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톡톡] 데니스의 꿈
능숙한 한국말로 하는 자체 중계에 보는 사람도 덩달아 넋을 놓게 된다.

2살 터울 남동생 아이작과의 모바일 게임에 푹 빠진 모습이 영락없는 '요즘 고등학생’이다.

리모컨을 집어 들자 “축구 틀면 가만 안 둘 거야”라고 질린 듯 말하는 막내 여동생 데슬리의 귀여운 협박에는 못 이기는 척 그녀가 좋아할 법한 만화를 찾아 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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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생활로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오는 형, 오빠의 빈자리가 아쉽고 어색할 때도 있었다.

이제는 때때로 편안하고 적당히 반갑다.

티격태격 현실 남매의 주말 점심으로 감자튀김을 요리하는 것도 친구 같은 형, '츤데레' 오빠인 데니스 오세이(17)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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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 아이작은 “형이랑 같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같은 축구부여서 남매 중에 가장 친해요.

집에선 별로 특별한 것 없어요.

그냥 학교생활이나 축구 얘기만 하고. 근데 밖에서는 저를 가장 먼저 챙겨줘요.

좋은 게 있으면 먼저 주고, 좋은 걸 제가 먼저 하게 해주고.”라며 형은 자신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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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에 나오는 춤도 따라 추고 요즘 역주행 열풍 중인 SG워너비의 노래에도 한껏 감정을 실어 부르는 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한주의 피로가 씻기는 듯하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쉽지 않은 요즘 외박을 받아 동두천 집에 온 데니스의 휴일은 보통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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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엔 하나둘 모여든 친구들과 집 근처 풋살장으로 향한다.

주말엔 쉬고 싶을 법도 한데 이건 완전히 다른 축구다.

학교에서의 훈련은 더욱 집중하고 긴장해야 하지만 여기선 그저 즐길 뿐. 골키퍼도 되었다가 오랜 친구의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경기장을 데굴데굴 구르며 포복절도한다.

시종일관 미소 띤 얼굴뿐 오늘의 화려한 플레이는 없다.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어린 동생들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애틋한 마음 때문인지 연신 공을 넘겨주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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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따라 처음 왔던 한국에서의 어린 데니스는 마냥 웃기만 할 수도 철없지도 못했다.

“길 가다 보면 뒤에서 “와 쟤 까맣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친구들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놀이에 끼워주지 않기도 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땐 외국인 친구들이랑만 지낼 수밖에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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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환경이 버거울 때마다 떠올렸던 건 '성공'이었다.

미래에 성공한 사람만 되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본인을 다독였다.

어린 소년에게 성공과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예요.

남들이 제게 상처 주려고 하는 일들을 무시하려고 노력하고, 작지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게 뭔지 찾았어요.

비행기 조종사, 변호사가 꿈이었던 시절도 있었고 그땐 공부를 더 열심히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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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그저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하는 취미였다.

운동장을 지켜보던 감독님들의 눈에 띄어 선수 제의를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결정적으로는 6학년 때 맛본 경기의 매력에 빠져 축구라는 세계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혹시 또 꿈이 바뀔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라고 힘주어 말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전 이미 너무 축구에 빠져버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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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스타 박지성과 같은 이름을 가진 데니스의 고등학교 친구는 자신감이 넘치고 하고 싶은걸 잘 해내는 배울 점이 많은 친구라며 그를 한껏 추켜세운다.

그리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그를 응원한다.

내 친구의 피부색이 달라서 라거나 그가 다른 친구들보다 특별해서가 아니다.

단지 절친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만으로.
“얼굴은 못생기고 나쁘게 생겼는데 하는 짓은 귀엽고 순진해요.

데니스가 정말 열심히 해서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성공하면 저한테 벤츠를 사준다고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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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타칭 ‘동두천 음바페’ 데니스의 최종 꿈은 한국의 축구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다.

“네이마르와 음바페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스피드와 스피드를 이용한 기술, 플레이스타일을 가장 담고 싶습니다.


귀화해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국가대표로 뛰었던 마라토너 오주한, 럭비 김진 선수 등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기자에게 문득 콩고 출신 부모를 둔 한국 육상 단거리 유망주인 비웨사의 근황을 물어왔다.

우연히 비웨사에 대해 알게 된 이후로 가끔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본다고 한다.

“잘 뛰더라고요.

잘 알진 못하지만, 외모도 그렇고 저랑 비슷하게 살아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중에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묻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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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에서 온 그에게 한국의 국가대표로 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저는 가나에서 태어났고 피부색도 달라서 사실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기도 해요.

여전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오래 살았고 제가 한국에서 많이 발전했어요.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게 가장 크죠. 태극기를 달고 좋은 선수인 걸 보여주고 좋은 플레이 하는 걸 보여줘서 한국에서 잘 배우고 잘 자랐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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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던 곳에서보다 한국에서 오래 살았다.

가나에서의 기억이 희미해진 자리에 한국에서의 추억이 자라고 있다.

차별과 편견어린 시선에 무던해질수록 자신의 꿈과 행복을 찾는 일만큼은 더 분명해져 갔다.

누구나 사랑하는 어떤 것에 대한 그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데니스에게 한국이 그렇다.

그냥 "전체적으로 좋다". 한국의 음식이 좋고 축구를 하기에 시설이 좋고 좋은 사람들이 많아 좋다.

그렇게 사랑하는 한국을 살아가는 데니스에게 작은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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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도 생김새도 다르지만, 저도 한국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다 같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특별귀화제도가 도입된 지 올해로 10년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한국을 살아온 우리는 이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무엇을 바라거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어떤 이들을 결국엔 이방인으로서만 살아가게 하진 않았을까? 모든 게 당연하지 않은 어떤 이들의 그늘을 우리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다만 앞으로 우리가 걷는 그곳이 어느 방향이든 더 많은‘한국인 데니스들’이 꿈꿀 수 있고 그들과 함께 걸어가는 길이길. 2021.9.11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