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늘.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김하늘.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한국 대회에 나오면 제가 있으면 안되는 자리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대교체가 워낙 빠르다보니 제가 이 자리를 지키는게 후배들에게 미안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스마일 퀸' 김하늘(33)이 지난 12일 은퇴를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커리어의 정점에서 일본 투어로 향했던 선택에 대해서도 "한국에서 계속 활동했다면 이미 벌써 은퇴했을 것"이라며 일본행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었지요. "일본에서는 선두그룹은 세대교체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선배들이 상위권에서 좋은 경기를 펼치고 있다. 선배들이 버텨주니 저희도 견딜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베테랑들이 너무 빨리 빠진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부흥을 이끌었던 베테랑들이 필드를 떠나고 있습니다. 김하늘이 지난 14일 강원도 춘천에서 막내린 SK쉴더스·SK텔레콤 챔피언십을 끝으로 은퇴했습니다.
홍란. 사진=허문찬 기자
홍란. 사진=허문찬 기자
올해 '1000라운드 돌파' 대기록을 세웠던 홍란(35)도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합니다. KLPGA 투어에서 최다 출전(356경기)과 최다 컷 통과(287경기) 등 꾸준함으로 한국 여자 골프의 새 역사를 써왔지만 올해로 홍란의 기록은 멈추게 됐습니다.

대부분의 스포츠가 그렇듯 골프에서도 여자 선수의 최전성기는 20대 초·중반으로 봅니다. 30대 초반의 선수에게는 공공연히 '노장'이라는 타이틀이 붙지요. 강한 체력과 탄력으로 무장한 10대들이 치고 올라오는 사이 30대 초·중반이 투어를 떠나는 일은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래도 김하늘과 홍란의 은퇴를 마주하며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 여자골프의 간판이고,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었던 두 선수가 투어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때문에 은퇴를 결정했기 때문이죠.

KLPGA 투어 시드권은 기본적으로 상금순위 60위까지의 선수에게 주어집니다. 여기에 KLPGA 투어 각 대회 우승자, 세계랭킹 30위 이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와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유럽여자프로골프(LET) 투어 상금순위 3위 이내도 시드권을 받습니다. 여기에 투어에 기여한 바가 큰 선수에게는 영구시드권이 주어집니다. 2020년 이전 정규투어 상금순위 인정 대회 20승 이상, 2021년부터는 정규투어 30승 이상, 미국과 일본, 유럽 등 각 투어 통산 20승 이상 달성한 선수입니다. 신지애, 박세리, 박인비, 안선주. 이보미, 이지희, 전미정 등 7명이 해당됩니다.

하지만 KLPGA 투어의 영구시드권 기준은 너무 엄격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미국프로골프(PGA)나 LPGA 투어는 생애 통산 상금을 기준으로 출전권을 일부 부여합니다. LPGA 투어 9승을 거둔 최나연(34)이 지금도 LPGA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한국골프의 전설 최경주(51)역시 통산 상금과 통산 대회 출전 수 등을 근거로 챔피언스 투어와 PGA 투어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필드에서 멋진 활약과 새 역사를 썼던 선수들이 연간 3~4개 대회에 출전하는 모습으로도 팬들에게는 큰 기쁨이 됩니다.

김하늘도 이같은 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LPGA 투어나 일본 투어는 상금왕이나 우승 경험이 있으면 가끔이나마 대회에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시드권이 있지만 한국은 그런 시드권이 전혀 없다"며 "그러다보니 선배들이 가끔이나마 투어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세대교체가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다양한 시드권을 통해 베테랑 선수들이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그들이 있기에 다른 선수들도 일찍 은퇴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죠.

영국의 대표 여자골퍼 로라 데이비스는 58세의 나이에도 현역 선수들과 필드를 누비고 있습니다. 올해도 8월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AIG여자오픈에 출전해 41번째 출전기록을 세웠죠. LPGA 투어에서만 589개 대회에 출전했고 423개 대회에서 커트 통과를 했습니다.

모든 선수가 데이비스처럼 활동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투어에 기여한 바가 크고 자격이 있는 선수라면, 좀더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한국 여자 골프를 보다 더 풍성하게 만드는 방법 아닐까요.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