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민구단·기업구단 모두 자생 기반 '취약'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는 성남FC…시민구단 또 늘리겠다는 K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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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전통의 구단 성남FC가 성적 부진과 매각설에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정치적 외풍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시민구단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와 함께, 무턱대고 구단 수를 늘리며 양적 팽창에만 골몰해온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시민구단인 성남 구단주인 신상진 성남시장이 최근 주간지와 인터뷰에서 구단 매각을 언급하면서 사태는 촉발됐다.

신 시장은 '대기업 후원금 유용 의혹'으로 구단이 수사를 받는 점을 언급하면서 "개선 의지도 없고 꼴찌만 하고 시민들의 혈세를 먹는 하마를 계속 갖고 가는 것은 성남시민들에 대한 배임이라고 본다.

성남FC 하면 비리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런 구단의 구단주를 하고 싶지 않다.

기업에 매각하거나 어떤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K리그1 최하위로 내려앉아 강등 위기에 내몰려 힘겨워하던 성남 선수단은 구단 존립이 위태로워지자 큰 충격에 빠졌다.

김남일 성남 감독은 21일 FC서울과 원정 경기 뒤 "성남시에서 어떤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운영하는 것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성남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성남 서포터스 '블랙리스트'는 22일 SNS를 통해 성명을 내고 "K4(4부 리그) 재창단설까지 나온다.

지난 2년간 성남FC가 정치면에 오르내리면서 우리의 땀과 목소리가 더럽혀졌다"면서 "성남FC가 정치권 어용단체로 재창단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는 성남FC…시민구단 또 늘리겠다는 K리그
◇ 33년 전통 성남FC, 시장님 한마디에 사라지나
성남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김남일 감독의 지도력도, 스트라이커 뮬리치의 부활 여부도 아니다.

구단은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신 시장의 뜻에 따라 '생사'가 결정될 처지가 됐다.

벌써 구단의 용인시 매각이 유력하며, 세미프로리그인 K3, K4리그에서 경쟁하게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프로팀 성남'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기업구단이던 성남일화 시절까지 더해 33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정규리그 우승 횟수만 7회인 전통의 구단이 신 시장 한 마디에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재원 대부분을 소속 지자체에 의존하는 시민구단이 흔들리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기존과 다른 당의 인사가 시장직에 오르면 구단 행정 인력이 물갈이되다시피 할 때도 있다.

성남 역시 이번에 시장의 소속 당이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바뀐 경우다.

여기에 전임 이재명 시장 시절 시정 비리 의혹이 커지면서 아예 구단 존폐가 거론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사태 전부터, 말만 시민구단이지, 실제로는 '시립구단', '도립구단'인 이들 구단이 리그 발전에 발목을 잡는다는 목소리가 컸다.

정상적으로 '영리활동'을 해 스스로 가치를 끌어올리려는 노력은 거의 없고, 구단주인 지자체장의 눈치만 보는 구단을 어떻게 '프로스포츠 구단'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비판이다.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는 성남FC…시민구단 또 늘리겠다는 K리그
◇ "구단 기반 취약한 것은 K리그 전반의 문제" 지적도
다만, 시민구단을 향한 '옹호론'도 만만치 않다.

모든 구단이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데에 애를 먹는 K리그 전반의 문제를, 시민구단만의 문제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시민구단이 지자체장 눈치를 보는 것처럼, 기업구단 운영 역시 기업 총수의 '은혜'에 절대적으로 기댄다.

총수의 관심이 식거나 관심이 덜한 후계자가 기업을 이끌게 되면 기업구단 역시 존폐의 갈림길에 설 수 있고, 실제 비슷하게 전개된 사례도 있다.

시민구단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품고 가야 한다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결국 한국 축구 산업이 허약한 게 근본적 문제라는 데에 대부분 동의한다.

기업구단 프런트 A씨는 "자생의 기반이 취약한 것은 기업구단이나 시민구단이나 마찬가지"라면서 "K리그 구단들이 꼭 흑자를 내지 않더라도 '정상적인 매출을'을 올리는 법인이라면 시민구단은 정치적 외풍에 덜 시달릴 것이고 기업구단은 총수의 애정 여부와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구단 프런트 B씨는 "단순히 적자라는 이유로 성남을 '돈 먹는 하마'라고 지칭한 신 시장의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매주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지역팀을 응원하게 만드는 사회통합의 기능은 금액으로 환산되지 않는 시민구단의 가치"라고 말했다.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는 성남FC…시민구단 또 늘리겠다는 K리그
◇ '메뉴판 두꺼워지는 식당…맛은 글쎄?' 시민구단 넘쳐나는 K리그 현주소
하지만 그 '사회통합의 기능'이라도 제대로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시민구단이 적잖은 것도 현실이다.

오히려 역사가 깊은 성남은 지역 팬덤이 공고한 축에 속한다.

성남 서포터스는 9년 전 일화가 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 공중분해 될 위기에 처했을 때 끈끈하게 단합해 연고이전을 막고 시민구단화를 관철했을 정도로 구단을 향한 애정이 크다.

성남이 현재 맞고 있는 강도보다 훨씬 약한 수준의 정치적 외풍에도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을 정도로 지역 기반이 취약한 시민구단들이 K리그에 여럿 존재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유럽식 승강제 운용을 표면적 이유로, 리그의 양적 팽창에 골몰해왔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구단이 생겨났다.

2001년 단일리그, 10개 구단이던 K리그는 11년이 지난 현재 1·2부 리그, 총 23개 팀 체제로 크게 확대됐다.

창단 준비 중인 고양이 합류하면 24개 팀으로 늘어난다.

그동안 창단·재창단한 팀 중 기업구단은 서울이랜드, 대전하나시티즌, 2곳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시민구단이며, 그중 상당수가 업적을 남기려는 지자체장의 욕심이나 정치적 의도에 따라 만들어졌다.

축구팬 회사원 안모(44)씨는 "지금 당장 서울 명동에 가서 축구팬 10명을 무작위로 모은 다음, 2부 리그의 (충남)아산과 안산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을 나와보라고 하면 1명이 나올까 말까일 것"이라면서 "가뜩이나 손님도 없는 식당에서 맛없는 메뉴를 2배로 늘린 격"이라며 프로연맹의 리그 확대 정책을 비판했다.

프런트 A씨는 "부천FC와 FC안양처럼 탄탄한 프로팀으로 꾸준히 성장해가는 시민구단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구단이 현재 너무 많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