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명으로 시작한 해태, 항명 파동 벌인 OB 등 40년 역사 떠올려
한국야구 최고 투타는 선동열과 이승엽
[프로야구 40돌] ② 김응용·김성근·김인식 '과거와 현재의 대화'

영국의 역사학자 E.H. 카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1982년 출범한 한국프로야구가 40주년을 맞이했다.

현재의 시선으로 과거를 돌아보면 한국야구사가 새롭게 보인다.

누구보다 오래 현장을 지키고, 제자를 키웠으며, 업적과 논쟁거리를 남긴 김응용(80) 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 김성근(79)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고문, 김인식(74) 전 국가대표 감독과 한국프로야구 40년 역사를 돌아봤다.

김응용 전 회장은 1983년 해태 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해 삼성 라이온즈 시절까지 총 10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정규시즌 2천910경기를 지휘해 1천554승(68무 1천288패)을 거둔 명장이다.

경기 수와 다승 모두 한국야구 감독 최고 기록을 보유했다.

그는 야구인 최초로 프로야구단 사장에 오르고, 아마추어야구 수장 역할도 했다.

김성근 감독고문은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OB 베어스 코치로 프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OB, 태평양 돌핀스, 삼성,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정규시즌 2천651경기에서 1천388승을 거두고, 3차례 통합우승(정규시즌·한국시리즈)을 차지했다.

고양 원더스에서 '독립야구단 신화'를 일구기도 한 그는 2018년부터 소프트뱅크에서 지도자로 현장을 지키고 있다.

김인식 전 감독도 쌍방울, OB·두산, 한화에서 2천56경기를 지휘해 978승을 거뒀다.

한국시리즈 우승은 두 차례 했다.

2006, 2009,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2015년 프리미어12에서는 한국 대표팀을 이끌며 '국민 감독'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한국야구의 산증인'인 3김(金)은 현재의 시선으로 과거를 떠올렸다.

그리고, 한국프로야구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했다.

[프로야구 40돌] ② 김응용·김성근·김인식 '과거와 현재의 대화'

◇ "아니, 선수가 14명뿐이야?"
김응용 전 회장은 1982년 3월 27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한국프로야구 첫 개막전을 조용히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1981년부터 미국 연수 중이었던 그는 "한국에 프로야구가 생긴다는데 첫 경기는 직접 봐야지"라며 일시 귀국했고, 경기 뒤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1982년 11월 3일, 해태 타이거즈는 제2대 사령탑으로 김응용 감독을 선임했다.

꿈꾸던 프로야구 감독이 됐지만, 김응용 전 회장은 선수 명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선수가 14명이었어. 내가 실업리그 한일은행 감독으로 20경기를 할 때도 30∼40명을 데리고 했는데…."
막막했던 김응용 당시 해태 신임 감독은 "최소한 20명은 더 영입해달라"고 구단에 요청했다.

그는 "며칠 동안 구단과 매일 싸웠다"며 "삼성에서 서정환을 현금 트레이드하고, (재일교포) 주동식, 김무종을 영입하고, 아직 실업에서 뛰던 선수들을 더 뽑아서 겨우 구색을 갖췄다"고 했다.

1983년 해태는 전기리그 1위를 차지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 우승했다.

프로야구 초창기를 호령한 '해태 왕조'의 첫 페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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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용 전 회장은 "초창기 프로야구 지도자들은 중, 고교에서 감독하다가 오거나 아예 다른 일을 하다가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국가대표 감독, 실업팀 감독, 미국 연수 등 꾸준히 성인 야구 지도자를 했으니, '내가 다른 감독보다는 잘해야 한다'는 자존심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현재 KBO리그는 최대 65명까지 정식 선수로 등록할 수 있다.

최근에는 선수 수를 줄이는 경향이 있지만, 한때 육성선수를 포함해 100명 이상의 선수를 보유한 구단도 많았다.

김응용 전 회장은 "선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래도 결국 '잘하는 선수가 많은 팀'이 이기는 게 야구"라며 "선수 수는 적었지만, 해태에서 좋은 선수 많이 데리고 야구했다"고 추억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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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B 항명 사건…"나를 믿어다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떠들썩했던 항명 사건은 1994년 9월 4일에 일어났다.

당시 윤동균 OB 감독의 거친 언행에 반발해 박철순, 김상호, 장호연 등 선수 17명이 팀을 이탈했다.

