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입성 후 적응 기간 없이 맹타…타율 0.304 활약
공군사관학교 출신에 다재다능한 '만능 엔터테이너'
롯데 렉스는 코즈모폴리턴…미국서 온 3개국 혈통의 부산 사나이
영국의 가수 스팅이 1987년 발표한 대표곡 '잉글리시맨 인 뉴욕(Englishman in New York)은 '나는 커피 대신 차를 마시고, 토스트는 한쪽만 구운 걸 좋아한다'라는 이방인의 어려움을 표현한 가사로 시작한다.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외국인 선수들의 처지를 잘 설명해주는 노래이기도 하다.

미국을 떠나 부산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롯데 자이언츠의 새 외국인 타자 잭 렉스(29)는 뉴욕 한복판에 떨어진 영국 신사처럼, '부산 사나이'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1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만난 렉스는 "부산 생활은 환상적"이라고 말했다.

KBO리그에 입성하는 외국인 타자들은 투수와 비교하면 적응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 야구를 쉽게 봤던 선수들은 예상보다 뛰어난 투수들의 변화구 구사 능력과 약점을 파고드는 투구에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렉스는 오자마자 맹타를 휘두르며 롯데에 새로운 희망을 준다.

최근 3경기 연속 무안타로 침묵하긴 했어도, 14경기 타율 0.304(56타수 17안타), 2홈런, 4타점으로 연착륙에 성공했다.

렉스가 유독 빠른 속도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비결을 그의 혈통에서 찾을 수 있었다.

롯데 렉스는 코즈모폴리턴…미국서 온 3개국 혈통의 부산 사나이
렉스는 "할아버지가 폴란드 출신이고, 할머니가 아일랜드 혈통이다.

원래 좀 더 복잡한 성(姓)이었는데, 아버지 대에 성을 렉스(Reks)로 바꿨다"면서 "게다가 어머니는 스페인 출신이다.

그래서 스페인어도 잘한다"며 웃었다.

기회를 찾아 대서양을 건넜던 그의 조상처럼, 본인도 태평양을 건너 새로운 무대에서 야구 선수로 경력을 이어가는 것이다.

렉스에게 한국에 대해 가장 많이 조언해 준 선수는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롯데에서 뛴 앤디 번즈(32)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번즈와 한솥밥을 먹은 렉스는 "번즈가 '일단 경기를 즐기고, 다른 문화를 수용하라'고 했다"면서 "특히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좋은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줬다"고 말했다.

렉스는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뛰는 한국인 빅리거 최지만(31)과도 인연이 있다.

올해 전반기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활약했던 렉스는 지난달 31일 탬파베이전에서 3회 최지만의 펜스 직격 타구를 잡아 2루에 정확하게 송구해 아웃을 잡아냈다.

그때를 떠올리며 그는 "1루에서 최지만과 만났을 때 툭툭 치면서 '어떻게 그걸 그렇게 던지느냐'고 하더라. 재미있는 친구"라며 웃었다.

롯데 렉스는 코즈모폴리턴…미국서 온 3개국 혈통의 부산 사나이
렉스는 미국 공군사관학교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공군사관학교를 1년 만에 그만두고 켄터키 대학교에 편입해 다소 늦은 나이인 24세에 다저스로부터 10라운드 지명을 받고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관심사는 야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드래프트 되기 전에는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했고, 하와이의 커피 농장에서 일한 경험도 있는 바리스타이기도 하다.

화가였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림도 잘 그리고, 기타와 피아노 연주에도 능한 만능 엔터테이너다.

미국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야구만 생각하는 삶은 소모적이고, 야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던 렉스는 "군대라는 조직에서 나오고 싶었고, 기계 공학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다가 운 좋게 야구 선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롯데 렉스는 코즈모폴리턴…미국서 온 3개국 혈통의 부산 사나이
다양한 재능으로 무장하고 부산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렉스는 진정한 의미의 코즈모폴리턴(세계인)이다.

부산, 그리고 한국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면 남은 시즌 활약으로 롯데와 재계약을 해야 한다.

렉스는 "내가 가진 능력을 보여주면서 완벽하게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적응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대로 인터뷰가 끝난 뒤 우리 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고개를 숙인 뒤 더그아웃을 떠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