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했지만 이제 '초보 감독' 딱지 뗀 정도" 자평
꼼꼼한 성격에 챔프전 때 몸무게 5㎏ 빠져…"시즌 도중에 차기 시즌 준비 시작"
통합 우승 SK 전희철 감독 "가족들 보니 은퇴 때 생각나 눈물"
"아내하고 딸들이 나오는데, 제가 은퇴할 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러면서 눈물이…."
프로농구 2021-2022시즌 서울 SK를 통합 우승으로 이끈 전희철(49) 감독이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10개 구단 가운데 유일한 '초보 사령탑'으로 새로 지휘봉을 잡은 전희철 감독은 컵 대회,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을 석권하는 3관왕을 달성하며 첫 시즌부터 지도력을 발휘했다.

18일 경기도 용인시 SK나이츠 체육관에서 만난 전희철 감독은 "우승하고 1주일 정도 지났는데, 우승 인터뷰나 행사가 이어지고 있어서 우승한 느낌도 계속되는 것 같다"며 "어제도 SK 사내 구성원들과 함께 축승회를 또 했다"고 근황을 전했다.

통합 우승 SK 전희철 감독 "가족들 보니 은퇴 때 생각나 눈물"
10일 안양 KGC인삼공사를 꺾으면서 우승을 확정하고 TV 중계 인터뷰 때까지는 눈물을 잘 참았던 전 감독은 이후 가족들을 보면서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기 시작했다.

전 감독은 "같이 사진을 찍는데 제가 2008년 은퇴식을 할 때와 장소도 같았지만 그때는 제가 조금 밀려나는 분위기로 은퇴하는 상황이었고, 이번엔 감독으로 우승하면서 가족들과 함께하니 눈물이 터지더라"며 "지금 고3, 고1로 무용을 하는 딸들이 제가 은퇴할 때는 완전히 꼬맹이였다"고 회상했다.

2008년 은퇴 후 SK 프런트, 코치를 거쳐 올해 감독이 돼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까지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을 터다.

통합 우승 SK 전희철 감독 "가족들 보니 은퇴 때 생각나 눈물"
시즌을 우승이라는 좋은 성적으로 마치고 지금은 조금 여유를 찾은 전 감독은 "무용을 잘 모르지만 힘든 운동"이라며 딸들의 입시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평범한 아빠가 돼 있었다.

현역 시절 '에어 본'으로 불린 전 감독은 파워 포워드의 교본과도 같은 경기 스타일, 남성적이면서도 수려한 외모 등을 앞세워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닌 스타 플레이어였지만 아쉽게도 딸들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다고 한다.

통합 우승 SK 전희철 감독 "가족들 보니 은퇴 때 생각나 눈물"
스스로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이라고 말하는 전 감독은 우승한 지 채 열흘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 시선은 다음 시즌을 향해 있다.

특히 2021-2022시즌 개막을 앞두고 '3개의 물음표'라고 칭했던 전희철, 최준용, 자밀 워니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라고 박하게 평가했다.

전희철 감독이 감독상, 최준용과 워니는 국내 및 외국인 최우수선수(MVP)를 휩쓸어 언론에서는 '3개의 물음표'가 '3명의 MVP'가 됐다며 칭찬했지만 전 감독은 "계속 긴장을 늦출 수 없다"며 자만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잡았다.

전 감독은 "워니나 (최)준용이 모두 올해 정말 열심히 했고,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면서도 "스타일상 내년에 또 어떻게 튈지 모른다"고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통합 우승 SK 전희철 감독 "가족들 보니 은퇴 때 생각나 눈물"
또 자신에 대해서도 "우승을 했으니 주위에서 좋은 평가를 해주시지만 저는 아직도 어떤 방법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며 "제가 꼼꼼한 편이라 노력을 많이 하는 것은 스스로 인정하지만 그저 이번 우승으로 '초보 사령탑'에서 '초보' 딱지를 뗀 정도인 것 같다"고 겸손해했다.

이런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기'는 SK가 항상 좋은 성적을 낸 다음 시즌에 부진했던 징크스 때문이기도 하다.

