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코스' 윙드풋을 삼켜버린 '게임 체인저' 브라이슨 디섐보. 골프계에선 지난 21일 그가 120회 US오픈을 언더파로 제패하자 '파워골프의 시대를 열었다' '혁신의 아이콘이 이제 걸음을 시작했다'는 등의 찬사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윙드풋 US오픈에서 우승한 36년만의 언더파 챔피언이라는 점, 4라운드를 모두 '오버파 프리'로 끝낸 최초의 선수라는 점 등 기록도 쏟아졌다.

'B&G(bomb & gouge)전략' '임계 회전 반경(end range of motion)''브라이스노믹스(bryson-nomics)'란 용어까지 유행할 참이다. 아마추어골퍼는 물론 프로골퍼들 사이에선 디섐보 따라하기 열풍 가능성도 엿보인다. 그동안 '괴퍅한 고집'으로만 치부돼왔던 그만의 골프실험이 '파괴적 혁신'으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디섐보발 '파워골프시대'가 만개할 듯한 기세다.
그러나 그의 시스템, 즉'브라이스노믹스' 역시 골프의 영원한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골프의 역사가 그래왔듯, 새로운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새로운 스타가 떠오르면 '노믹스'도 달라진다. 그럼에도 '나는 카지노가 되고 싶다'던 디섐보의 승리 메시지는 강렬하다.

◈실패를 즐겨라

그는 우승 직후 그의 '벌크업'에 도움을 준 스테이크로 혼자 저녁을 먹으면서 "자신의 골프를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말이 있는가?"라고 묻는 골프닷컴 기자한테 이렇게 말했다. "내 성공은 이전의 수많은 실패들로 이뤄졌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로 즐기시라."
그는 '미친 사이언티스트'라 불릴 정도로 기괴한 실험들을 즐겼다. 어떤 실험들은 성공했고, 어떤 도전은 실패했다. 덕분인지 골프 외에도 할 줄 아는 게 아주 많다. 그는 축구 농구 배구 탁구는 물론 셔플보드 등 거의 모든 스포츠,게임을 잘했다. 심지어 외줄타기 곡예도 프로급이다. 대학 때 들판에 텐트를 쳐놓고 혼자 외줄타기 연습만 며칠씩 한 적도 있다. 스티플링으로 불리는 '점묘화법'을 혼자 익혀 자신의 우상인 벤 호건의 초상화를 그려낸 적도 있고, 사인을 왼손으로 할 줄도 안다. 그것도 마치 오른손 사인을 거울에 비춘 것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유려하게 쓴다.

단순히 호기심해소 차원에서 독특한 분야에 도전한 게 아니다. 그는 "이런 취미들은 내 공감각을 모두 결합시켜 협응능력을 길러준다고 생각했기에 시도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깃대를 꽂고 퍼팅하는 게 허용된 이후 그는 반발계수(COR)가 높은 그래파이트 소재 깃대는 꽂고 하고, 스틸소재 깃대의 경우엔 빼고 하겠다는 나름의 전략을 세웠다. 실험을 해본 결과 그런 통계적 분석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같은 코스에서도 홀과 상황마다 깃대를 뽑기도, 꽂아놓기도 하면서 퍼팅을 한다. 이론은 늘 변한다. 그도 달라진 변화에 자신을 맞췄다.

◈한계는 없다

무엇을 하든 목표는 늘 최선의 노력이다. 그는 "나는 똑똑하지 않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연습과 노력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심지어 대학시절 골프가 뜻대로 되지 않자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종교에 회의를 가진 적도 있다. "나만큼 연습을 절실하게 많이하는 사람도 없는데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축구와 농구 배구같은 팀운동을 나중엔 멀리했다고 한다. "나만큼 연습하는 애들이 없었다. 그게 싫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인내심은 평범한 수준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180페이지 짜리 물리학 책을 3개의 노트에 일일히 필사를 했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부모님을 위해서다. 그의 아버지 존은 미니투어를 뛰던 골프클럽 프로였는데, 당뇨병을 앓았고 신장투석을 3년간 하는 등 심하게 아팠던 적이 있다. 디섐보는 "이미 나에게 모든 걸 쏟아부은 부모님에게 손벌리기가 싫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엄청난 필사고행은 그를 물리학의 원리를 깨치는 계기가 됐다. '도전의 맛'을 알게됐으며, 모든 일은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연결됐다.

