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LPG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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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이맘때였다. 2021시즌을 앞둔 임희정(23)에겐 모든 것이 불투명했다. 루키 시즌이었던 2019년 3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비상했지만 2020시즌에는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성적이 나쁘진 않았다. 톱10에 아홉 차례나 들었고 상금 순위 8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루키 시즌의 영광이 컸기에 ‘무관(無冠)의 2년차’는 더욱 혹독하게 다가왔다. 새 시즌을 앞두고 그는 모든 것을 바꿨다. 스윙을 기초부터 가다듬었고 후원사도 바꿨다. “어느새 우승을 위한 골프를 하고 있더라고요. 다시 처음부터, 나 자신의 플레이를 하자고 다짐했지요.”

지난해 임희정은 한국여자골프(KLPGA)의 강자로 우뚝 섰다. 28개 대회에 출전해 15번 톱10에 들었고, 마침내 2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특히 하반기는 ‘임희정의 시간’이었다. 거의 모든 대회에서 우승 경쟁에 나서 10번의 톱10을 만들어냈다. 상금 순위 2위로 시즌을 마쳤고, 연말 KLPGA 대상 시상식에서는 인기상을 탔다. 팬들의 직접 투표로 정한 상이기에 의미가 더욱 컸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임희정은 “지난해에는 골퍼로서 한 단계 성장한 기분”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많은 걸 바꾸고 시작했는데 빨리 적응해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며 “특히 8월 하이원오픈에서 디펜딩챔피언에 오른 것이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가장 아쉬웠던 대회는 역시 부산 기장에서 열린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이다. 임희정은 이 대회 내내 보기 없는 플레이를 펼치며 선두를 달렸다. 하지만 마지막 날 연장전에서 고진영(27)에게 역전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직행 티켓도 아깝게 놓쳤다. 그래도 임희정은 “LPGA 진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 좋은 기회였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우승자가 나오면 준우승도 있는 거잖아요. 제가 준우승한 게 아쉽긴 하지만 ‘좀 더 갈고닦고 오라’는 진영 언니의 메시지인 것 같았어요. 하하.”

그래도 그 대회는 임희정에게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처음으로 LPGA투어를 경험하고 나니 ‘세계랭킹 1위’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철저하게 준비해서 도전하고 싶다”며 “올해 한국 투어에서 내공을 더 탄탄하게 다진 다음 내년이나 후년께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임희정은 프로골퍼 가운데서도 연습량이 많기로 손에 꼽힌다. 시즌 중에도 매일 어프로치샷으로 몸을 풀고 30분 이상 샷 연습을 한다. 그는 “대회를 치르면서 경기 감각을 찾아가는 스타일이어서 최대한 많은 대회에 참가했다”며 “지난 시즌 28개 대회를 뛰었는데 하반기에 체력을 잃지 않고 상승세를 탄 것도 연습량 덕분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빈 스윙’도 그의 핵심 무기다. 임희정은 여자골퍼 가운데 가장 교과서적인 스윙을 하는 것으로 손꼽힌다. 그는 “스윙하기 전 빈 스윙을 두어 번 하면서 리듬을 가다듬는다”며 “스윙에 ‘완벽’이라는 건 없는 것 같다. 골프를 치는 한 끊임없이 연습하고 가다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롤모델은 김효주(27)와 고진영이다. 김효주에게선 감각적인 플레이와 환상적인 쇼트 게임 능력, 고진영에게서는 경기 내내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펼치는 단단한 멘탈을 닮고 싶다고 했다.

시즌 중 지칠 때 큰 힘이 되는 것은 역시 팬들의 응원이다. 때로는 장난스럽고, 때로는 라이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그의 눈을 보고 팬들은 ‘사막여우’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그 역시 “사막여우라는 별명이 정말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임희정 하면 사막여우, 사막여우 하면 임희정을 떠올려주시면 좋겠어요. 골프를 시작한 이상 골프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선수로 남고 싶습니다. 동계훈련 동안 쇼트 게임의 달인으로 거듭나서 올 시즌엔 더 멋진 경기를 보여드릴게요.”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