선수들이 윤동균 감독의 퇴임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면서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윤동균 감독이 사임하고, OB는 김인식 감독을 사령탑으로 선임하며 사퇴 진화에 나섰다.

김인식 전 감독은 선수들부터 만났다.

그는 "윤동균 감독이 책임을 지겠다고 하며 떠났으니, 남은 사람은 살려야 하잖아"라며 "선수들에게 읍소했다.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 나 역시 선수들을 믿겠다.

서로 믿고 해보자'라고 말하니 '저희를 믿어주십시오. 저희도 감독님을 믿겠습니다'라고 답하더라"고 회상했다.

당시 항명 파동을 일으켰던 선수들은 대부분 구단에 남았고, 팀을 떠난 선수도 다른 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연봉 삭감 등의 금전적인 징계로 사태를 마무리했다.

김인식 전 감독은 "징계 문제는 구단에 맡겼지만, '선수를 죽이지는 말자'고 요청했다"고 떠올렸다.

OB는 1995년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프로야구 40돌] ② 김응용·김성근·김인식 '과거와 현재의 대화'

'1994년 OB 파동'을 전후로도 한국프로야구에는 크고 작은 항명 사건이 이어졌다.

김응용 전 회장과 김성근 감독고문 또한 '불만을 드러내는 선수'와 맞선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사건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선수와 감독 사이의 추억'으로 남았다.

둘은 "선수들과의 적절한 거리"가 해결책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응용 전 회장은 "나는 감독으로 일할 때 선수와 식사도 함께 하지 않았다.

식당에서 선수와 마주치면 내가 도망갔다"며 "감독과 선수가 사적인 교류를 하면, 선수는 뭔가를 기대하고 또 실망하게 된다.

내게 불만을 표한 선수는 있었지만, '사적인 감정'이 없었으니 금방 사건이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김성근 감독고문도 소속팀 선수들과는 거리를 뒀다.

김성근 코치고문이 팀을 떠나거나 선수가 은퇴하면 빗장을 풀고 아버지와 아들 같은 관계를 만든다.

김성근 감독고문은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선수가 흥분한 채 감독 방을 열고 들어와 대들기도 했다.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며 "내가 물러나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으니, 그 선수가 몇 차례 욕을 하더니 눈물을 흘리고 '죄송합니다'리고 하더라. 사실 그 선수는 내가 아마추어 감독을 할 때 내 집에서 머물기도 한 '사적인 인연'이 있는 선수였다.

프로 지도자가 된 후에는 선수들과 사적인 자리를 하지 않았다.

지도자와 선수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체계가 잡힌다"고 설명했다.

[프로야구 40돌] ② 김응용·김성근·김인식 '과거와 현재의 대화'

◇ "구단이 어려우면 선수를 팔 수는 있지만…."
최근 여러 구단의 팬들은 '트럭 시위'를 펼치며 프랜차이즈 스타를 잡지 못하거나, 전력 보강에 소극적인 구단을 성토한다.

선수를 내보내야 하는 설움은 김성근 감독고문과 김인식 전 감독도 겪었다.

김성근 감독고문은 1996년 '만년 하위 팀'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으로 부임했다.

부임 초기에는 구단이 적극적으로 투자했고, 김성근 감독고문은 개성 넘치는 경기 운영으로 1996년과 1997년, 2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선물했다.

김성근 감독고문은 "정말 데이터를 많이 보던 시기였다.

베스트 멤버를 정해두지 않고, 상대에 따라 선수를 기용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1997년 11월, 모기업이 외환위기에 직격타를 맞으면서 구단이 휘청였다.

쌍방울 구단은 1997년 11월 박경완, 1998년 7월 조규제, 1998년 12월 김기태와 김현욱 등을 트레이드하며 '구단 운영 자금'을 마련했다.

숙소와 식사 등의 처우도 다른 구단보다 크게 떨어졌다.

김성근 감독고문은 "구단의 입장을 이해하긴 했다.

그래도 팀을 운영하는 감독으로서는 너무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프로야구 40돌] ② 김응용·김성근·김인식 '과거와 현재의 대화'

김인식 전 감독도 두산 사령탑 시절, 권명철, 김상진, 김상호, 류택현, 김경원, 심정수, 이도형, 진필중 등 주축 선수를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김인식 전 감독은 "'너무 파는구나'라고 속을 끓이면서도 구단을 원망하진 않았다.

