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가 25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OK금융그룹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이 열린 충북 청주 세레니티CC에서 자신의 ‘인생 2막’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다.  KLPGA 제공
박세리가 25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OK금융그룹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이 열린 충북 청주 세레니티CC에서 자신의 ‘인생 2막’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다. KLPGA 제공
한국 골프는 박세리(45)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전까지는 상류층이 즐기는 ‘그들만의 놀이’였다. 하지만 1998년 시커먼 종아리와 극명하게 대비된 박세리의 새하얀 발이 모든 걸 바꿔놨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그가 보여준 ‘맨발 투혼’이 전국에 생중계된 뒤 골프는 국민 스포츠로 발돋움했다. 세계 프로무대는 박인비(34) 등 ‘세리 키즈’가 점령했고, 국내 골프 인구는 500만 명을 넘어섰다.

25일 충북 청주 세레니티CC에서 막을 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OK금융그룹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은 이런 그를 기리는 대회다. 박세리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 이름을 건 이 대회가 열린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대회가 열릴 때마다 ‘후배들의 모범이 돼야 한다’고 매번 다짐한다”고 말했다.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이 태어난 해는 2014년이다. ‘LPGA 투어 한국 선수 최다승’(25승) 등 한국 여자골프의 역사를 쓴 그의 업적이 점차 잊혀지는 걸 안타까워한 최윤 OK금융그룹 회장이 대회 창설을 제안했다.

이 대회는 이름 그대로 박세리를 보며 골프선수로 꿈을 키운 선수들이 한판 승부를 펼치는 무대다. 디펜딩 챔피언으로 참가한 김효주(27)를 비롯해 KLPGA 투어의 간판선수인 임희정(22), 박현경(22)이 모두 OK금융그룹과 박세리가 손잡고 만든 ‘OK세리키즈 골프장학생’ 출신이다. 올해도 ‘세리 장학생’의 활약이 빛났다. ‘슈퍼루키’ 이예원(19)이 1타차 준우승을 했고, 권서연(21)은 공동 6위에 올랐다.

30년 넘게 몸담은 골프에선 ‘타짜’인 박세리지만, 이제 막 2년을 넘긴 사업에선 아직 ‘초짜’다. 그는 2020년 골프 콘텐츠와 교육 사업을 벌이는 바즈 인터내셔널을 창업했다. ‘사업가로서의 실력은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박세리는 “보기 플레이어 수준”이라며 웃었다.

“싱글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에요(웃음). 사업이나 방송 모두 처음 도전하는 건데, 쉬울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지금 가는 길이 후배들에게 은퇴 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다다르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며 스스로를 다잡게 됩니다.”

‘후배 사랑’을 아끼지 않는 박세리지만, 최근 오구플레이 논란으로 KLPGA 투어 3년 출전 정지를 받은 윤이나 사태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성적지상주의가 부른 안타까운 사건”이라며 “변명의 여지 없이 절대 나와선 안 될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세리는 “뛰어난 선수가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이 너무 아쉽다”며 “충분한 자숙의 시간을 가진 뒤 팬들의 용서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박세리는 26일 모처럼 골프대회에 출전한다. 무대는 박세리희망재단이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GC에서 개최하는 ‘LG전자 박세리 월드매치’다. 그를 비롯해 LPGA 투어 72승의 안니카 소렌스탐, 27승의 로레나 오초아, 장타 여왕 로라 데이비스(잉글랜드), ‘대만의 박세리’ 쩡야니, ‘불도그’ 크리스티 커(미국) 등 ‘여자 골프의 전설’ 6명과 김효주, 박민지(24), 박현경, 조아연(22), 임희정, 황유민(19) 등 현역 6명의 매치플레이로 진행되는 대회다.

박세리는 “소렌스탐, 오초아 등이 각자 재단을 운영하거나 꿈나무를 육성하고 있어 이번 제의에 흔쾌히 응해줬다”며 “골프로 국민의 사랑을 받은 만큼 골프 유망주를 돕는 건 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는 선수들의 버디 수만큼 돈을 적립하고, 별도로 우승팀 이름으로 2억원을 마련해 주니어 선수 육성에 기부한다. 자선 목적의 이벤트 대회지만 오랜만에 서는 필드인 만큼 상당한 부담감을 느낀단다. 그는 “얼마 전부터 벼락치기로 연습하고 있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 봐주면 좋겠다”고 웃었다.

청주=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