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020’ 챔피언 김지영이 29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던 도중 신문에 실린 자신의 우승 사진을 가리키며 웃고 있다. 그는 “1면에 사진이 실려본 건 처음이다. 신기하다”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020’ 챔피언 김지영이 29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던 도중 신문에 실린 자신의 우승 사진을 가리키며 웃고 있다. 그는 “1면에 사진이 실려본 건 처음이다. 신기하다”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김지영(24)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020’(총상금 7억원)이 끝난 뒤 잠들기 전까지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어야 했다. 저녁까지 족히 400~500통의 ‘톡’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렸다. 모두 ‘우승 축하 메시지’였다. 29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오랜만에 우승해서인지 정말 많은 축하 인사를 받았다”며 “쉬지 못했지만, 피곤하지 않다.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넘버2 징크스 없애려 개명도 생각”

"축하 문자만 500통…더 이상 숫자 '2' 두렵지 않아요"
정확하게 1142일 만에 거둔 두 번째 우승. 그는 지난 28일 경기 포천시 포천힐스CC 18번홀(파5)에서 열린 대회 최종라운드 연장 2차전에서 약 5m짜리 ‘끝내기 이글’을 앞세워 박민지(22)를 꺾고 우승했다. ‘준우승 전문’이란 오명도 시원하게 털어버렸다. 투어 5년차인 그는 또래에 비해 많은 아홉 번의 준우승 기록을 갖고 있다. 2017년 5월 첫 우승 전에 두 번, 이후 두 번째 우승이 나오기 전까지 일곱 번이다. 지난해는 네 번이나 2등을 했다. 그의 부활에 축하 인사가 쏟아진 이유다.

연장 시작 전까지만 해도 ‘역전패’의 그림자가 그를 덮쳤다. 최종라운드 18번홀에서 두 번의 샷 만에 어렵게 공을 그린 주변에 보내놓고도 버디를 잡지 못했다. 어프로치를 한 것이 짧았고, 넣어야 할 버디 퍼트도 짧아 놓쳤다. 그사이 박민지가 같은 홀에서 버디를 잡아 동타를 만들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18번홀 티 박스에 서니 준우승만 했던 옛날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며 “또 실패하나 생각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한때 숫자 ‘2’ 공포증을 앓기도 했다. 그는 “처음엔 인연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보다 일찍 협회에 등록한 동명이인이 있어 리더보드 속 그의 이름 뒤에는 숫자 2가 붙는다. 장타 부문에서도 올해를 포함해 4년 연속 2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제주삼다수마스터스에선 2라운드까지 2위를 기록했는데, 당시 샷감이 좋아 역전 우승을 바라봤다. 하지만 악천후로 3라운드가 취소되면서 또 2위에 머물렀다. 이달 초 끝난 S-OIL챔피언십에선 2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렸으나 악천후로 2라운드 경기 전체가 취소돼 1라운드까지 성적으로 순위를 정하는 바람에 우승을 날렸다.

개명 신청을 할까 생각했다. 김민선5로 더 잘 알려진 김민선(25)의 경우 원래는 김민선4였는데, 숫자 4가 마음에 들지 않아 5로 협회 내 ‘개명 신청’을 했다. 김지영은 “동료들이 ‘투어에서 뛰는 김지영은 내가 유일하니 자신감을 갖고 쳐라’고 조언해 결국 숫자를 바꾸지 않았다”고 했다.

18번홀에서 280야드 세 번이나 펑펑

"축하 문자만 500통…더 이상 숫자 '2' 두렵지 않아요"
그를 지탱한 것은 제일 자신있는 장타였다. 2017년부터 올해까지 한 번도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가 250야드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장타에서만큼은 항상 ‘톱2’였다. 여자골프에 ‘운동 열풍’이 불기 전부터 운동의 중요성을 알았다. 이번 대회에서도 장타 덕을 봤다. 연장 1, 2차전이 열린 18번홀은 비거리가 230m 이상 돼야 벙커를 피할 수 있었다. 김지영은 모두 벙커를 피했다. 연장 2차전에서 나온 이글도 260m 넘게 날아간 티샷이 시발점이 됐다. 이후 그는 4번 아이언으로 187m를 날려 홀 옆 5m 부근에 공을 올렸다. 대회 최종일 그는 연장 2차전을 포함해 18번홀에서만 280야드를 세 번 쳤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허약한 편이었는데 투어에 올라오면 ‘첫째도, 둘째도 체력’이란 조언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며 “몸에 좋은 음식을 많이 먹으면서 운동도 열심히 했다. 지금은 스쿼트는 90㎏, 데드리프트는 최대 100㎏을 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장전에서 우드나 하이브리드를 잡아 벙커 앞에 떨어뜨려 안전한 3온을 노릴까도 생각했지만, 여기서 피해가면 패한다고 생각했다. 세 번 다 드라이버를 젖먹던 힘을 다해 힘껏 쳤다”고 했다.

그는 골프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했다. 2년 전부터 받기 시작한 멘탈 코칭이 계기다. 숙제이자 힘겨운 일이었던 골프가 느긋함과 재미의 대상이 됐다. 티잉에어리어에 올라가면 연습 스윙도 없이 10초 안팎에 티샷을 하던 조급함도 여유로 변했다. ‘웃으면서 쳐도 우승할 수 있구나.’ 그가 이번 대회 우승 이후 마음속으로 되뇐 말이다. 그는 “골프 라운드가 확실히 재미있어졌다”고 말했다.

대회 전까지 시드 유지 걱정을 했던 그의 상황은 이 대회 우승으로 180도 바뀌었다. 2022 시즌까지 시드 걱정 없이 투어에 전념하게 됐다. 김지영은 “떨면서 시즌을 시작했는데,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을 계기로 나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이 자신감을 유지해 남은 시즌 1승을 추가하도록 계속해서 노력하는 선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