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부상 공백 무색한 활약으로 KBL 코트 지배…챔프전서도 '압도적 MVP'
두 달 만에 농구판 바꾼 '1타 강사'…KGC '신의 한 수' 설린저
9일 전주 KCC를 4연승으로 제압하고 2020-2021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한 안양 KGC인삼공사는 정규리그 후반부까지도 지금의 결말을 상상하기 어려운 팀이었다.

오세근, 전성현, 문성곤, 이재도, 변준형 등 국내 선수 진용이 탄탄하지만, 팀 전력의 결정적 요소인 외국인 선수는 다른 상위권 경쟁 팀에 비해서 낫다고 볼 수 없었다.

미국프로농구(NBA) 출신 얼 클락과 라타비우스 윌리엄스로 시즌을 시작했는데, 클락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지난 시즌 함께했던 크리스 맥컬러를 재영입하고도 재미를 보지 못했다.

KBL의 터줏대감 라건아가 이끄는 전주 KCC, 외국인 최우수선수(MVP) 숀 롱을 앞세운 울산 현대모비스 등과 비교하면 무게감이 떨어졌다.

성적도 애매한 상위권을 맴돌았는데,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노리며 정규리그 막판 택한 회심의 카드가 이번 시즌 프로농구 판도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제러드 설린저(29·204㎝)였다.

두 달 만에 농구판 바꾼 '1타 강사'…KGC '신의 한 수' 설린저
3월 초 인삼공사가 맥컬러의 대체 선수로 영입을 발표한 설린저는 당시부터 'KBL에 올 레벨의 선수가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2010년 미국 고교 농구 '올해의 선수' 격인 네이스미스 어워드를 받았고, 오하이오주립대 시절에도 에이스로 활약한 선수다.

2012년 NBA 신인 드래프트 전체 21순위로 보스턴 셀틱스의 지명을 받아 2017년까지 보스턴, 토론토 랩터스에서 통산 269경기에 출전, 평균 10.8점 7.5리바운드 1.8어시스트를 기록해 KBL을 거쳐간 외국인 선수 중 최상급 경력을 자랑했다.

포스트시즌을 염두에 둔 인삼공사는 정규리그가 10경기 정도 남았을 때 그를 영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는데, 새 리그와 팀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데다 부상으로 약 2년의 공백을 겪은 터라 이름값을 할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설린저는 등장하자마자 '클래스'를 입증했다.

3월 11일 서울 삼성과의 데뷔전에서 17점 7리바운드를 올린 그는 이후 거의 매 경기 20점과 10리바운드 이상을 쌓아나갔다.

두 달 만에 농구판 바꾼 '1타 강사'…KGC '신의 한 수' 설린저
정규리그 10경기 평균 30분가량을 뛰며 26.3점 11.7리바운드 1.9어시스트를 올려 한 달 만에 코트를 '접수'하며 정규리그 6라운드 MVP에 선정되기까지 했다.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공격에, 넓은 시야를 활용해 동료를 살리는 절묘한 패스, 스크린과 수비 등 모든 면에서 한 수 위 기량을 뽐냈다.

심지어 이런 것들이 쉽게 보일 정도로 여유 있는 면모까지 보여 팬들은 그에게 농구에 통달했다는 의미의 '설교수'라는 애칭을 붙였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설교수의 '강의'는 이어졌다.

부산 kt와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 2차전 38점을 폭발하는 등 3경기 평균 28점 10.3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3연승에 앞장섰다.

울산 현대모비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선 1차전부터 40점 13리바운드를 몰아친 것을 시작으로 매 경기 '20점-10리바운드' 이상을 해내 다시 3연승을 이끌었다.

평균 기록은 33.7점 14리바운드 3어시스트로 6강보다 훨씬 나아졌다.

두 달 만에 농구판 바꾼 '1타 강사'…KGC '신의 한 수' 설린저
그를 앞세워 순식간에 '무적의 팀'으로 변모한 인삼공사는 정규리그 1위 팀 KCC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설린저 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감을 등에 업은 인삼공사의 국내 선수들도 돌아가며 터져 KCC의 혼을 빼놓았고, 결국 챔프전 4연승, 전체 포스트시즌을 10연승으로 마치는 기염을 토했다.

힘에선 KBL 외국인 선수 중 최고로 꼽히는 라건아를 상대한 영향인지 설린저는 챔피언결정 2차전 때 포스트시즌 들어 처음으로 한 자릿수 득점(8점)에 그치기도 했다.

그러나 3차전 25점 15리바운드 7어시스트로 살아났고, 시리즈가 끝난 4차전에는 무려 42점에 15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폭발해 인삼공사를 우승 트로피까지 인도했다.

플레이오프 MVP는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NBA 재진입 의지를 품은 데다 인삼공사에서의 활약으로 몸값이 치솟아 다음 시즌엔 국내 무대에서 그의 '강의'를 보기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설린저는 KBL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가장 강한 임팩트를 남긴 선수로 남게 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