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정신으로 명성이 자자한 ‘필드 위 물리학도’ 브라이슨 디섐보(27·미국·사진)가 체면을 구겼다. 이번 실험 대상은 장비나 스윙 기술이 아니라 경기 룰. 경기 도중 처한 위기상황을 자기식으로 해석해 ‘구제’를 시도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31일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의 TPC사우스윈드(파70)에서 열린 월드골프챔피언십(WGC) 페덱스 세인트주드 인비테이셔널(총상금 1050만달러) 1라운드에서 벌어진 일이다.

상황은 7번홀(파4)에서 발생했다. 티샷이 당겨지면서 큰 나무 앞에 공이 떨어졌다. 공 주변에 손가락 굵기의 나뭇가지들이 널려 있는 걸 본 그는 경기위원을 호출했다. 그는 “공 주변에 불개미와 불개미가 파낸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있다”고 주장했다.

심각한 신체적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곰, 독사, 말벌, 불개미 등 ‘위험한 동물’이 근처에 있으면 무벌타 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골프 규칙 16조2a를 활용해 무벌타 탈출을 하려 한 것이다. 공 주위를 유심히 살펴본 경기위원 켄 태커트는 무벌타 드롭을 허용하지 않았다. “불개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디섐보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번엔 개미가 파낸 구멍과 개밋둑을 가리키며 다시 한번 구제받기를 시도했다. ‘동물이 판 구멍’이라고 주장해 ‘비정상적인 코스 상태(골프 규칙 16조)’로 설정한 뒤 공을 무벌타로 빼내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경기위원은 “그 구멍도 디섐보 당신의 경기를 전혀 방해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디섐보는 결국 이 홀에서 네 번 만에 겨우 그린에 공을 올려 더블 보기를 적어냈다. 1라운드 최종 스코어는 3언더파 공동 9위.

디섐보는 2주 전 메모리얼 토너먼트 2라운드 15번홀(파5)에서도 세 번째 샷이 코스 경계 펜스에 있는 것을 두고 아웃오브바운즈(OB)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홀에서 10타 만에 홀아웃하는 ‘퀸튜플 보기’ 악몽을 겪었다. 당시 경기위원도 태커트였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