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골프계가 ‘K골프’를 주목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뚫고 세계 최초로 지난 14일부터 투어를 재개했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투어는 일러야 7월 초에나 재개가 가능할 전망이다. 생생한 골프경기에 목말라 있는 골프팬들은 갈증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여서 한국 투어(KLPGA)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다. 17일 끝난 KLPGA 챔피언십은 호주 일본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이 매일 생중계했다. 미국 NBC도 대회 하이라이트를 내보냈다.BC카드·한경레이디스컵 2020도 세계 골프계의 ‘신스틸러’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이 대회는 다음달 25일 경기 포천힐스CC(파72)에서 막을 올릴 예정이다. KLPGA 일정대로라면 세계 골프 투어에서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막을 올리는 여섯 번째 정규 투어 대회가 된다. 주최 측은 코로나19 사태의 추이를 면밀히 점검해 최적의 대회 조건을 완성할 계획이다.BC카드·한경레이디스컵은 반전 드라마가 많기로 유명하다. ‘깜짝 스타’의 탄생, ‘무명의 반란’ 등 골프대회가 주는 묘미를 대회마다 쏟아냈기 때문이다. 대회마다 2만여 명의 갤러리가 운집해 업계에선 “메이저급 흥행 대회”라는 평가가 나온다. 마케팅 효과 분석 전문업체에 따르면 이 대회의 회당 홍보 효과는 80억~100억원에 달한다.2015년 창설 대회에서부터 반전 스토리가 펼쳐졌다. 미국(LPGA투어)에서 뛰던 장하나가 자신의 후원사가 만든 대회에 나와 초대 챔피언에 오르는 역사를 쓴 것이다. 장하나는 특히 4타 차 열세를 뚫고 짜릿한 역전극을 펼쳐 드라마의 완성도를 더했다. 2회 대회는 당시 17세 아마추어 성은정의 반란으로 ‘역대 최고의 스릴러’라는 평가를 받는다. 3라운드까지 3타 차 단독 선두를 달린 그는 마지막날 18번홀에서 두 번째 우드샷을 깊은 풀 속에 집어넣는 바람에 다잡았던 우승컵을 날렸다. ‘미녀 골퍼’ 오지현(KB금융그룹)이 이 틈을 파고들어 연장 우승을 차지, ‘지현 시대’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이듬해인 2017년 대회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데 이어 그해 9월 한화클래식까지 제패하며 ‘메이저 퀸’의 반열까지 내달았다.2018년 4회 대회는 괴물 신인 최혜진(롯데)이 KLPGA투어의 다크호스로 자리매김한 무대가 됐다. 최혜진은 “코스 변별력과 난도가 여느 명품대회와 차이가 없었다”고 평가했다.지난해 대회는 무명 한상희(볼빅)의 깜짝 활약과 조정민(문영그룹)의 7타 차 역전 우승이라는 ‘더블 드라마’를 썼다. 3라운드까지 3타 차 단독 선두를 달린 한상희는 생애 첫 승을 앞두고 있다가 뒤에서 쫓아온 조정민에게 덜미를 잡혔다. 한상희는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인생 대회였다. 정말 잊혀지지 않는 대회”라고 말했다.올해 역시 지난해 대회 못지 않은 명승부를 연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6개월에 달하는 대회 공백기를 거치면서 선수들의 ‘컨디션’과 ‘준비 상태’에 격차가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임희정(한화큐셀), 박현경(한국토지신탁), 현세린(대방건설) 등 겁 없는 괴물 신예의 약진도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다. ‘지옥의 한철’을 보낸 2부투어 출신 시드권자들의 실력도 물이 올라 있는 상태다. 최혜진, 이다연(메디힐), 조아연(볼빅) 등 기존 강자들의 화력도 여전히 뜨겁다. KLPGA 관계자는 “무관중 경기에 익숙한 2부투어 출신 강자들의 득세도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소속 투어의 재개를 기다리는 일부 스타급 해외파까지 대회에 가세할 경우 그야말로 안갯속 승부가 될 공산이 커진다.대회 주최 측은 올해 대회 슬로건을 ‘세이프’로 잡았다. 여느 대회보다 코로나19 방역에 만전을 기한다는 방침이다. BC카드 관계자는 “열화상 카메라와 손소독제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 전체 시설과 코스에 대한 토털 방역대책을 철처히 세웠다”며 “선수와 갤러리, 스태프 모두 안전한 대회가 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만드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스마트 대회도 2020 대회의 주제다. BC카드 모회사인 KT의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이 총동원된다. 각종 샷 데이터와 입체 스윙 영상, 슬로 모션, 실시간 스코어 및 순위 확인 등 다양한 즐길거리를 실시간으로 글로벌 골프팬에게 제공할 계획이다.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17일 ‘KLPGA 챔피언십’(총상금 30억원) 최종 라운드가 열린 경기 양주 레이크우드CC(파72·6540야드). 