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수호신’ 잔루이지 돈나룸마(22·AS로마)의 활약으로 53년 만에 유럽 정상에 올랐다.

이탈리아는 12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 결승에서 잉글랜드와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2로 승리해 우승했다. 이탈리아의 유로 대회 우승은 자국에서 대회가 열린 1968년 이후 53년 만이다. 최근 이어온 무패 행진은 34경기(27승 7무)로 늘었다.

승부차기에서 ‘철벽’처럼 골문을 지킨 돈나룸마는 이탈리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최우수선수(MVP) 격인 ‘플레이어 오브 더 토너먼트’로 선정됐다. 1996년 대회부터 신설된 이 상을 골키퍼가 받은 것도 돈나룸마가 처음이다. 그는 이탈리아가 조별리그를 무실점으로 통과하는 등 이번 대회 7경기에서 4점만 내주는 ‘짠물 수비’에 큰 공을 세웠다. 9개의 세이브도 기록했다. 잉글랜드는 전반 2분 만에 터진 루크 쇼의 선제골로 앞서갔다. 키이런 트리피어가 오른쪽에서 올린 크로스를 골대 반대편에 있던 쇼가 왼발 논스톱 슛으로 연결했다.

이탈리아가 균형을 맞춘 건 후반 22분. 코너킥에 이은 문전 혼전 상황에서 마르코 베라티의 헤더를 잉글랜드 골키퍼 조던 픽퍼드가 쳐냈다. 하지만 이 공이 레오나르도 보누치의 발끝에 걸렸고 결국 동점골로 연결됐다.

이탈리아는 기세를 살려 역전골을 노렸지만, 잉글랜드 수비벽을 뚫지 못했고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이탈리아는 두 번째 키커 안드레아 벨로티의 슛이 골키퍼에게 막혀 궁지에 몰렸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세 번째 키커 마커스 래시퍼드가 실축한 데 이어 네 번째 키커 제이든 산초가 돈나룸마에게 막히면서 다시 3-2 리드를 잡았다. 래시퍼드와 산초는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승부차기를 위해 경기 막판 투입한 선수들이었다. 잉글랜드로선 완벽한 ‘작전 실패’였다.

이탈리아의 다섯 번째 키커 조르지뉴의 슛이 픽퍼드에게 막혔으나 잉글랜드 마지막 키커 부카요 사카의 슛도 돈나룸마를 넘지 못하면서 결국 이탈리아의 우승이 확정됐다. 2001년 9월생으로 만 19세인 사카에게 마지막 키커라는 부담감은 너무나 버거운 짐이었다.

사상 첫 유로 대회 우승을 노렸던 잉글랜드는 대회 최고 성적을 경신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잉글랜드는 1968년과 1996년 4강에 오른 게 이 대회 최고 성적이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