구단에 자금이 부족한데 어떻게 하겠어"라며 "트레이드하려면 '돈은 충분히 받으라'고 구단에 충고도 했는데…. 선수도 구단의 재산이니까, 상식적인 선에서라면 현금 트레이드는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근 감독고문과 김인식 전 감독 모두 '구단 사정에 따른 트레이드'에는 공감했다.

그러나 "프로야구가 40년이 됐는데 여전히 모기업 의존도가 높은 상황은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고 근본적인 문제를 꺼내며 "어쩔 수 없이 선수를 내보냈다면 선수단을 재건할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구단이 팬들에게 '이런 과정을 거쳐, 어떤 팀을 만들겠다'는 설명도 충분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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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우∼,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한국프로야구가 낳은 최고의 유행어다.

1998년 시즌을 앞두고 김응용 당시 해태 감독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국보 투수' 선동열과 '천재 유격수' 이종범이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로 차례로 진출해 팀 전력이 약화한 것을 한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이를 소재로 활용하면서, 전 국민이 아는 유행어가 됐다.

김응용 전 회장은 "내가 그렇게 말한 기억은 없는데"라고 부인하면서도 "야구계 선배로서는 후배들이 더 넓은 무대로 진출하는 건 환영할 일이다.

감독은 괴롭지"라고 껄껄 웃었다.

선동열은 1996년 한국프로야구 선수 중에는 처음으로 국외리그에 진출했다.

아마추어 선수가 미국 혹은 일본에 진출한 사례는 꽤 있었지만, 프로 선수가 국외리그로 향한 건 선동열이 처음이었다.

선동열이 문을 연 덕에, 이종범도 1998년 주니치에 입단했다.

공교롭게도 KBO리그 선수 중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당시 소속팀 한화 이글스 사령탑도 김응용 전 회장이었다.

류현진은 2013년 포스팅시스템(비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계약했다.

KBO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첫 사례였다.

[프로야구 40돌] ② 김응용·김성근·김인식 '과거와 현재의 대화'

당시 류현진의 빅리그행을 반대했던 김응용 전 회장도 "지금 생각해보니 국위선양을 할 선수는 기회가 올 때 보내는 게 맞더라"며 "한국 선수가 큰 무대에서 활약하고, 한국에서 또 새로운 선수가 나오는 선순환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찬호, 김병현, 서재응, 추신수는 고교 졸업 후 혹은 대학 재학 중에 미국 무대에 진출해 빅리그 무대에 섰다.

구대성과 이상훈은 한국과 일본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KBO리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류현진이 빅리그에 입성하면서 새로운 길이 열렸다.

강정호, 김현수, 박병호, 김하성, 양현종도 KBO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했다.

김응용 전 회장은 "프로 구단이 아마추어 야구를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롤모델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며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좋은 대우를 받고, 국민 영웅이 된다면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KBO는 신인드래프트에 참여하지 않고 국외리그에 진출하는 선수의 국내 복귀를 계약 해지 후 2년으로 묶어두고 있는데, 그런 규정도 없애야 한다"며 "선수가 국경을 오가는 것도 야구적인 교류다.

그걸 막지 않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프로야구 40돌] ② 김응용·김성근·김인식 '과거와 현재의 대화'

◇ 한국 야구의 목표 '일본 타도'
냉정하게 한국야구는 '일본야구의 등'을 보며 뛰었다.

일본프로야구는 1936년 출범했고, 한국은 46년 뒤인 1982년 '프로야구 시대'를 맞이했다.

이후 한국야구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일본 타도'였다.

2000년대 들어 올림픽, WBC, 프리미어12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한국이 일본과 맞대결에서 승리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야구와 한국야구의 격차는 상당했다.

그 격차를 뼈저리게 느낀 대회는 1991년 한일슈퍼게임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1991년 11월 한일 국교 수립 25주년과 한국프로야구 출범 10주년을 기념해 1회 한일슈퍼게임을 열었다.

김응용 전 회장은 감독으로, 김성근 감독고문과 김인식 전 감독은 코치로 대회에 참가했다.

김응용 전 회장은 "솔직히 투타 모두 우리가 몇 수 아래였다"고 인정했다.

김성근 감독고문은 "일본 타자의 내야 땅볼이 안타가 되는 걸 보며 한국 내야수들이 충격을 받았다.

일본 타자들은 빨랐고, 우리 야수들은 볼 처리가 느렸다"고 회상했다.

김인식 전 감독은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 투수들의 변화구는 슬라이더, 커브 정도였다.

