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전노장’ 스튜어트 싱크(47·미국)가 4074일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부활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2020~2021시즌 개막전 세이프웨이오픈(총상금 660만달러)에서다. 2009년 메이저대회 디오픈을 석권한 뒤 내리막길을 걸었던 싱크의 역전 우승 비결은 가족의 힘. 싱크는 “캐디백을 멘 아들의 조언이 위기 때마다 빛났다”며 “14번홀 근처 골프장 밖에서 고개도 못 들고 기도하는 아내의 모습을 봤을 때 꼭 우승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아들 앞에서 300야드 장타 ‘펑펑’

싱크는 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내파의 실버라도리조트 앤드 스파(파72·7166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8개와 보기 1개를 묶어 7언더파 65타를 쳤다. 최종합계 21언더파 267타를 친 싱크는 2위 해리 힉스(28·미국)를 2타 차로 따돌리고 118만8000달러(약 14억원)의 우승 상금을 차지했다.

마지막 날 3명의 공동 선두에 2타 뒤진 6위로 출발한 싱크는 300야드를 넘나드는 장타에 베테랑다운 노련미까지 선보이며 경기를 장악했다. 4번홀(파4)에서 아이언샷을 핀 옆 1.2m에 붙여 첫 버디를 신고한 싱크는 5번홀(파5), 8번홀(파4), 9번홀(파5)에서도 한 타씩 줄이며 선두를 맹추격했다. 10여 차례나 1퍼트로 끝냈을 정도로 샷과 퍼트감이 뜨거웠다.

11번홀(파4)에서도 버디를 낚아 추격전을 펼치던 그에게 힘을 준 사람은 부인 리사. 싱크는 “14번홀 그린에서 퍼트를 마친 뒤 경기장 밖에 있던 아내를 발견했다”며 “아내에게 다가가 아들과 한 팀으로 우승 경쟁을 펼치는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고 꼭 우승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부인의 기도가 힘이 됐을까. 싱크는 15번홀(파3)에서 7m 거리의 칩샷을 그대로 집어넣어 버디를 잡았다. 16번홀(파5), 17번홀(파4)에서 버디와 보기를 바꾸며 선두를 유지했던 싱크는 18번홀(파5)에서 1m 퍼트를 떨궈 우승을 확정지었다.

아들과 함께 11년 만에 슬럼프 극복

1997년 PGA 투어에 데뷔한 싱크는 2000년대까지 세계를 누비며 맹활약한 백전노장. 데뷔 첫해인 1승을 신고했고, 2000년부터 2009년까지 5승을 올렸다. 2009년 7월 골프 전설 톰 왓슨(71)의 최고령 디오픈 우승을 저지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싱크는 이후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지난 시즌에는 페덱스컵 랭킹이 144위까지 밀리며 투어카드를 잃을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메이저 챔프라는 명성이 퇴색해질 때쯤 손을 내민 것은 그의 아들 레이건. 스물세 살의 레이건은 지난 시즌 말부터 싱크의 캐디를 자처했다. 피는 물보다 진했다. 부자가 합을 맞춘 네 번째 대회 만에 우승을 차지한 것.

싱크 부자는 이번 우승으로 PGA 투어 2년 시드와 함께 내년 마스터스, PGA챔피언십, 플레이어스챔피언십 출전권 등을 선물로 받게 됐다. 싱크는 “아들이 코스에서 ‘아빠가 틀렸어요, 저를 믿으세요’라고 말하며 나를 이끌었다”며 “그린을 잘 읽어서 기특한 게 아니라 그런 배짱을 지닌 아들이 자랑스럽고 특별하다”고 했다.

공동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서 우승을 노렸던 재미 동포 제임스 한은 공동 9위(16언더파 272타)로 대회를 마쳤고, 전날 샷 난조를 보이며 공동 67위까지 순위가 떨어진 김시우(25)는 이날 6타를 줄이는 뒷심을 발휘하며 순위를 공동 44위(10언더파 278타)로 끌어올렸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