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최하위 롯데, 개막 초반 5승 1패 돌풍
'자신 역할에만 집중하라'는 허문회 감독, 롯데를 바꿨다
지난 12일 오후 부산 사직구장.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허문회 감독은 경기 전 잠시 선수단과 미팅을 가졌다.

허 감독은 이 자리에서 선수들에게 "지금 너무 잘 즐기고 있다"고 칭찬했다.

개막 5연승을 달리던 선수들에게 잘해서가 아니라 즐기는 모습이 좋았다고 칭찬한 것이다.

롯데는 이날 '디펜딩 챔피언' 두산 베어스에 6-11로 패해 개막 6연승이 좌절됐다.

2주 자가격리에 들어간 아드리안 샘슨을 대신해 임시 선발로 나선 장원삼이 3이닝 5실점으로 일찍 무너진 것이 패인이었다.

장원삼은 원래 등판하기로 했던 지난 9일 사직 SK 와이번스전 등판이 비로 취소됐기에 그냥 2군으로 돌려보내도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허 감독은 21년 만의 개막 6연승이 걸린 중요한 경기에서 장원삼에게 마운드를 맡겼다.

장원삼을 추천한 2군 코치진과 1군 기회를 잡기 위해 땀을 흘리는 2군 선수들을 존중한다는 메시지였다.

경기 초반 0-5로 스코어가 크게 벌어졌지만, 롯데는 두산 1선발 라울 알칸타라를 상대로 끈질긴 추격전을 이어갔다.

알칸타라는 승리투수가 되긴 했지만 5이닝 동안 안타를 12개나 허용하며 4실점으로 진땀을 흘렸다.

롯데는 패색이 짙은 9회 말 마지막 공격에서도 볼넷 2개와 안타 1개로 1점을 만회했다.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놓지 않은 롯데는 실책 없이 경기를 마쳤다.

올 시즌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허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부터 매일 선수들에게 현재 자기 일에만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줬다.

야수는 타석과 수비에서, 투수는 마운드에서 자신의 역할에만 집중하면 승리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허 감독은 선수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

허 감독 스스로 수직관계를 최소화하고 권위 의식 없이 선수와 호흡하면서 팀 문화를 바꿨다.

정훈은 "감독님께선 선수들을 존중해주신다.

나는 주전급이 아닌데도 대우를 해주시고, 존중받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사실 주전 선수도 아닌 저 같은 선수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기가 쉽지 않다"며 "감독님 덕분에 팀의 중고참으로서 더욱 의지를 갖고 열심히 하게 된다"고 전했다.

정훈은 올 시즌 타율 0.409의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선수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뛴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자, 즐기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허 감독은 "이기고 지는 것은 그 후의 문제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게 하려고 한다"며 "처음에는 선수들도 반신반의했지만 지금 선수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야구장에서 잘 뛰어놀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투지와 근성을 강조했던 예전 사령탑들과는 결이 다른 허 감독이 이끄는 롯데가 과연 올 시즌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관심이 쏠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