일본 투수들의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는 우리 타자들에게 너무 낯설었다"고 투수력의 차이를 설명했다.

1995년, 1999년 슈퍼게임에서는 실력 차가 조금 줄긴 했지만, 여전히 일본이 한국을 압도했다.

[프로야구 40돌] ② 김응용·김성근·김인식 '과거와 현재의 대화'

한국야구가 프로 선수들이 참가한 주요 국제대회에서 일본을 제대로 꺾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다.

당시 한국은 예선에서 일본을 7-6으로 꺾었고,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일본에 3-1로 승리했다.

동메달 결정전 구대성의 155구 완투와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친 이승엽의 결승 2루타는 한국야구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었다.

한국은 2006년 WBC에서 일본과 3번 만나 2승(1패)을 거뒀고, 2009년 WBC에서는 5번 대결해 2승 3패로 팽팽하게 싸웠다.

2015년 프리미어12 준결승에서는 일본에 4-3,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김인식 전 감독은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코치로 김응용 당시 감독을 보좌했고, 2006·2009년 WBC와 2015년 프리미어12는 감독으로 팀을 지휘했다.

김인식 전 감독은 "1990년대에 비해서는 한일 야구의 격차가 줄었다.

특히 2000년대 초반에는 최정예 팀을 꾸리면 승패를 알 수 없는 정도까지 왔다"고 말하면서도 "저변 차이는 여전히 크다.

일본은 비슷한 수준의 대표팀을 3∼4개 꾸릴 수 있다.

한국은 주요 선수 몇 명이 빠지면 전력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여전히 차이'를 설명했다.

김성근 감독고문도 "우리 야구가 정체기에 있는 것 같다.

도쿄올림픽(4위)의 실패가 상처로 남지 않으려면 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구단이 머리를 맞대고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며 "경기력 면에서 일본야구에 상당히 접근했던 한국야구가 최근엔 다시 멀어진 느낌"이라고 진단했다.

[프로야구 40돌] ② 김응용·김성근·김인식 '과거와 현재의 대화'

◇ 한국야구 최고 투타는 선동열과 이승엽
한국프로야구 40년을 돌아보며 김응용 전 회장, 김성근 감독고문, 김인식 전 감독이 한 목소리로 꼽은 최고 투수와 타자는 선동열 전 KIA 감독과 이승엽 KBO 홍보대사다.

투수 선동열의 전성기 시절을 함께 보낸 김응용 전 회장은 "미국 야구 관계자들을 만나면 '왜 선동열을 메이저리그에 보내지 않나'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며 "선동열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도 성공할 투수였다"고 평가했다.

선동열 전 감독은 한국프로야구에서 11시즌 동안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의 무시무시한 성적을 올렸다.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에도 3차례나 뽑혔다.

전성기가 지난 1996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에 입단한 선동열 전 감독은 4시즌 동안 162경기 10승 4패 98세이브 평균자책점 2.70으로 활약하며 '나고야의 태양'으로 불렸다.

[프로야구 40돌] ② 김응용·김성근·김인식 '과거와 현재의 대화'

김성근 감독고문은 "통산 성적도 좋고, 결정적일 때 해결하는 능력도 있다"며 이승엽 홍보대사를 최고 타자로 꼽았다.

김인식 전 감독도 "타자는 역시 이승엽"이라며 "국제대회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고 칭찬했다.

이승엽 홍보대사는 현역 시절 '국민타자'로 불렸다.

KBO리그에서만 457홈런을 치고, 한일통산 626홈런의 금자탑을 쌓았다.

WBC, 올림픽 등 굵직한 국제대회에서 극적인 홈런을 치며 한국 야구의 위상을 높였다.

3명의 지도자 모두 "선동열, 이승엽을 이을 재목이 빨리 나와 새로운 한국프로야구의 10년을 빛냈으면 한다"고 바랐다.

김성근 감독고문은 "학습권 보장을 위해 아마추어 선수들의 훈련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공부할 기회를 주되, 경기와 훈련을 통해 선수로 성장할 시간도 줘야 한다.

선동열, 이승엽을 통해 많은 분이 위로받지 않았나.

문화체육관광부, KBO 등이 이런 선수를 키워낼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현실적인 방안'을 요청했다.

김인식 전 감독은 "지도자들이 '유행'만 따르지 않고, 깊이 있게 선수를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며 "선수들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은 대우를 받는 상황에 감사하며 '야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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