18번홀에서 20㎝ 파 퍼팅이 홀에 떨어지자 박현경(20)이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트레이드 마크인 환한 미소는 캐디백을 메고 있던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프로 출신 아버지 박세수 씨(51)를 끌어안은 뒤에야 눈물 위로 번져나왔다.짜릿한 역전으로 생애 첫 승‘밀레니얼 소녀’ 박현경이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먼저 열린 골프 대회에서 생애 첫 승을 ‘메이저대회’로 신고했다. 이 대회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올해 첫 대회이자 메이저대회로 호주와 일본 등 10여 개국에 생중계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박현경은 “꿈꿔왔던 순간이 오늘 이뤄져서 행복하다. 이 순간만을 생각하며 훈련해왔다. 대회가 열리기 전에 다섯 번 대회장을 찾아 코스 공략법을 연구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현경은 이날 버디 6개, 보기 1개를 묶어 5언더파 67타를 쳤다. 최종합계 17언더파 271타, 박현경은 우승상금 2억2000만원을 받았다.배선우(26)와 공동 2위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박현경의 기세가 초반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3타 차 선두로 라운드를 시작한 ‘사막여우’ 임희정(20)이 1번홀(파5)과 3번홀(파4)에서 버디를 몰아치자 타수는 5타까지 벌어졌다. 2번홀(파3)에서 배선우가 버디를 잡자 순위도 한 단계 주저앉았다.박현경은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템포로 플레이를 이어갔다. 박현경은 4번홀(파4) 버디에 이어 6번홀(파4), 7번홀(파5)을 몰아치면서 임희정을 압박했다. 7번홀에서 임희정이 보기를 범하자 둘의 타수는 한 타 차로 좁혀졌다.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9번홀(파4)에서 1m 파 퍼팅을 놓치며 보기를 기록한 것. 꾸준한 기량으로 3억900만원의 상금을 벌어들였지만 우승이 없었던 지난해 모습이 다시 나오는 듯했다. 박현경은 공격적인 플레이로 위기를 탈출했다. 승부처는 13번홀(파4). 11번홀(파5), 12번홀(파3)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낸 박현경은 약 2.5m 거리의 버디 퍼트를 홀에 떨궈 한 타 차 단독 선두로 치고 올라갔다. 공동 선두였던 임희정은 이보다 짧은 약 1m짜리 파 퍼트를 놓쳐 2타 차 공동 2위로 뒷걸음질쳤다.임희정은 15번홀(파5)에서 버디를 추가하며 재역전을 노렸으나 기세가 오른 박현경을 넘어서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타수를 지킨 그는 생애 첫 우승을 짜릿한 역전승으로 장식했다. 임희정과 배선우는 박현경에게 한 타 모자란 16언더파로 공동 2위에 머물렀다.루키 동기들 8승 거둘 때 무승박현경은 지난해 데뷔 때부터 “언제든 우승할 재목”이란 평가를 받은 유망주다. 2013년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힌 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국가대표를 지냈다. 16세이던 2016년 세계 아마추어골프 선수권 대회 단체전 우승을 따내기도 했다. 2017년 송암배 대회에서 나흘 합계 29언더파 259파로 아마추어 72홀 최소타를 기록하며 독보적인 존재로 떠오르기도 했다.프로 데뷔 이후엔 속앓이가 이어졌다. 임희정, 조아연(20), 이승연(22) 등 동기들이 8승을 거두는 동안 우승컵을 한 번도 들어 올리지 못했다. 2019 시즌 신인상에서도 동갑내기 조아연, 임희정에게 밀려 3위에 그쳤다. 박현경은 “티를 안 냈지만 지난해 우승이 없어 속앓이를 많이 했다”며 “올해 목표였던 첫 승 달성에 성공했으니, 평균타수상을 받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했다.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활약하는 베테랑들은 이날 무서운 뒷심을 보여줬다. 김효주(25)는 이날 보기 없이 버디 8개를 쓸어담아 14언더파 공동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1언더파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이정은(24)도 보기 없이 8언더파를 몰아쳐 9언더파 공동 15위를 기록했다.김효주는 “오늘 이렇게 잘 치지 않았으면 얻어가는 것이 없었을 텐데 그래도 오늘 호성적으로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고 말했다. 이정은은 “코로나19라는 위기 속에서 이렇게 대회를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며 “몇 가지 적응이 잘 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집에서 혼자 연습하는 것보다 대회에 나오니 훨씬 좋다”고 말했다.양주=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