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이 사상 두 번째 원정 16강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카타르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한국은 6일 ‘우승 후보’ 브라질과 8강 진출을 놓고 승부를 벌였지만 1-4로 패하며 2026년 북중미 월드컵(캐나다 멕시코 미국)을 기약했다. 경기가 끝난 뒤 손흥민 대표팀 주장이 브라질 골피커 알리송 베커의 위로를 받은 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답례하고 있다.
6일 한국과 브라질 간 월드컵 16강전이 열린 카타르 도하 974스타디움. 오전 6시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태극전사들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결과는 한국의 1-4 패배. 90분 넘게 모든 것을 쏟아낸 선수들의 얼굴에는 허탈함과 아쉬움이 가득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태극전사들의 카타르월드컵 여정이 16강에서 멈췄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브라질의 벽은 높았다. 전반에만 4점을 내줬다. 하지만 태극전사들은 악착같이 달라붙어 기어이 한 골을 만회했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도전에 박수가 쏟아지는 이유다. ‘꺾이지 않는 마음’ 보여준 손흥민태극전사들이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걸 한마디로 요약하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말은 지난 10월 e스포츠 ‘롤드컵’(리그 오브 레전드 2022 월드 챔피언십)에서 약체로 꼽히던 DRX 소속 ‘데프트’가 1라운드에서 패하자 소속 선수인 김혁규가 한 말이다. 이를 계기로 전열을 가다듬은 DRX는 1차전 패배를 딛고 우승컵을 안았다.이 말이 다시 유행어가 된 건 지난 3일 FIFA 랭킹 9위 포르투갈과의 카타르월드컵 H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였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기적’이라던 16강 티켓을 따낸 태극전사들은 이 말이 적힌 태극기를 흔들며 기뻐했던 것.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여러분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손흥민의 소감과 맞물리면서 빠르게 퍼져나갔다.그 각오로 브라질에 맞섰지만 우승 후보를 꺾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브라질은 기술, 체력, 전술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을 앞섰다. 그래도 한국 대표팀의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승부는 진작에 기울었지만 태극전사들은 끝까지 브라질을 몰아붙였다.그 중심에는 손흥민(30·토트넘)이 있었다. 월드컵을 3주 앞둔 시점에 안와골절을 당했지만, 안면보호 마스크를 끼고 전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했다. 큰 부상도, 상대 수비수의 집중 견제도 그를 꺾지 못했다. 실낱같았던 16강 진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든 황희찬의 역전골은 손흥민의 발끝에서 나왔다. 이런 그에게 세계 언론은 찬사를 보냈다.ESPN은 “때론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걸 이해하는 ‘축구 지능’, 뭐든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밀려올 때 아무것도 안 하는 평온함, 수비수들에게 둘러싸여도 뚫을 수 있다는 자신과 동료에 대한 믿음, 이런 것들이 ‘좋은 선수’와 ‘위대한 선수’를 가른다”며 “(포르투갈전에서의 어시스트는) 손흥민이 조국을 탈락의 위기에서 구해낸 월드컵 역사상 가장 극적인 장면이었다”고 평가했다. 가장 큰 수확은 ‘젊은 피’ 발굴이번 월드컵의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 실력 있는 ‘젊은 피’를 발굴한 것이다. 조규성(24·전북)은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월드컵에서 1차전 교체 출전 이후 브라질과의 16강전까지 3경기 연속 선발 출전하며 한국 축구의 최전방을 책임졌다. 특히 가나와의 2차전에서는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한 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했다.대표팀의 막내 이강인(21·마요르카)은 이번 월드컵 4경기 모두 출전해 ‘특급 조커’로 활약했다. 그는 창의적인 움직임으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가나와의 2차전에서는 교체 투입된 지 1분 만에 ‘택배 크로스’로 조규성의 첫 골을 도와 반격의 발판을 놓기도 했다.미드필더 백승호(25·전북)는 브라질과의 16강전에서 유일한 골을 만들어내며 한국 대표팀의 자존심을 지켰다. 이번 대회에서 브라질에 안긴 두 번째 실점(카메룬전에서 0-1 패)이자, 세계 최고 골키퍼로 꼽히는 알리송(30·리버풀)이 이번 월드컵에서 놓친 첫 골이다.