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이라 졌으면 따로 선물 준비해야 할 뻔"
메이저 챔피언 메드베데프, 유머 감각도 조코비치 앞섰다
다닐 메드베데프(2위·러시아)가 US오픈 테니스 대회 우승 후 인터뷰에서 또 한 번 특유의 유머 감각을 발휘하며 자신의 매력을 팬들에게 어필했다.

메드베데프는 13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에서 끝난 US오픈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서 노바크 조코비치(1위·세르비아)를 3-0(6-4 6-4 6-4)으로 완파했다.

1996년생으로 생애 처음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한 메드베데프는 우승이 확정되자 코트 위로 비스듬히 누워 혓바닥을 내미는 동작으로 자신의 메이저 왕좌 등극을 자축했다.

이어 열린 코트 위 인터뷰에서 메드베데프는 팬들에게 사과부터 했다.

그는 "팬 여러분과 조코비치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우리 모두 조코비치가 오늘 어떤 기록을 앞두고 있었는지 잘 알기 때문"이라고 예의를 갖췄다.

조코비치가 이날 이겼더라면 올해 4대 메이저를 휩쓰는 캘린더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그 대기록을 가로막게 돼 유감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면서 "오늘 경기장의 응원이 조코비치 쪽으로 쏠렸지만 이번엔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며 "2019년이 생각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메이저 챔피언 메드베데프, 유머 감각도 조코비치 앞섰다
2019년 US오픈은 메드베데프가 생애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결승에 진출했던 대회다.

그러나 당시 메드베데프는 대회 기간 내내 팬들의 야유에 시달렸다.

3회전 도중 볼 보이가 갖고 있던 수건을 거칠게 빼앗고, 주심에게 심하게 항의하는 등의 코트 매너가 뉴욕 팬들의 눈 밖에 났다.

심지어 야유를 퍼붓는 팬들을 향해 거친 몸동작까지 해 보이는 등 대회 기간 내내 팬들과 대립각을 세웠다.

당시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결승에서 2-3(5-7 3-6 7-5 6-4 4-6)으로 분패한 뒤 인터뷰에 나선 메드베데프는 솔직하고 재치 있는 인터뷰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준우승이 확정된 후 인터뷰에서 "저도 사람이라 대회 도중에 실수했다"며 "오늘은 0-2가 된 이후 경기를 더 오래 보려는 팬 여러분이 저를 응원해주셔서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다"고 사과했다.

그러더니 "오늘 나달이 우승하니 나달이 지금까지 정상에 오른 18차례 메이저 대회 영상을 차례로 보여주더라"며 "만일 (메이저 우승이 없는) 내가 이겼으면 도대체 뭘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냐"는 '자학 개그'로 팬들을 웃겼다.

또 '세트 스코어 0-2로 지고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느냐'는 물음에 "20분 정도 후에 0-3으로 패하면 인터뷰 때 무슨 얘기를 할지 고민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메이저 챔피언 메드베데프, 유머 감각도 조코비치 앞섰다
당시 센스 있는 인터뷰로 뉴욕 팬들과 화해했지만 이번에도 팬들의 응원은 어쩔 수 없이 조코비치 쪽으로 쏠린 것이 사실이었다.

3세트 막판 메드베데프가 서브를 준비할 때 야유가 계속되면서 메드베데프가 연속 더블폴트를 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 메드베데프는 자신의 결혼기념일 얘기로 팬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그는 "오늘이 결혼 3주년인데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며 "오늘 패하면 선물을 따로 준비해야 할 것 같아 걱정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또 우승 상금 250만 달러가 든 봉투를 받고서는 "여기서 열어봐야 하느냐"고 물었고, 사회자가 "우리를 믿으라"고 답한 장면도 '웃음 포인트'였다.

원래 조코비치가 재미있는 인터뷰를 잘하는 편으로 유명하지만 이번 인터뷰에서는 메드베데프가 확실히 더 큰 웃음을 끌어냈다.

플레이어 박스에서 자신을 응원한 아내 다리야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 메드베데프는 올해 25세에 키 198㎝의 장신 선수다.

성인 무대에 막 입문한 시기인 4∼5년 전만 하더라도 또래 선수들 사이에서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2017년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가 21세 이하 선수들을 대상으로 신설한 넥스트 제너레이션 대회에 출전했으나 1996년생 동갑인 정현(216위)에게 준결승에서 졌다.

당시 대회에서 정현이 우승했고, 함께 출전했던 선수들이 안드레이 루블료프(7위·러시아), 카렌 하차노프(28위·러시아), 데니스 샤포발로프(10위·캐나다), 보르나 초리치(35위·크로아티아) 등이었다.

또 2017년 넥스트 제너레이션에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현재 메드베데프와 함께 '차세대 빅3'를 형성한 스테파노스 치치파스(3위·그리스)와 알렉산더 츠베레프(4위·독일)가 메드베데프와 비슷한 나이대 선수들이다.

메이저 챔피언 메드베데프, 유머 감각도 조코비치 앞섰다
장신이지만 파워풀한 서브가 크게 두드러진 편은 아니다.

몸무게 83㎏으로 키에 비해 날씬한 편으로 탄탄한 기본기와 수비 능력이 돋보이는 선수다.

지난해 US오픈 도미니크 팀(6위·오스트리아)에 이어 20대 선수로는 두 번째로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정상에 오른 메드베데프가 '조코비치의 대기록을 저지한 선수'를 넘어 직접 대기록을 만들어갈 선수로 성장할 것인지 테니스 팬들의 기대가 크다.

러시아 선수의 메이저 남자 단식 우승은 2005년 마라트 사핀의 호주오픈 이후 이번 메드베데프가 처음이다.

여자 선수로는 2014년 프랑스오픈 마리야 샤라포바가 최근 사례다.

이날 샤라포바는 경기장을 찾아 메드베데프의 우승 장면을 직접 지켜봤다.

메이저 챔피언 메드베데프, 유머 감각도 조코비치 앞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