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믿지 않는 실트 감독…승리 요건 문턱에서 번번이 교체
부상 이력과 3회 이후 부진, 김광현이 스스로 극복해야
김광현, 올해만 세 번째 호투 후 조기 강판…도대체 왜

잘 던지던 선발 투수가 승리 요건인 5이닝 소화 직전에 강판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팀에 피치 못할 상황이 벌어지거나, 미리 약속된 상황이 아니라면 해당 투수를 믿고 승리 요건을 채울 때까지 기다려준다.

잘 던지는 투수를 조기 강판하는 건 해당 투수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기 강판 사례가 쌓이면 해당 투수는 둘 중 하나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불만이 쌓이거나 벤치의 눈치를 보게 된다.

지금, 김광현(33·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상황이 딱 그렇다.

마이크 실트 세인트루이스 감독은 올 시즌 잘 던지던 김광현을 승리 투수 요건인 5회 직전에 자주 교체하고 있다.

올 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김광현으로선 참 답답한 상황이다.

김광현, 올해만 세 번째 호투 후 조기 강판…도대체 왜

◇ 올해에만 3번째…실트 감독, 김광현 미워하나
김광현은 올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투구를 멈춘 적이 많다.

그는 지난 5월 6일 뉴욕 메츠와 홈 경기에서 4회까지 1실점으로 호투했는데, 2-1로 앞선 4회말 공격에서 대타로 교체됐다.

투구 수는 66구였다.

6월 21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원정경기에서도 그랬다.

당시 더블헤더 2차전에 선발 등판한 김광현은 4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하다가 5회초 대타로 교체됐다.

투구 수는 불과 47개였다.

그리고 30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PNC파크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피츠버그와 원정경기에서 김광현은 다시 한번 조기 강판의 쓴맛을 봤다.

선발 등판한 김광현은 4이닝 3피안타 1볼넷 3탈삼진 1실점으로 빼어난 모습을 보였는데, 실트 감독은 3-1로 앞선 5회초 공격에서 김광현을 매몰차게 교체했다.

김광현은 투구 수 64구를 기록했고, 승리 투수 요건에 단 1이닝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이제는 실트 감독의 결정이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다.

도대체 실트 감독은 왜 자꾸 승리 투수 요건을 눈앞에 둔 김광현을 끌어 내리는 것일까.

몇 가지 이유가 짐작된다.

김광현, 올해만 세 번째 호투 후 조기 강판…도대체 왜

◇ 실트 감독, 김광현 부상 염려하나
먼저 부상 문제다.

김광현은 지난해 MLB에 입성한 뒤 갖가지 부상에 시달렸다.

그는 지난해 신장 경색 진단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올해 초엔 허리 통증으로 부상자 명단(IL)에 오른 채 정규시즌 개막을 맞았다.

김광현은 지난 6월에도 허리 통증으로 잠시 휴식을 취했고, 최근엔 팔꿈치 통증으로 IL에 올랐다가 복귀했다.

실트 감독은 갖가지 부상에 시달린 김광현이 무리하지 않길 바라는 것 같다.

특히 이날 경기는 김광현의 선발 복귀전이었다.

김광현은 지난 10일 팔꿈치 통증으로 열흘짜리 IL에 오른 뒤 마이너리그 재활 경기를 거쳐 복귀했고, 25일 불펜으로 보직 변경해 공을 던졌다.

김광현은 당분간 불펜 요원으로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으나 선발 투수 잭 플레허티가 어깨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선발 로테이션에 재합류했다.

실트 감독은 김광현의 몸 상태에 의구심이 많다.

실트 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김광현에게 '몇 구까지 던질 수 있나'라고 물었다고 한다.

김광현은 "75구까지는 던질 수 있다"고 답했는데, 실트 감독은 이를 60구로 낮췄다.

실트 감독은 이날 경기를 마치고 "60구를 던진 뒤 (김광현에게 계속 투구를 맡길지) 판단하기로 했는데, 4회 (무사 만루) 위기를 넘기면서 힘을 다 썼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광현, 올해만 세 번째 호투 후 조기 강판…도대체 왜

◇ 실트 감독의 불안함, 숫자가 말한다
김광현의 투구 성향도 실트 감독의 서운한 결정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김광현은 직구-슬라이더, 투피치 위주로 공을 던진다.

체인지업, 커브 등 다른 구종도 던지지만, 파괴력의 차이가 크다.

이 때문에 김광현은 상대 타자들을 첫 번째 타석에선 효과적으로 공략하는데, 두 번째 타석부터는 밀리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구종과 공의 움직임이 타자들의 눈에 익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시즌 김광현의 이닝별 평균자책점은 큰 차이를 보인다.

1회(0.45)와 2회(2.25)는 낮지만, 3회(6.86)와 4회(4.96)엔 급격히 높아진다.

실트 감독은 김광현에게 기회를 주기도 했다.

지난 5월 25일의 일이다.

김광현은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원정경기에서 5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그는 6회 2사 1루 위기에 놓였는데, 이때 실트 감독은 마운드에 올라가 김광현에게 의중을 물었다.

김광현의 의지는 강했다.

통역을 불러 마지막 타자를 책임지고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실트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김광현은 곧바로 상대 타자 앤드루 본에게 역전 투런 홈런을 허용한 뒤 후속 타자에게 볼넷을 내줬다.

세인트루이스는 1-5로 패했고, 김광현은 패전투수가 됐다.

이때부터 실트 감독은 김광현에게 의사를 잘 묻지 않고 곧바로 교체 지시를 내리고 있다.

김광현, 올해만 세 번째 호투 후 조기 강판…도대체 왜

◇ 결국은 김광현에게 달렸다
누구보다 속상한 사람은 김광현 본인이다.

잘 던지고도 벤치의 판단 때문에 눈앞에서 적지 않은 승리를 놓쳤다.

보통 투수라면 상실감과 허탈함 때문에 슬럼프를 겪을 수도 있을 텐데, 김광현은 더욱 이를 꽉 깨물고 있다.

그는 이날 경기 후 "이제부터 목표는 투구 수를 줄이면서 많은 이닝을 책임지는 것"이라며 벤치의 조기 강판 움직임을 당당하게 헤쳐나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김광현은 긴 이닝을 안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찾아 나섰다.

제3구종의 비중을 늘리는 것이다.

그는 이날 직구(19개), 슬라이더(24개)만큼 체인지업(17개)도 많이 던졌다.

이날 기록한 탈삼진 3개도 모두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활용했다.

체인지업의 위력은 직구-슬라이더에 미치지 못하지만, 상대 타자들과 수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선 구종 선택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결심이 든 것으로 보인다.

김광현은 "앞으론 팀별, 선수별로 구종 배분을 하면서 최고의 결과를 끌어내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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