SK는 2017-2018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 이후 2018-2019시즌 9위로 밀려났고, 2019-2020시즌 정규리그 1위 이후 2020-2021시즌 8위로 처졌다.

전 감독은 "결국 좋은 성적을 냈다는 것은 시즌이 그만큼 늦게 끝났다는 것인데, 그럼 다음 시즌 준비 기간이 그만큼 짧아진다는 얘기"라며 "선수들의 체력 등 몸을 만드는 기초 훈련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부상도 없고, 다음 시즌 준비를 충실히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번 시즌도 늦게 끝날 것을 대비하고, 시즌 도중에 트레이닝 파트에 다음 시즌을 대비한 체력 훈련에 대한 부분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통합 우승 SK 전희철 감독 "가족들 보니 은퇴 때 생각나 눈물"
이번 시즌 가장 어려웠을 때는 역시 챔피언결정전을 준비하던 때라고 했다.

정규리그 1승 5패로 밀렸던 안양 KGC인삼공사를 맞아 주위에서 '초보 감독'이라며 정규리그 1위 SK가 3위 인삼공사에 열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이 나왔다.

전 감독은 "제가 봐도 45-55로 우리가 밀린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1차전 3쿼터까지 우리 선수들이 뛰는 것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그는 "우리가 1, 2차전에 속공에서 상대를 압도했는데, 정말 '미친 퍼포먼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며 "준비한 수비 등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승리도 역시 정규리그 때 인삼공사를 상대로 29점 차를 뒤집고 1점 차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때를 꼽았다.

전 감독은 "그때가 우리가 15연승을 할 때인데 인삼공사 29점 차를 뒤집었고, 현대모비스를 상대로는 김선형이 경기 종료 직전 결승 골을 넣었다.

또 kt와도 7점 지다가 마지막에 뒤집는 등 인상적인 경기들이 많았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그 기간에 선수들이 자신감이 커졌고, 이후 워니와 김선형 부상이 동시에 찾아온 위기에도 버티는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통합 우승 SK 전희철 감독 "가족들 보니 은퇴 때 생각나 눈물"
3월 말에 전 감독을 비롯해 선수단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했을 때는 "빨리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 못 해 답답했다"며 "오히려 그때 한 번 털고 간 것이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 등 중요할 때 코로나19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2011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SK 감독과 코치로 호흡을 맞춘 문경은(51) 전 감독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전했다.

전 감독은 "4차전 TV 중계 해설을 맡으셨는데 사실 깜짝 놀랐다"며 "제가 감독이 되고 나서 저와 같이 인터뷰도 해주셨는데 사실 저 같으면 하기 힘들었을 것 같지만 '괜찮다'며 다 해주셨다"고 말했다.

또 이번 시즌 'SK 농구'를 대표하는 '스피드'와 '속공'도 "문 감독님 계실 때부터 추구하던 부분"이라며 "저는 거기에 안 될 때 풀어가는 디테일 정도를 덧칠은 한 것 같다"고 몸을 낮췄다.

통합 우승 SK 전희철 감독 "가족들 보니 은퇴 때 생각나 눈물"
전 감독은 자신의 인생에 기억 나는 우승으로 1997년 아시아선수권 제패와 MVP 수상, 2002년 프로 첫 우승(동양),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8년 SK 코치로 맛본 챔피언결정전 우승과 이번 시즌을 꼽았다.

그러면서 "최근 우승이라 그런 게 아니고 아무래도 감독으로 한 우승이 더 많이 준비하고,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한 것이라 뜻깊은 것 같다"고 자평했다.

"아직 감독으로 '전희철 농구'가 뭐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겠다"는 전 감독은 "이제 겨우 '초보 운전' 딱지를 뗀 수준이니 앞으로 더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워낙 꼼꼼하고 예민한 스타일이라 챔피언결정전 때도 몸무게가 93㎏에서 88㎏까지 빠졌다는 그의 '고민의 끝'은 어디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치열한 고민과 노력의 결과가 '스타 선수 출신도 명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