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말이야, 다른 팀을 좋아하는 게 낫지 않겠어?”소문난 야구 애호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에세이 <일인칭 단수>를 통해 대학 시절 좋아했던 여성과의 야구장 데이트를 얘기했다. 하루키는 당시 일본의 최약체 팀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좋아했는데, 그날도 어이없는 실책을 하고야 말았다. 보다 못한 여자친구는 하루키를 향해 팀을 바꿔버리라고 말하기에 이른다.하루키는 그래서 다른 팀을 택했을까, 아니다. 여전히 그는 시즌마다 야쿠르트를 사 마시며, 야쿠르트의 승리를 염원한다.그가 말한 것 중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약체 팀을 좋아하면서 얻게 된 것에 관한 내용이다. 그는 책에서 “내가 배운 자질은 바로 ‘패배에 대한 관대함’이다. 지는 것은 싫지만, 그런 일을 일일이 마음 깊이 묻어두고 있다가는 도저히 오래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체념”이라고 말한다.야구장은 잔인하다. 누군가 홈런을 치면 누군가의 자책점이 올라간다. 이기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지는 자도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패배를 잊고 다시 구장으로 돌아간다. 실책도, 실수도 사랑한다니,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것과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야구팬들에게 ‘우리 팀’이란 어쩌면 내가 키우는 딸, 아들자식과 같을지도 모른다.야구장은 어제까지 몰랐고 또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를 옆자리 사람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 밖에서는 절대 노래를 부르지 않는 이들도 이곳에서는 ‘망나니 가수’가 된다.야구 애호가에게 프로야구 시즌 개막은 ‘꽃’ 같은 존재다. 그라운드 위 푸릇한 잔디와 잘 정돈된 붉은 빛 모래는 그 어떤 봄
“올해는 꼭 가을 야구장의 냄새를 맡아야죠.”선수단의 가장 젊은 얼굴, 아직 앳된 티가 나는 ‘새내기 인기선수’ 김주원(20)과 김시훈(23)의 눈에는 굳은 의지가 빛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각자 2021년과 2018년 NC 다이노스에 입단했다. 프로팀 생활은 5년도 되지 않았지만 팬들의 사랑이 두텁다는 선수들이다. 2023시즌 개막을 1주일가량 앞둔 지난 24일, 창원 NC파크 경기장 뒤편에서 두 선수를 만났다. ▶본지 3월 31일자 A18면지난해 NC 다이노스는 두 게임 차로 5위권 경쟁에서 밀려 가을 야구를 뛰지 못했다. 짙은 아쉬움을 남긴 지난 경험은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스스로를 채찍질할 원동력이 됐다. 김주원 선수는 “올해 운이 좋게도 첫 경기부터 선발 엔트리에 들었는데, 팀이 처음부터 치고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엔 베테랑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두 선수는 “큰형들이 떠난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어깨가 무거웠다”며 “우리가 한 타석, 한 투구씩만 더 잘하면 그 자리를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두 선수가 생각하는 ‘우리 구단의 최고 강점’은 무엇일까. 둘은 입을 모아 ‘젊은 선수단’임을 꼽았다. 김시훈 선수는 “젊은 팀은 미래가 밝다”며 “서로 경쟁하며 시너지가 생기고, 경기 경험도 차차 쌓이면서 우리는 1년 뒤, 5년 뒤가 더 기대되는 팀”이라고 자신했다. 김주원 선수도 “선수들이 젊다 보니 다른 구단에 비해 에너지가 넘치는 편”이라며 “어떤 상황에서도 ‘으쌰으쌰’ 넘어가 좌절하는 법이 없다는 게 최고의 장점”이라고 덧붙였다.이들에게 팬의 의미에 대해 묻자 망설
개막을 1주일 앞둔 지난 24일. NC 다이노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시범경기가 열린 창원NC파크를 찾았다. 부슬비가 내리고 쌀쌀해 야외에서 야구를 보기엔 다소 힘든 날씨에도 1·3루 응원석은 팬들로 가득 찼다. 각자 응원하는 선수들의 등번호가 적힌 유니폼을 입고 머리띠에 응원봉까지…. 평일 시범경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였다. 전날 비가 내려 경기가 취소됐기 때문인지 관중석 팬들의 얼굴은 기대로 가득했다. ▶3월 31일자 A18면 ○떠난 이에게도 박수를…낭만이 가득한 구장이날은 말 그대로 ‘시범용 경기’. 본격 개막 전 구단별로 전력을 파악할 수 있게 마련한 연습경기다. 단상 위 응원단도, 앰프에서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응원 구호도 없다. 하지만 두 구단 관중 속 누군가가 일어나 일일 응원단장으로 나섰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북을 꺼내더니 앰프를 대신해 구호 박자를 맞췄다. 응원가도 오직 목소리로만 불러야 했는데 자리에 앉은 각 구단 팬들은 서로 질세라 선수들을 향해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NC 다이노스 주장 손아섭 선수가 타석에 등장하자 응원단장은 관중을 향해 특별한 주문을 했다. “여성들은 다이노스, 남성들은 오빠를 외치세요.” 이 구호에 맞춰 여성 관중이 “다이노스”를 외치면 남성 관중은 “오빠!”를 연호했다. 손아섭 선수의 오랜 별명이 단어 그대로 ‘오빠’라고. 원래는 반대로 만든 응원법이지만, 이벤트성으로 성별을 바꿔 부른 응원법이 지난해 다른 구단 팬들에게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날 어린 딸과 아들의 손을 잡고 구장을 찾은 아버지들이 ‘오빠’를 연호하자 긴장감 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