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사 23연승·외국 기사 28연승 하며 LG배·농심배 '쌍끌이 우승'
"커제의 근거 없는 주장, 굉장히 불쾌했고 한국 팬들에게도 무례다"
"어린 시절 바둑을 배운 사범님은 많지만 유일한 스승님은 아빠"
'신공지능' 신진서 "올해 목표는 AG, 해야 할 것은 응씨배"
열세 살 어린 소년이 입단의 부푼 꿈을 안고 부산에서 상경한 지 불과 10년 만에 세계를 평정했다.

자타 공인 세계 최강 프로 바둑기사로 우뚝 선 신진서(22) 9단 이야기다.

신진서는 지난주 온라인으로 열린 국가대항전 농심신라면배에서 파죽의 4연승을 거두며 한국의 2년 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우승국을 가리는 최종 3라운드에 일본은 3명, 중국은 2명이 출전했지만 앞선 주자들이 조기 탈락한 한국은 신진서 혼자 출전해 상대를 모두 쓰러뜨린 것이다.

신진서에게 당한 상대 중 한 명이 중국 랭킹 1위인 커제(25) 9단이다.

사실상 결승전으로 평가된 신진서와 커제의 대국은 팽팽한 승부가 예상됐지만, 결과는 신진서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신진서는 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번 농심배를 앞두고 커제를 상대하기 위한 포석 준비를 많이 했다"라며 "철저히 준비했기에 자신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신공지능' 신진서 "올해 목표는 AG, 해야 할 것은 응씨배"
커제도 패한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신진서를 이기려고 80시간이나 준비했는데 그는 알파고보다 더 센 것 같다"고 실력을 인정했다.

그런데 커제는 이 과정에서 엉터리 정보를 바탕으로 잘못된 주장을 해 한국과 중국 팬들 사이에 큰 논란을 일으켰다.

커제는 "내가 듣기를 신진서가 대국 중 둘 차례인데 착수하지 않고 화장실에 갔다 왔다고 한다"라며 "만약 사실이라면 규칙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신진서가 둘 차례에 화장실에 가서 스마트폰 등으로 인공지능(AI) 수를 훔쳐보고 돌아온 것 아니냐는 의혹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생방송으로 진행된 당시 대국 장면을 되돌려 본 결과 커제의 주장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신진서는 자신 차례인 76수를 먼저 두고 난 뒤 커제가 77수를 생각할 동안에 잠시 자리를 비운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농심배는 각국 심판이 화장실까지 따라가서 부정행위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

'신공지능' 신진서 "올해 목표는 AG, 해야 할 것은 응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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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서는 "프로기사로서 굉장히 불쾌했다"라며 "이런 대승부에서 AI(인공지능) 치팅을 한다는 것을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나뿐만 아니라 한국 바둑 팬에게도 아주 무례한 발언"이라며 "중국의 어린 친구들이 커제를 보고 배울 텐데, 바둑 외적으로는 뭘 배울 수 있겠느냐. 후배들이나 팬분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사실 커제가 설화를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커제는 2016년 몽백합배 결승을 앞두고 대선배인 이세돌(39) 9단을 향해 "나에게 이길 확률이 5%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오만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또 신진서와 맞붙은 2020년 삼성화재배 결승에서는 '아직은 풋내기'라는 식으로 얕잡아 보기도 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는 아직도 바둑을 '도(道)'나 '예(藝)'라고 하며 겸양의 미덕을 강조하지만, 커제는 심심찮게 상대를 조롱했었다.

'신공지능' 신진서 "올해 목표는 AG, 해야 할 것은 응씨배"
그런 커제의 시대를 저물게 하는 기사가 바로 신진서다.

신진서는 커제와 통산 성적에서는 아직 7승 11패로 밀리지만 지난해부터는 3승 1패로 앞서 있다.

LG배 준결승에서 승리했고, 농심배에서는 2년 연속 중국의 주장으로 출전한 커제를 꺾었다.

또한 신진서는 최근 LG배 결승에서 중국의 강호 양딩신 9단을 2-0으로 물리치는 등 중국 기사들을 상대로 23연승, 외국 기사들을 통틀어서는 28연승을 달리며 '천적'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처럼 강한 면모를 보이게 된 배경에 대해 신진서는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연습 대국을 많이 두는데 최근 1∼2년 동안 중국 기사들을 상대로 내가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라고 밝힌 그는 "연습 대국에서 잘 뒀으니 실전에서도 반드시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특히 커제에 대해서는 "지난해 LG배 결승에서 신민준 9단이 커제를 상대로 완벽하게 역전하는 것을 보고 나도 상당히 자신을 얻었다"라며 "이제 쫄지 않게 된 것이 가장 큰 힘 같다"라고 설명했다.

'신공지능' 신진서 "올해 목표는 AG, 해야 할 것은 응씨배"
알려진 대로 신진서의 별명은 '신공지능'이다.

AI 수법을 가장 비슷하게 구사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현재 모든 프로기사는 AI를 통해 바둑 공부를 한다.

신진서는 자신만의 특별한 공부 비법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커제나 다른 기사들에 비해 AI에 대한 이해도는 내가 좀 나은 것 같기도 하다"고 전했다.

AI는 가장 잘 활용하지만, 신진서는 어린 시절 뛰어난 스승으로부터 확실하게 바둑을 전수하지는 못했다.

부산에서 바둑 교실을 함께 운영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바둑에 입문한 신진서는 "입단 전후로 서울에 올라온 뒤 여러 사범님에게 바둑을 배우기는 했지만, 스승님이라고 여길 만큼 오랜 시간 배우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굳이 스승님을 꼽자면 아빠"라며 "아빠는 바둑을 가르칠 때 아빠라 여기지 말고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그래서 신진서는 아버지를 통해 바둑 수뿐만 아니라 대국하는 자세나 마음가짐도 엄격하게 배웠다고 한다.

'신공지능' 신진서 "올해 목표는 AG, 해야 할 것은 응씨배"
신진서는 이제 막 세계 최강 기사로 자리 잡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올해도 굵직굵직한 국제대회들이 많다.

특히 항저우 오는 9월 아시안게임(AG)과 '바둑 올림픽'으로 불리는 응창기배(응씨배) 결승전이 기다리고 있다.

신진서는 두 대회에 대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은 올해 목표이지만, 응씨배에서 우승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둘의 차이에 대해 아시안게임은 예선부터 참가하기에 금메달을 따면 좋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고, 응씨배는 이미 결승에 올랐기에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20대 초반 청년의 희망찬 생각이라기보다 세계 최고수의 전략적인 판단과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