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1년 연기로 '대회 직전' 정년 맞는 근대5종연맹 정동국 처장
선수부터 행정까지 '근대5종 산증인'…"내년 도쿄서 새 역사 기대"
"첫 올림픽 메달 숙원 직접 못 풀더라도…한 우물 판 35년 행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사상 초유의 '올림픽 연기'로 이어지며 스포츠 현장은 패닉에 빠졌다.

모든 초점을 2020년 7월 도쿄올림픽에 맞춰 준비하던 선수들, 특히 그 대회를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치려던 베테랑에게 미친 충격파는 한층 더 컸다.

35년 직장 생활의 '피날레'를 도쿄에서 장식하려던 정동국(61) 대한근대5종연맹 사무처장도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 인물이다.

1985년 연맹에 입사해 내년 6월 정년을 앞뒀는데, 하필이면 한국 근대5종의 '사상 첫 메달 획득' 가능성이 큰 도쿄올림픽이 퇴임 직후인 내년 7월로 밀린 터다.

강산이 네 번 가까이 바뀌는 동안 몸담은 곳에서 새 역사에 힘을 보태고 떠나려던 꿈이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가로막혔다.

올림픽 한 달 전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었어야 할 22일 연합뉴스와 만난 정 처장은 "사상 첫 메달로 멋지게 업무를 끝내고 제대로 퇴직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현직으로서는 볼 수 없게 됐으니 아쉬운 게 사실이다"라며 30여년을 돌아봤다.

정 처장은 국가대표까지 지낸 펜싱 선수 출신이다.

근대5종과는 1982년 한국에 대표팀이 생길 때 선발전에 나선 게 첫 접점이었다.

일반병으로 전방에서 복무할 때 운동에 대한 갈증을 풀고자 뛰어든 생소한 종목이 평생 직업이 됐다.

그전까지 한국에 근대5종이라는 종목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 최귀승(전 연맹 부회장)이 출전했으나 그는 원래 승마 선수였고, 이렇다 할 단체나 팀 없이 홀로 올림픽에 도전했다.

"첫 올림픽 메달 숙원 직접 못 풀더라도…한 우물 판 35년 행복"
서울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1982년 정 처장을 포함한 소수가 '1호 대표팀'으로 뽑혔고, 연맹도 그해 문을 열었다.

한국 근대5종의 시작부터 정 처장이 함께한 셈이다.

1985년 전임지도자로 연맹에 합류한 그는 1991년부터 사무직으로 일했다.

"운동하던 사람이 책상에 앉아서, 제대로 된 휴일도 없이 '쌍코피 터져가며' 고생했다"는 적응기를 지나 1998년 사무국장(사무처장의 전 명칭)에 올랐고, 지금까지 연맹 사무를 총괄하고 있다.

그가 처음 국장을 맡을 때만 해도 변방이던 한국 근대5종은 '우리도 월드 클래스가 돼 보자'는 회장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의지와 지원 속에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2004년 이춘헌이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개인전 은메달을 획득하며 물꼬를 텄고, 2010년대 들어서는 세계 무대에서 겨뤄볼 만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2012년 런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메달권 진입 가능성도 보이기 시작했으나 고비를 넘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아쉬움을 남긴 올림픽 이후 대표적인 메달 종목인 양궁협회 관계자 등을 초빙해 얘기를 들으며 우리의 현실을 진단하고 갈 길을 고민했죠. 이후 모든 역량을 올림픽에 집중하는 '골드 프로젝트'를 마련했습니다.

"
2017년 정진화가 사상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개인전에서 우승하고, 전웅태, 이지훈 등도 정상의 반열에 올라 프로젝트는 순항했다.

세계가 인정하는 강국이 된 이때 도쿄올림픽은 한국 근대5종과 정 처장 개인에게 '정점'이 될 수 있었다.

"첫 올림픽 메달 숙원 직접 못 풀더라도…한 우물 판 35년 행복"
정 처장은 "1985년부터 한결같이 연맹을 맡아 온 LH의 투자가 결실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올림픽 메달이 나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근대5종은 회장사와 연맹, 경기인이 장기간 큰 잡음 없이 동행을 이어온 거로 유명하다.

대외적으론 국제근대5종연맹(UIPM) 국제심판과 기술위원(TD)으로 활동하며 위상 강화에 힘을 보탠 정 처장은 내부에선 이 동행을 이어가는 데 힘썼다.

"돌아보면 회장사엔 '하늘이 주신 분'이 많았습니다.

민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비인기 종목을 지원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분들 덕분에 지금까지 온 거죠. 연맹은 회계 등 업무 처리를 철저히 하려고 노력해 조화를 이룬 것 같습니다.

요즘은 다른 경기단체에서 자문해오기도 하는데, '깨끗하게 하라'고만 합니다.

"
연맹에서의 35년에 대해 "한 업종에서 이렇게 오래 일하며 큰 사고 없이 정년을 앞둬 행복하고 가슴 벅차다"고 요약한 그는 요즘 '인생 2막'을 설계 중이다.

2004년부터 활동해 온 UIPM TD로 국제무대에서 조금 더 일하는 것 정도가 현재로선 구체화한 계획이다.

연맹을 떠난 뒤가 되겠지만, '올림픽 메달'의 꿈도 유효하다.

"선수들에게는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올림픽 연기가 저로선 아쉽지만, 우리 선수들에게는 더 담금질할 기회가 될 거예요.

세계가 인정하는 유력한 메달 후보인 만큼 내년이라도 취소되지 않고 꼭 열려 새 역사가 탄생하기를 기대합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