손흥민은 이번 대회를 마치며 후배들에게 “앞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잘해야 한다”며 “월드컵이라는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실력을 펼칠 수 있어 자랑스럽고, 이게 끝이 아니고 앞으로 더 잘하는 선수가 되면 좋겠다”고 격려했다.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월드컵에서 사상 두 번째로 원정 16강을 달성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파울루 벤투 감독(사진)이 카타르월드컵을 끝으로 결별을 택했다.벤투 감독은 6일 브라질과의 카타르월드컵 16강전에서 1-4로 패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 대표팀의 감독직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그는 “(한국팀을 떠나는) 결정은 지난 9월에 내렸다”며 “선수들과 대한체육협회에 이런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벤투 감독과 축구 대표팀의 ‘빌드업’은 4년으로 끝나게 됐다.벤투 감독은 러시아월드컵 직후인 2018년 8월 부임해 4년 넘게 팀을 이끌어왔다. 단일 임기 기준으로 한국 축구대표팀 역사상 최장수 사령탑 기록이다. 그는 부임 이후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냈다. 이번 카타르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1승 1무 1패를 거두며 16강 진출을 지휘했다.벤투 감독이 들고 온 전술은 ‘빌드업 축구’다. 수비진에서부터 패스를 이어가며 공 점유율을 높여 골문으로 전진하는 방식이다. 무게중심을 뒤에 두고 역습을 노리며 승부 타이밍을 재는 기존의 한국 축구 전술과는 달랐다.강팀을 상대하려면 한국이 수비 위주로 임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벤투 감독은 빌드업 축구를 통해 대표팀의 체질을 바꿨다. 카타르월드컵에서 벤투호는 이 전술로 16강행을 확정하며 ‘월드컵에서는 무조건 선수비 후역습을 해야 한다’는 한국 축구의 고정관념을 깨부쉈다.그동안 벤투 감독의 제한적인 선수 선발과 활용은 꾸준히 도마에 올랐다. 경기마다 선발 라인업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 축구 팬들의 원성을 샀다.하지만 이번 카타르월드컵에선 이강인을 깜짝 엔트리에 발탁하는 등 유연성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강인은 첫 경기였던 우루과이전에서 교체 투입되며 특급 조커로 활약했다. 이어 가나전에서는 후반에 투입되자마자 조규성의 골을 합작했다. 포르투갈과의 3차전에선 선발로 그라운드에 나서며 대표팀의 16강 진출에 기여했다.한국과의 4년 동행을 끝낸 벤투 감독은 “처음부터 감독으로 봐 온 한국 선수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내가 함께한 선수들 중에서도 최고다. 이번 경기는 아쉽지만 만족한다”고 했다. 그는 “포르투갈로 돌아가 재충전하고 향후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카타르월드컵 최대 이변의 주인공이었던 아시아가 16강에서 돌풍을 멈췄다. 호주와 일본에 이어 한국까지 8강 진출에 실패하면서다.이번 월드컵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원 6개국이 참가했다. 역대 최고의 성적이다. 한국과 일본 호주는 16강까지 올랐다. AFC 소속 3개국이 16강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과 일본이 16강에 든 것이 유일했다. 이들을 제외하면 사우디아라비아가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른 것이 전부다.하지만 아쉽게도 아시아 돌풍은 16강에서 막을 내리게 됐다. 가장 먼저 호주가 지난 4일 아르헨티나와의 16강전에서 1-2로 졌다. 6일에는 일본과 한국이 차례로 탈락했다. 일본은 크로아티아를 맞아 전·후반 90분과 연장전까지 120분을 1-1로 비기는 대접전을 펼쳤으나 승부차기에서 1-3으로 졌다. 한국마저 브라질에 1-4로 패하면서 아시아 3개국의 파란은 마무리됐다.AFC 소속 국가가 월드컵 8강에 오른 것은 1996년 북한, 2002년 한국 등 두 차례가 전부다. 최고 성적은 2002년 한국이 거둔 4위다.아쉬움 속에서도 이번 월드컵을 통해 아시아 축구의 희망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간 축구의 변방에 머물렀던 아시아가 경기 결과는 물론 내용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을 보였기 때문이다.아시아 6개국은 조별리그에서 7승 1무 10패로, 역대 월드컵 중 최고 성적을 거뒀다. 카타르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최소 한 번씩은 승리를 거뒀다. 일본과 호주는 2승을 올려 이변의 한가운데에 섰다. 승점을 쟁취한 상대 역시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스페인 독일 덴마크 등 전통 강호여서 의미를 더했다.셰이크 살만 빈 에브라힘 칼리파 AFC 회장은 앞서 지난 3일 한국의 16강 진출이 확정된 직후 홈페이지를 통해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초로 3개 팀이 16강에 오른 분수령과 같은 순간”이라며 “아시아의 수준을 끌어올린 모든 회원국 협회에 공이 있다”고 밝혔다.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