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명예’다.”

1500만달러(약 178억원)의 페덱스컵 보너스를 챙긴 더스틴 존슨(36·미국)이 말했다. 8일(한국시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챔피언십을 제패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다. 그는 ‘오늘 돈과 명예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의미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주저없이 답했다. 메이저 1승(US오픈) 등 통산 23승을 거둬 이미 부와 명예를 다 가진 선수임을 감안해도 1500만달러는 그에게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공식 상금에는 반영되지 않지만 1500만달러는 그가 모은 통산 상금 6759만달러(약 802억원·역대 5위)의 약 4분의 1에 달한다. 그는 “내게는 상금 보너스보다 트로피가 더 소중하다”고 했다.

10전11기 ‘고진감래’

그는 이날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이스트레이크GC(파70·7319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일 4라운드에서 2언더파 68타를 쳤고, 대회 전 포인트 순위에 따른 보너스 타수(10언더파)를 더해 최종합계 21언더파 269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13번째 시즌 만에 얻은 결실. 그를 쫓던 저스틴 토머스, 젠더 셔펠레(이상 27·미국)는 3타 차 공동 2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이들도 공동 2위 보너스 450만달러(약 54억원)씩을 챙겼다.

존슨은 압도적인 장타를 앞세워 데뷔 첫해인 2008년부터 13시즌 연속 1승 이상씩을 거두는 등 ‘꾸준함의 대명사’로 통했다. 2007년 창설한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도 5승을 거뒀다. 최종전에만 10번이나 진출했지만 페덱스컵과는 지독히 인연이 없었다. 우승에 근접했던 2016년에는 투어챔피언십 마지막 날 73타를 치는 바람에 로리 매킬로이(31·북아일랜드)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올해 그는 3개 대회에서만 우승-준우승-우승이라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쌓였던 아쉬움을 한번에 날렸다.

역대급 ‘잭팟’을 터뜨린 존슨이 지난 한 달간 보너스를 포함해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벌어들인 상금만 해도 우리 돈으로 200억원이 족히 넘을 것으로 보인다. 존슨은 “퀄리파잉스쿨을 거쳐 처음 투어 카드를 받은 후 딴 첫 상금이 2만5000달러였는데 당시 정말 부자가 된 것 같았다”며 “(지금은 큰돈을 벌었지만) 페덱스컵 챔피언 우승자 명단에 들지 못했던 것이 조금 신경 쓰였다”고 말했다.

정교함까지 장착…1990년대생도 ‘백기’

존슨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주 무너져 ‘새가슴’이라는 오명을 달고 다녔다. 가장 멀리 치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린에 손쉽게 공을 올려놓고도 퍼팅에서 삐걱거렸다. 2015년 US오픈에선 4m 이글 퍼트를 남기면서 우승 문턱까지 갔지만 이를 놓쳤고, 남은 1m 버디 퍼트까지 놓치며 무너졌다. 지난해 투어챔피언십에선 꼴찌를 하는 수모를 당했다.

올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 직전만 해도 그는 스윙교정 후유증과 등 통증 등으로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보였다. 트래블러스챔피언십 우승 직후 출전한 메모리얼토너먼트에서 1, 2라운드 모두 80타를 치더니 커트 탈락했고, 이어 3M오픈에서도 첫날 78타를 치고 기권했다.

‘그린 위에만 올라오면 작아지는 장타 괴물’로도 불렸던 그는 시즌 막판에 접어들면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거듭났다. 장타(평균 311야드·10위는 변함없었지만 74위(0.096타)에 머물던 퍼팅 이득 타수가 올해 48위(0.271타)로 도약했다. 이번주 대회에선 이 순위가 12위(0.945타)까지 치솟았다. 짧은 퍼트는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꼭 필요한 장거리 ‘클러치 퍼트’까지 장착해 승부사의 날카로움을 뽐냈다. 지난 BMW챔피언십 18번홀에서 욘 람(26·스페인)과의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간 10m 버디 퍼트가 대표적이다.

PGA챔피언십을 포함해 4개 대회 연속으로 챔피언조에서 경기한 이는 1999년 타이거 우즈(45·미국) 이후 그가 처음이다.

존슨은 토머스와 셔펠레, 람 등 1990년대생 ‘영건’들을 완벽히 제압하면서 ‘차기 황제 후계자’ 경쟁 구도에서도 다시 우위를 점했다. 그는 5타차 선두로 마친 3라운드 직후 “당신은 세계 최강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웃으며 말했다. “지금, 그렇게 느낀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