. 그나마 엘리트의 일부는 50~60년 전의 고시(考試)에 목매달고 있다. 대학생들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 나라의 백년대계 인간교육은 포기했단 말인가?



세계적인 경쟁력은 누가 만들어 갈 것인가? 지겹고 두렵고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배우고 익혀야 할 기술과 전략을 익히기도 전에 자기계발을 해야겠다며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는 젊은이의 무모한 용기를 꾸짖는 어른은 있는가?



실업률이 높아가고, 취업의 문이 좁다며 젊은이와 중년 장년층 모두가 거리로 내몰리는 사회에서, “기업인은 모두 못된 사람이고, 사업하는 사람은 모두 사기꾼”이라는 누명으로 몰아 가는 그들은 지금, 누가 벌어 들인 돈으로 살고 있는가? 화려한 말 잔치와 정치력, 공적 자금으로 몇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며 얼마 동안이나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케케묵은 이념논쟁을 중단하고, 교육제도의 총체적 혼란을 바로 잡을 정책을 수립하여 과감히 시행할 것을 각 정당과 국가, 정부 관계 부처에 강력히 촉구한다.



자칭 타칭 국가 지도자들은, 전 국민을 가벼운 즐거움과 나약한 게으름의 희열로 빠져 들게 하지 말라.

우민정치(愚民政治)를 끝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