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호주 감독 '오프너' 전략에 맥없이 무너진 한국 야구

선발 올로클린 퍼펙트 투구에도 2이닝 만에 교체…'벌떼 작전'으로 한국 격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호주 대표팀의 데이브 닐슨 감독은 9일 일본 도쿄돔에서 한국과 B조 본선 1라운드 첫 경기를 앞두고 한국의 선발 투수가 고영표(kt wiz)라고 하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허를 찔렸다'는 반응을 보였다.

호주는 전날 공식 훈련을 마친 뒤 키 196㎝의 좌완 잭 올로클린을 일찌감치 한국전 선발로 발표했다.

이강철 한국 대표팀 감독은 전날 오후 9시까지 다음날 선발 투수를 예고하면 된다는 대회 규정에 맞춰 고영표를 그쯤에 호주전 선발로 발표했다.

한국 선발 투수를 뒤늦게 확인했다던 닐슨 감독의 발언은 마치 한국이 선발 투수를 끝까지 일부러 감췄다는 뉘앙스를 풍기게 했다.

그러나 정작 '연막작전'으로 한국을 혼란에 빠뜨린 건 닐슨 감독이었다.

일찌감치 호주전 선발로 유력하게 거론된 고영표가 경기 초반 2실점에도 45개의 공으로 4⅓이닝 동안 마운드를 지킨 데 반해 올로클린은 안타와 볼넷 등을 하나도 주지 않는 완벽한 투구에도 공 21개로 2이닝만 던진 뒤 강판했다.

올로클린은 토미 현수 에드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이정후(키움 히어로즈), 박병호(kt wiz), 김현수(LG 트윈스), 박건우(NC 다이노스)로 이어진 한국의 1∼6번 타자를 땅볼 2개와 뜬공 4개로 간단히 요리하고 임무를 마쳤다.

올로클린 다음으로 나온 투수는 2022-2023시즌 호주프로야구리그에서 3승 무패, 평균자책점 2.25로 맹활약한 우완 미치 눈본이었다.

눈본은 이번 호주대표팀에서 가장 강력한 불펜 요원으로 손꼽힌 투수다.

눈본은 이날 2⅓이닝 동안 2실점 했지만, 이날 등판한 9명의 호주 투수 중 가장 많은 공 43개를 던지고, 가장 많은 타자 9명을 상대하며 사실상 선발 투수처럼 던졌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7년간 선수로 뛰고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스에서도 활동한 닐슨 감독은 미국과 아시아 야구에 정통한 지도자다.

B조 2위를 확보해 8강에 오르기 위해 한국을 꼭 꺾어야 했던 닐슨 감독은 결과적으로 한 때 빅리그에서 유행한 '오프너'로 한국 방망이를 꽁꽁 묶었다.

선발 투수 예고는 늦었지만, 이강철 감독이 정석대로 마운드를 운용한 데 반해 호주는 변칙으로 맞섰다.

'오프너'(Opener)는 경기를 시작하는 투수라는 뜻으로 선발 투수(starter)와는 구분되는 개념이다.

가장 강력한 불펜 투수를 경기 후반이 아닌 1회에 기용해 통계상 가장 실점 확률이 높은 1∼2회 상대 타선의 예봉을 꺾는 전략이다.

오프너는 1이닝 또는 2이닝만 던지고 강판하고, 이후에는 모든 투수를 총동원하는 '벌떼 작전'으로 마운드를 이끌어간다.

닐슨 감독의 계투책은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올로클린에게 꽉 막힌 대표팀 타선은 눈본의 공략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 타선은 5회말 1사 후에야 김현수의 볼넷으로 퍼펙트 수모를 깨고, 곧이어 박건우의 좌전 안타로 노히트에서 벗어났을 정도로 호주 마운드에 끌려다녔다.

뒤늦게 드러난 사실이지만, 호주 투수들은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제구가 들쭉날쭉했다.

첫 4이닝을 사실상 허비한 한국이 호주 투수들을 그만큼 편하게 해줬다는 의미다.

공격의 활로가 완전히 막힌 상태에서 힘 좋은 호주 타자들에게 부담을 느낀 한국 마운드가 먼저 2점을 줬다.

주도권을 먼저 잃으면 좀처럼 찾지 못해 결국 무릎 꿇고 마는 한국의 '국제대회 1차전 패배 징크스'가 이날도 재현됐다.

양의지(두산 베어스)의 역전 석 점 아치와 박병호(kt)의 2루타 등으로 한국이 4-2로 역전했지만, 호주가 스리런 홈런만 두 방으로 다시 경기 종반 8-4로 전세를 뒤집었다.

한국은 4-8로 끌려가던 8회말 호주 마운드의 난조로 볼넷만 4개를 얻어 1점을 따라붙고 무사 만루 대역전 찬스를 잡고도 적시타 한 방을 못 쳐 결국 7-8, 한 점 차로 졌다.

이 역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두 명의 투수를 적시에 바꾼 호주의 계투책의 승리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