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령 코르시카 태생…'식민지배' 얽힌 양국 관계 보여줘
튀니지, 51년 만에 프랑스 꺾었지만 '첫 16강 도전'은 실패
[월드컵] '100% 튀니지·프랑스인' 하즈리…'한방'으로 디펜딩 챔프 격침
"프랑스와 같은 조가 되길 바랐어요.

꿈이 실현된 거죠."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한 튀니지의 공격수 와흐비 하즈리(31)는 지난 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이렇게 말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고향인 지중해 프랑스령 코르시카 태생인 그는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1 몽펠리에에서 뛴다.

프랑스와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D조 3차전을 하루 앞두고 그는 "나는 프랑스에서 주말마다 튀니지를 대표했다.

내가 태어난 코르시카를 대표하는 것도 좋다"고 했다.

이어 "나는 국기를 많이 들고 다닌다"며 "나는 100% 튀니지인이고, 100% 프랑스인, 그리고 100% 코르시카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같이 이중적 국가 정체성을 드러낸 그는 바랐던 대로 프랑스와 경기에서 '한방'을 터뜨렸다.

30일 프랑스와의 일전에 출전한 하즈리는 후반 13분 센터서클부터 공을 몰고 가더니 페널티아크까지 단숨에 전진했다.

[월드컵] '100% 튀니지·프랑스인' 하즈리…'한방'으로 디펜딩 챔프 격침
프랑스 수비진들이 뒤늦게 따라오자 돌연 왼쪽으로 드리블하며 방향을 바꾸더니 반대편 골대 하단 구석을 향해 왼발로 정확히 차넣었다.

이삼 지발리(30·오덴세)와 교체가 예정된 터라 더욱 극적인 득점이었다.

세리머니 후 튀니지 관중들의 뜨거운 함성을 받은 그는 동료, 코칭스태프의 환호 속에서 유유히 벤치로 향했다.

이 영화 같은 장면에 프랑스는 51년 만에 튀니지에 패했다.

프랑스는 1971년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종합 스포츠 이벤트인 지중해 게임에서 튀니지에 1-2로 진 게 마지막 패배였다.

기념비적 승리를 이끈 하즈리는 사실 양국 간 복잡한 역사를 드러내는 산증인이기도 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하즈리 외에도 튀니지 대표팀에서 프랑스 태생만 9명이 더 있다.

[월드컵] '100% 튀니지·프랑스인' 하즈리…'한방'으로 디펜딩 챔프 격침
프랑스에는 약 70만명의 튀니지인이 살고 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침략에 식민지로 전락한 튀니지는 1956년에야 독립 국가로 섰다.

그만큼 많은 문화적 교류도 이뤄졌고, 하즈리처럼 조국을 2개로 생각하는 선수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즈리는 양국 간 역사의 '밝은 면'이다.

식민지배를 받은 터라 프랑스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는 없다.

특히 튀니지계 이주노동자들이 프랑스에서 겪은 좌절감은 사회적 갈등의 불씨가 됐고, 특히 축구장에서 격화했다.

2008년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양국의 평가전에서 튀니지계 관중들은 프랑스 국가가 흘러나올 때 거센 야유를 퍼부었다.

이에 격분한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자국축구협회에 다시는 튀니지와 홈에서 친선전을 치르지 말라고 지시했고, 실제로 이 경기가 프랑스에서 열린 양국 간 마지막 경기가 됐다.

[월드컵] '100% 튀니지·프랑스인' 하즈리…'한방'으로 디펜딩 챔프 격침
당시 총리였던 프랑수아 피용은 "프랑스와 대표팀 선수들을 모욕한 것이다.

용납될 수 없다"며 강하게 튀니지 관중들을 질타했다.

14년 뒤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도 이런 광경이 반복됐다.

프랑스의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일부 관중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방해한 것이다.

프랑스에 뿌리 깊은 적개심을 드러낸 튀니지의 관중은 이날 환희와 허탈함을 동시에 느꼈을 터다.

51년 만에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를 꺾은 튀니지는 사상 첫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이날 승리에도 조 3위에 그친 튀니지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튀니지는 16개국만 출전한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조별리그를 뚫지 못했고, 1998년 프랑스, 2002년 한일, 2006년 독일, 2018년 러시아 대회에서도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월드컵] '100% 튀니지·프랑스인' 하즈리…'한방'으로 디펜딩 챔프 격침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