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산악그랜드슬램 달성…에베레스트에 '코리안루트' 개척
[순간포착] 무한도전 산악인 박영석 "도전하는 자가 세상의 주인!"
"북극의 리드(얼음이 갈라져 바닷물이 드러난 곳), 블리자드, 난빙, 화이트아웃…무서웠던 것은 이것들이 아니라 제 자신이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북극점을 밟았습니다.

"
산악인 박영석이 2005년 5월 1일 오전 4시 45분(한국시간) 북극점에 도달한 후 위성 전화로 연합뉴스에 밝힌 소감이다.

박영석 대장을 비롯해 네 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3월 9일 캐나다 워드헌트를 출발해 평균 하루 12시간, 15㎞ 이상을 걷는 강행군을 하며 도전 54일 만에 드디어 북극점을 밟았다.

그는 이날 지구 3극점(에베레스트, 북극점, 남극점) 도달, 히말라야 8천m 이상 14좌 및 7대륙 최고봉 완등을 모두 성취하는 전대미문의 '산악그랜드슬램'을 세계 최초로 달성하며 세계 탐험사에 한 획을 그었다.

얼마나 기뻤을까.

북위 90도 북극점을 정확히 밟은 박 대장은 그곳에 태극기를 꽂고 사진에서처럼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그는 북극점을 밟았을 때 "GPS를 보며 북위 90도에 3m, 2m, 1m로 다가가는 순간 다리가 떨렸다.

엉엉 울기도 하고 고함도 많이 질렀다"며 지구 최악의 환경에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신조로 버텼다"고 밝혔다.

각자 무게 100㎏ 썰매를 끌고 영하 40∼50도 강추위와 강풍 속에서 빙판 위를 2천㎞나 걸었으니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얼굴과 손발 등에 동상을 입었고, 일부는 설맹 증세가 나타나기도 했다.

박 대장은 두 번째 도전 만에 북극점에 도달했다.

2003년 2월에도 도전했지만, 악천후와 부상 등으로 원정길 절반 정도를 남겨두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5월 12일 귀국한 박 대장은 인천공항에서 "세상에는 임자가 없다.

도전하는 자만의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서른 살이던 1993년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8,848m) 무산소 등정에 성공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K2(8,611m)에 올라 히말라야 14좌 등반을 마무리 지었다.

14좌 완등에는 8년 2개월이 걸렸는데 세계 최단기간에 세운 기록이었다.

2004년에는 남극 탐사에 나서 무보급 도보로 44일 만에 극점에 닿았고 이듬해 마침내 북극점에 도달했다.

특히 그는 정상에 오르기를 중시하는 '등정주의'(登頂主義)보다 어려운 길을 골라 산을 오르는 과정에 무게를 두는 '등로주의'(登路主義)를 지향했다.

2009년 5월 20일 5번째 도전 만에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새로운 '코리안루트'를 개척한 것은 그의 도전 의지와 평소 신조가 만들어낸 쾌거였다.

하지만 끝이 없을 것 같던 그의 도전은 2011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남벽이 가로막았다.

이 도전은 또 다른 '코리안루트'를 개척하기 위한 것이었다.

남벽은 길이가 3천500m에 달하고, 해발 5천m 전진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 눈이 쌓이지 않을 정도로 가파른 암벽이 2천m나 이어지는 난코스였다.

박 대장은 대원 두 명과 함께 10월 17일 오후 4시(현지시간) 전진 캠프를 떠나 루트 개척에 나섰다.

이튿날 해발 6천300m 지점까지 오르다가 "낙석 가스가 많다"며 탐험을 중단했고, "두 번 하강 남았다"는 교신 이후 연락이 끊겼다.

대한산악연맹은 셰르파와 한국 구조전문대원들을 투입해 열흘간 집중적으로 수색했으나 끝내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사고대책반은 박 대장이 눈사태를 언급한 마지막 말을 근거로 원정대가 눈사태에 휩쓸린 것으로 추정했다.

영원한 산악인 박영석은 아직도 안나푸르나 기슭에 잠들어 있다.

/연합뉴스