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의 방출 설움 딛고 KBO 역대 48번째 500경기 등판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하면 평범한 선수도 재능 있는 선수 따라잡을 수 있어"
'500경기 등판' 김진성 "나는 성실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투수"
'성실함'을 무기로 세 번의 방출 설움을 딛고 500경기 출장의 금자탑을 쌓은 김진성(37·LG 트윈스)이 의외의 한마디를 던졌다.

"프로야구 선수는 성실하지 않아도 됩니다.

"
사실 이 한 마디는 자신을 '평범한 투수'라고 소개하는 김진성이 1군에서 살아남은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역설적인 서문'이었다.

18일 서울시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만난 김진성은 "결과만 낼 수 있다면 프로야구 선수는 굳이 성실할 필요는 없다.

솔직히 나도 훈련을 덜 해도 잘할 수 있다면 운동 시간을 줄이고 싶다"고 말한 뒤 "나는 성실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투수다.

내가 성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500경기 등판' 김진성 "나는 성실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투수"
"야구는 내 인생 자체"라고 말하는 김진성의 야구 인생에는 희로애락이 모두 담겼다.

과거의 김진성은 '1군 첫 등판'을 간절하게 원하던 무명 투수였다.

김진성은 2004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에 입단했지만, 1군에 올라가지 못하고 2006년 방출됐다.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입단 테스트를 통해 2010년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에 육성 선수로 입단했다.

이곳에서도 그는 1군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생애 두 번째 방출 통보를 받았다.

김진성은 2011년 신생팀 NC 다이노스의 공개 테스트(트라이아웃)에 응시해 합격했다.

NC가 1군에 합류한 2013년 4월 3일 마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처음으로 1군 마운드에 선 김진성은 2021년까지 NC에서 470경기에 등판해 32승 31패 34세이브 67홀드 평균자책점 4.57을 올렸다.

NC 팬들은 김진성을 '개국 공신'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NC는 2021시즌이 끝난 뒤, 김진성을 전력 외로 분류했다.

김진성은 "방출 통보를 받은 다음 날 무작정 9개 구단 감독, 코치, 스카우트 담당자에게 전화를 돌렸다"고 털어놨다.

LG는 김진성에게 입단 테스트 기회를 줬고, 연봉 1억원에 김진성과 계약했다.

김진성은 곧바로 LG 불펜의 핵심 투수로 자리 잡았다.

올해 LG에서 김진성은 18일까지 31경기에 등판해 2승 3패 5홀드 평균자책점 3.52로 활약했다.

벼랑 끝에서 시작한 '야구 인생 3막'에서 KBO리그 역대 48번째 500경기 등판이라는 값진 기록도 완성했다.

'500경기 등판' 김진성 "나는 성실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투수"
김진성은 "500경기 등판이라는 게 달성하기 쉽지 않은 기록이긴 하다"고 말하면서도 "한 번도 내가 대단한 투수라거나,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은 사람은 정말 많다.

김진성은 먼저 김경태(47) LG 퓨처스(2군) 코치를 떠올렸다.

그는 "지난해 NC에서 부진(2승 4패 1세이브 9홀드 평균자책점 7.17)했는데 LG에 와서 김경태 코치를 만난 뒤 자신감을 되찾았다.

김 코치의 도움 속에 투구 밸런스를 다시 잡았고 직구 구속도 올라왔다"고 전했다.

김진성의 올 시즌 직구 평균 구속은 시속 143㎞로 지난해보다 시속 2㎞ 올랐다.

여기에 주 무기 포크볼의 각도 날카로워졌다.

김진성은 "김경태 코치와의 만남은 내 인생의 변곡점이다.

미세한 변화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

김 코치님 덕에 지금 내가 1군에서 던지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이어 김진성은 "1군에서 경헌호 코치와 김광삼 코치의 도움도 정말 많이 받는다"며 "포수 유강남과 허도환 선배는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몸을 던져 내 공을 받아준다.

오지환, 김현수 등 야수들은 '타자 심리' 등에 관한 조언을 자주 한다.

LG 모든 분의 도움 속에 내가 이곳에 있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500경기 등판' 김진성 "나는 성실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투수"
LG도 김진성의 영입을 '성공작'으로 평가한다.

류지현 감독은 "지난해 전천후로 활약한 송은범이 무릎 부상을 당해 김진성이 그 자리를 메워주길 바랐다.

기대한 만큼 잘해주고 있다"며 "김진성은 정말 성실하다.

그렇게 성실하니, 30대 후반에도 1군에서 던질 수 있는 것"이라고 엄지를 들었다.

류 감독은 최근 이정용과 김진성의 자리를 맞바꿔, 김진성을 셋업 정우영, 마무리 고우석 앞에 세우기로 했다.

그만큼 김진성의 구위를 높게 평가한다는 의미다.

김진성은 "나는 필승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몸을 낮추며 "10점 차, 20점 차에 등판해도 좋다.

공을 던질 기회만 주신다면 행복하게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꾸만 몸을 낮추지만, 김진성은 KBO리그에 단 48명뿐인 '개인 통산 500경기 등판'에 성공한 투수다.

3차례 방출 사연까지 더해 '김진성 서사'는 울림이 더 크다.

김진성은 "방출생 신화라고 표현해 주시는 분도 있는데, '신화'라는 단어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방출 선수 영입 성공 사례'가 절망에 빠진 다른 베테랑 투수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크다.

김진성은 "몇 년 연속 호투하는 투수도 있지만, 한 시즌 정도 부진에 빠지는 투수가 대부분이다.

그런 투수에게 또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며 "내가 김경태 코치를 만나 구위를 회복한 것처럼 계기가 있으면 반등할 수 있는 투수가 많다.

단지 나이가 많다고, 한 시즌 부진했다고 전력에서 배제하는 분위기는 한국 야구에서 사라졌으면 한다"고 바랐다.

'500경기 등판' 김진성 "나는 성실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투수"
다른 선수의 재능을 부러워만 하는 젊은 선수에게도 김진성은 귀감이 될 수 있다.

김진성은 "나성범(KIA 타이거즈)처럼 대단한 재능을 갖추고, 성실하기도 한 선수는 평범한 선수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러나 진짜 성실하게, 열심히 훈련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자신보다 덜 성실하게 훈련한 선수를 따라잡을 수 있다"며 "재능과 노력은 장작과 같다.

장작이 많지 않으면 활활 타오를 수 없지만, 장작을 꾸준하게 넣어주면 그 불은 오랫동안 꺼지지 않는다"고 수사까지 써가며 '평범한 후배'들을 응원했다.

김진성은 LG 후배들의 재능과 젊음을 부러워한다.

그는 "고우석은 24살에 이미 100세이브를 올렸다.

핵심 불펜 정우영은 이제 23살이다.

젊은 나이에 벌써 많은 걸 이뤘다"고 감탄했다.

하지만, 노력으로 일군 자신의 삶에도 자부심을 느낀다.

김진성은 "나는 서른 가까이 되어서야 1군에 진입했다.

젊은 투수들이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나는 네 나이 때 1군에도 못 올라왔어'라고 위로할 수 있다"고 껄껄 웃었다.

남들보다 늦게 1군에 진입한 김진성은 "마흔까지는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는 선수 생활과 함께 불태울 장작이 남아 있다.

김진성 자신은 인정하지 않지만, 그는 1군 무대에서 핵심 투수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재능 또한 갖췄다.

김진성이 500경기 넘게 등판하며 남긴 기록(34승 34패 34세이브 72홀드)도 전혀 '평범'하지 않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