그는 고교 때인 17세에 코치인 마이크 사이와 모든 아이언 클럽을 6번 아이언 길이(37.5인치), 헤드무게 278g, 라이각 72도로 똑같이 맞춘 '10쌍둥이 아이언'을 처음 만들었다. 그는 주변에서 웨지는 "샤프트 길이가 짧아야 하는데, 6번 아이언 길이로 웨지를 쓰면 정확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에도 "연습하면 된다"며 이 원-렌쓰(one-length) 클럽을 고집했다. 실제 그는 점점 이 '롱 웨지'에 익숙해져 갔고, 세계 최강급 스크램블러가 됐다. 데뷔 이후 100위권 안팎을 맴돌던 그린 주변 플레이 능력(around the green)은 현재 7위까지 올라온 상태다.
그의 캐디는 이렇게 말했다. "디섐보는 골프를 대회에서만 친다. 대회가 아닌 곳에서 골프를 치지 않는다. 왠지 아는가. 그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은 드라이빙레인지에서 연습할 때이기 때문이다." 골프연습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였다.

◈골프는 데이터다

그는 궁금한 걸 끝까지 해소하려 했다. 궁극의 원리가 해법을 찾아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 여정이 그에게 '축적의 힘'을 선사할 것으로 확신한 이가 디섐보다. 그를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이끈 계기는 호머 켈리의 책 '골핑 머신'. 디섐보가 워낙 질문을 많이 하고 이론 논쟁을 좋아해 "감당하기 어려워 책에서 해답을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던져 준 책"이라는 게 코치의 얘기다. 이 코치를 디섐보에게 소개한 이가 아버지 존이었는데, 프로골퍼인 존도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궁금한 게 많았다"고 말했다.

디섐보는 지금 유체역학, 생체 역학, 통계학, 수학, 기상학 등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을 넘나들며 코스전략을 짠다. 샷 한 번을 할 때 감안하는 정보가 기온과 습도, 풍향, 풍속, 그린 기울기, 그린의 밀도, 잔디 종류, 잔디 길이, 그린 경도, 공의 회전량, 비행 탄도 등 무수히 많다. 그린에서 그는 '벡터 퍼팅'이란 책에서 얻은 이론으로 자신만의 공스피드와 거리, 포물선 계산을 한다. 심지어 대회가 끝나면 휴식도 과학적으로 한다. 호흡법과 뇌훈련이다. 이 역시 데이터가 기반이다.

◈비거리는 정확,유연, 파워의 합작품

그가 메이저 우승으로 전한 메시지가 때론 굴절되기도 한다. 그의 비거리는 우람한 근육에서 나온다는 시선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다. 그의 컨디셔닝 코치는 이렇게 말한다. "근육을 쌓은 건 단백질 셰이크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비거리의 기반은 유연성에서 비롯된다. 살을 찌우고 근육략을 늘리는 운동을 엄청나게 하지만 원칙이 있다. 신체의 유연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를 철저히 지킨다. 유연성 강화훈련량이 엄청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디섐보는 특히 관절의 유연성을 중요시 한다. 주변에 '엔드 레인지 오브 모션 프로토콜'이란 용어를 자주 쓰는데, 손목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는 그의 비거리가 다른 관절들의 유효회전반경을 극대화해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섐보의 어린시절 코치인 마이크 사이는 '무조건 멀리친 뒤 웨지를 잡는다'는 밤앤 가우지 전략도 정확성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는 주장을 편다. 코치는"디섐보는 정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스피드를 내려고 한다. 스피드를 그가 늘렸다면 그건 정확하게 늘렸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실제 디섐보는 프로데뷔 전 US아마추어와 대학 선수로 NCAA(전미대학스포츠협회)를 제패했을 때도 똑바로 치는 정교함에서 늘 1인자였다. 프로데뷔 이후 그는 23kg정도를 찌웠고, 비거리는 30야드가량 늘렸는데, 그의 정확도는 더 좋아졌다. 골프 평론가인 브랜들 챔플리는 "디섐보의 승리는 거리의 승리가 아니다. 정확도, 배짱, 힘, 전략 등 모든 골프 미덕들의 총합"이라고 했다.

◈삶은 다양, 자신의 스윙을 믿어라

사람마다 다 자신의 특성이 있다. 골프도 마찬가지라는 게 디섐보의 생각이다. 그는 "내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건 이렇게 우승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정답, 절대적인 해법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어떤 사람은 살을 빼는 걸 원하고, 그게 필요할 수도 있다. 각자의 길이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열심히 하면 다 이뤄진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400야드와 그린재킷, 새 도전의 시작

그는 체중을 110kg이상으로 더 늘릴 계획이다. 드라이버 길이도 48인치로 조정할 생각도 갖고 있다. 11월 열리는 마스터스를 위해서다. 그러면 스윙스피드가 평균 130마일, 최대 140마일까지 나오고 평균 비거리가 340~360야드가량 나갈 것이라는 통계적 확신을 하고 있다. 내리막 경사홀에서 필요할 경우 400야드도 쉽고 정확하게 칠 준비를 마치겠다는 얘기다. 그는 지난시즌 최고 137마일의 스윙스피드를 기록해 투어 1위를 찍었다. 하루 6000칼로리씩 먹어치우는 식이요법도 더 다듬어 나갈 에정. '그의 혁명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기대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